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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20. 2023

프랑스 귀족의 슬픈 사연과 막장 이야기

막장드라마가 꾸준히 인기있는 이유. 내가 지금 사는 이 시대.

지난여름 프랑스의 북서쪽 브루타뉴Bretagne 지역을 2주간 로드트립하면서 지금까지 본 성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에 방문했다. 프랑스에는 약 4,000개가 넘는 성이 있다고 한다. 과장을 좀 보태서 그냥 지나가다가 발에 치이는 게 성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성이 너무 많아서 웬만큼 유명한 사람이 그곳에서 살았다거나 아름답지 않고서는 나라에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그러고 보니 얘네들은 태어나보니 성주네?)이 가장 바라는 일은 정부에 이 성을 파는 것인데 성이 워낙 많다 보니 특별한 성이 아니고선 파는 것도 쉽지 않단다. 그런 성은 아예 호텔로 개조되거나 결혼식, 파티 같은 행사장으로 대여되기도 한다.

빨간 부분이 브루타뉴 지역 Bretagne


브루타뉴의 콘카르노 Concarneau에 있는 케리올레 성 Château de Keriolet

이 성은 앞서 설명한 프랑스 정부가 관심 없는 성 중의 하나다. 성주는 이 성을 팔기 위해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단다. 이 성을 물려받은 성주는(몇 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귀족이었겠지)는 이 성을 잘 써먹어야겠기에 성을 방문지로 만들었다.

소나기가 내린 성에 도착했다. 성은 지은 사람의 정성을 보여주듯 성도 정말 기품 있고 아름다웠다. 도시와는 약간 떨어진 곳, 작은 숲으로 둘러싸인 곳, 게다가 뽀얀 안개와 곳곳에 맺힌 물방울까지 더해 약 1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듯한 느낌도 들었다. 성의 가이드 분이 이곳의 역사를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정말 아름다운 성인데... 이 정도는 너무 흔하단다... 이곳도 결혼식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성은 XX 의 가문의 딸 OO이 재혼하면서 남편에게 지어준 거예요.(캬… 결혼 선물로 성을 지어주는 귀족 클래스!) 그녀는 첫 번째 남편을 병으로 잃고 재혼을 하기 원했어요.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지만 그는 평민이었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 결혼 역시 귀족과 하고 싶었기에 그의 신분을 귀족인 것처럼 위장하길 원했어요. 그래서 도시와 좀 떨어진 시골에 성을 짓고 그에게 성을 줍니다. 도시에서 떨어져야 사람들이 잘 모를 거고, 그는 변두리 지방의 귀족 행세를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까지는 뭐 그저그런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으나 진짜는 이제 시작이다.


 “결혼 후 그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지만, 남편이 성의 요리사와 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요리사와 부엌에서 아주 아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으나 두 번 다 남편을 죽음으로 잃게 되죠. 그 후로 그녀는 이곳을 떠났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야기는 갑자기 사랑과 전쟁이 되었다. 바람피우는 것도 모자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심장마비라니, 그것도 부인이 지어준 성에서!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는 태양왕 루이14세가 지은 베르사유 성이니

그 루이14세를 질투나게 만든 베르사유 성의 뭔조 격인 보르비콩트 성이니

강 위에 지어진 쉬농소 성이니


그동안 봤던 훨씬 아름답고 웅장한 성들을 잊어버렸다. 200년 전 성의 주인이었던 그녀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빵 터졌다. 내가 좋아하는 막장스토리... 그렇게 성은 프랑스에서 본 성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성의 내부. 응접실.

스토리텔링의 힘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드라마와 영화와 책을 계속 보는 이유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싶기 때문이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제품이 더 잘 팔린다.

‘매년 OOO명의 아기가 굶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보다는

 ‘7살 사라는 오늘도 학교 대신 돌을 쪼개러 채석장에 갑니다. 아이의 조그만 손에서는 매일 피가 납니다. 사라의 꿈은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사라를 도와주세요!"

라는 문구에 사람들은 더 마음 아파하며 지갑을 연다.


이 사랑과 전쟁 이야기는 그 어떤 성보다 나를 몰입시켰다. 루이 14세니 프랑수아 1세니 내가 알 게 뭔가. 그들의 이야기도 재미는 있으나 왕이기에, 역사이기에 솔직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케리올레 성의 성주 부부 이야기는 당장 우리 옆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성을 둘러보는 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여자는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남편이 죽었을 때 얼마나 복잡한 마음이었을까?"

 “과연 그녀는 남편의 부정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반반이겠지만, 그래도 통수와 맞바람과 Dog족보가 난무하는 유럽 역사를 비춰봤을 때 아마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냥 차라리 알고 있었다고 해줘. 안 그럼 귀족언니 더 비참해지잖아. ㅠㅠ

 "신분 상승을 이룬데다 쾌락의 정점에서 죽었으니 이 남자는 성공한 인생??"

 "이런 성에서 결혼하는 거 정말 로맨틱하긴 한데... 성주가 바람피다가 죽은 성에서 결혼하고 싶어요? 아마 결혼 에약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모르겠지?"


그리고 이 부부의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외에도 한 가지 시사점을 내게 던져주었다!

시대정신

이 성은 19세기에 지어졌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시작으로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약 10년간 지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왕과 왕비를 포함한 귀족 몇 만 명의 목이 기요틴에서 댕강댕강 잘려나갔다. 그말인 즉 이미 신분제라는 것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그것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드려는 노력이 지속되던 시기였던 거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귀족이라는 낡은 허울에 갇혀 있었다. 재혼이라면, 그리고 이제 귀족이 점점 의미 없어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면, 신분이니 귀족이니 이런 거 다 떠나 그저 나와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재밌게 살면 되었을 텐데…


그녀는 귀족 여자를 만나 한몫 잡고 싶어 했을지 모를 남자를 골라 그 남자에게 성까지 지어주는 호구짓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 남자의 야망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과연 귀족이란 굴레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도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 아무리 귀족이었다해도 '200년 전 여자의 재혼'이라면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었을 듯한데, 그녀는 재혼을 통해 그 치부를 최대한 봉합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야망이 있다는 평민 남자를 골라, 그 남자를 성공시켜 그를 남편으로 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남자를 보는 시야가 좁아진 건 아닐까? 애먼 남자에게 성을 지어주는 돈과 시간과 에너지로 다른 걸 했다면?



아무튼 이 성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1.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항상 예의주시하며 살자.

2.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통한다. 우리 모두 글쓰기를 생활화해 보아요.


끝.

숲속의 성, 아름답죠?




[종합 정보}

저의 책, 프로젝트, 컨설팅 

https://linktr.ee/wonder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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