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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Sep 17. 2024

유럽식 휴가에 적응하기

25박 26일 휴가를 마치고.

예전에 100일 동안 혼자 배낭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25일 동안 떠나는 게 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희안하게 휴가 초반, 조금 불편했다.

일을 좀 더 하고 싶었고(아..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아도 어쩔 수 없는 나는야 한국인), 누군가와 오래 여행을 하는 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혼자 싸돌아다니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초반에는 랩탑을 들고 가서 시간이 날 때 일을 하기도 했다. ㅡㅡ


 "이렇게 오래 놀아도 될까?"

괜한 자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여행 중간에 유럽의 휴가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휴가 중에 우연히 읽은 프랑스 소설 덕분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지낸 집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프랑수아즈 사강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두 소설에는 모두 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가족의 모습이 나온다. 가족과 더불어 마음 맞는 친구 혹은 부모님의 애인 등도 그 휴가를 함께 한다. 그들은 파리를 떠나 프랑스의 남쪽 니스로 혹은 북쪽 브리타뉴 지역으로 최소 한 달은 떠난다. 집을 빌리거나 별장이 이미 있거나 하는 식으로. 그 속에서 그들은 빡세게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보다는,  해변에서 세일링을 하거나, 수영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고, 아페리티프 (Apéritif, 식전주)를 즐기고, 책을 읽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담이지만, 이런 유럽의 휴가가 잘 묘사된 영화로는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한 <Call me by your name> 이 있다. 이 영화에는 싱그러운 여름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10대의 첫사랑, 젊음이 함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정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극대화시키는 티모시 살라메의 얼굴 한 스푼.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한 장면, © Sony Pictures





프랑스의 서남쪽,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Pays Basque  바스크 지방으로 휴가를 떠났다. 나와 남편, 아이, 시어머님, 그리고 시어머님의 친구 부부, 이렇게 총 여섯 명이 한 집을 빌려 지냈다. 집 앞에는 목장이 있어서 양들이 풀 뜯는 걸 보면서 매일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 조합만 놓고 보자면 며느리인 내가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건 1도 없었다.


1. 우선 나는 우리 시어머니를 참 좋아한다.


2. 그리고 어린아이가 있는 부부에겐 누군가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휴가일 텐데 (다른 게 휴가가 아닙니다.^^) 손녀를 엄청 이뻐하시는 시어머니와 그리고 그 친구 부부 분들이 아이와 노는 걸 정말 좋아하셨다. 사실 이게 가장 좋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아이와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오랜만의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

덕분에 남편과 둘이서 근처 도시에 가서 1박 2일로 놀고 올 수도 있었다.


3. 시어머님의 친구분도 이미 아는 분들이다. 내 결혼식 때도 오셨었고, 그 이후로도 약 다섯 번 정도 봤다. 매년 내 생일에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도 보내주신다. 이건 내 생일이 시어머니의 생일 다음이기에 기억하기 편한 이유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며느리도 아니고 친구의 며느리 생일마다, 이렇게 덕담의 문자를 보내주시는 게 정말 감사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알고 지낼 수 있다는 거, 정말 나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


4. 아침에는 크로와상과 바게트와 커피, 점심은 레스토랑, 저녁은 집에서 매일 먹었다. 워낙 점심을 거하게 먹기 때문에 저녁을 샐러드나 과일, 그리고 와인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그 말인즉슨, 요리할 일도 없었다.


가자, 세상을 구하러!


덕분에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이곳 사람들이 휴가에서 하듯 책도 보고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하며 세상을 구하는 데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Zelda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찾으러 간다.)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친구 부부 앞에서 게임에 몰두하며 혼자 '읔 안 돼!!'를 남발하며 괴물을 물리치는 내 모습을 보며 느꼈다.

 ‘이런 분들 앞에서 어려워하지 않고 스위치 하고 있는 내 인생, 진짜 복 받았다. ^^’


그리고 책도 읽었다.

앞서 말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집 앞마당 나무 아래 누워 유유자적 독서하기 

<월든> 책은 소로 아저씨가 미국의 월든 호숫가에서 2년 동안 정말 자급자족하며 사신 내용을 쓴 책이다. 호수와 그 주변의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에 대한 찬양 등이 책의 주요 내용인데,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읽기에는 최고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나야말로 가장 문제였다. 내가 이런 걸 즐겨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현재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나와 가족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랩탑을 구석에 두고 책과 닌텐도를 집어 들었다.




*100년 전에 쓰인 소설에서도 이런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는 도대체 언제부터 ‘휴가’라는 것이 생겼나? 작년에 프랑스의 브리타뉴 지역으로 2주 동안 휴가를 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200년 전에 지어진 파리지앙들의 여름 별장이 해변에 쫙 깔려 있었다.


**그다음은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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