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프랑스
피사에서 차로 7시간, 국경을 넘어 도착한 곳은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리옹. 이곳에서 하루 묵은 뒤 다시 파리로 돌아갈 예정. 확 뚫린 고속도로 덕에 오후 늦게, 늦지 않게 리옹에 도착했다.
유럽에 온지 3주쯤 지났나... 한식이 무척이나 먹고 싶다. 아니 한식은 고사하고 밥 좀 먹고 싶다. 그래서 큰맘 먹고 숙소 근처에 봐 둔 초밥집에 갔다.
파는 요리는 일식, 가게 주인은 중국인, 먹고 있는 나는 한국인이라며 깔깔 거리다가 옆에 있는 일본인 3명이 말을 건다. 오늘 리옹에서 기능올림픽이 있었는데 여기 앞에 계신 아저씨가 당당히 금메달을 따셨다고 한다. 축하는 해드렸으나 무슨 올림픽인지 정확히 몰라 내가 날리는 축하의 말속에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강을 찾아 타박타박 걸어가는 길. 파리와는 달리 사람이 없어 참 마음에 든다. 한여름 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사람들로 붐빈다. 7,8월 파리의 유동인구를 보면 1/3은 파리 시민, 2/3이 관광객이란다. 시민들이 휴가를 위해 파리를 빠져나간 그 공간을 두 배만큼의 관광객들이 메우고 있단다. 한여름 파리에서 진정한 로컬스러움을 맛보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곳 리옹은 상대적으로 파리보다 사람들이 적게 올뿐더러 리옹 시민들도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났으니 도시가 한산한 느낌이다. 그리고 역시 꽤 긴 역사가 있는 도시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적대는 파리보다는 이곳이, 더 마음에 드는 건 뭘까. 내가 니스에서 받았던 그런 느낌일까. 큰 도시라 젊은이들도 꽤 많고, 인프라도 잘 되어 있지만, 수도가 주는 그 번잡함과 항상 '무언가 쫓기며 사는 느낌'이 없어서 더 좋다. 이곳 리옹에서 부산에 온듯한 편안한 느낌을 다시 받는다. 뭐 덕분에 주차도 무료다. :) 가지런히 주차된 공공자전거도, 조용히 지나가는 전차도 지는 햇살과 조용한 도시에 무척이나 잘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걸어 걸어 도착한 론(Rhône) 강. 강 주변으로 펍과 바가 멋들어지게 들어서 있다.
"엇, 전에 말한 내 폴란드 친구 있지? 왜 전에 말했잖아. 폴란드 사람들도 술 엄청 마셔. 아무튼 내 폴란드 친구도 매일같이 술 마시는데 걔가 리옹에서 일하고 있거든. 여기서 이미 맥주 마시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
폴란드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아 그 친구와 맥주 한 잔 하려는 우리의 계획은 무산됐다.
리옹에서 론강 근처의 바에 앉아서 달빛과 가로등에 비친 강을 보며 맥주를 마시다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한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 아무 계획 없이, 일정 따위 하나도 안 짜고 발길 닫는 대로 가기로 떠나온 유럽. 운 좋게도 가는 곳마다 아름다움 그 자체인 곳에 와서 맛있는 맥주까지 마시고 있다.
내가 언제까지 여행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를 가고 싶어 하나?
내가 과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하면 내가 돈 이외의 충만함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따위의 답을 내리고 싶어 하는지 고민하는 척만 하고 싶은지 모를 그 따위의 질문을 던지며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