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 May 07. 2016

[네덜란드] 치즈, 운하, 풍차가 있는 작은 네덜란드

알크마르(Alkmaar), 네덜란드

어젯밤 내내 술과 대마초에 찌든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암스테르담은 밤새도록 시끄러웠다.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에 와서 조용한 걸 기대한 나는 너무 순진했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책 속에서 본 이 그림을 찾으러 떠난다. 


4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네덜란드의 소도시, 알크마르(Alkmaar)에서는 치즈 시장이 열린다. 생산된 치즈를 검수하고, 그 치즈를 운반하는 모든 과정이 몇 백 년 전부터 해오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 덕분에 매주 금요일 이 작은 도시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알크마르.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창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풍차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이 자아내는 풍경에서 네덜란드 전원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이런 전통 복장을 입은 안내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주며 치즈시장이 열리는 바흐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다른 관광객들 뒤를 설렁설렁 따라가며 알크마르 시내를 구경한다.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조용하다. 그 조용함 덕에 도시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이 곳은 내 환상 속의 네덜란드 같구나.'


치즈시장은 10시에 시작하지만 굳이 빨리 갈 필요는 없다. 치즈 거래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1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는 행사를(그것도 네덜란드어로 진행되는) 전부 다 보지는 않는다. 그러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별 상관 없다. 아무튼 치즈가 원래 둥그런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안 나는 저울 위의 노랑이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다. 

충분히 디지털로 할 수 있지만, 계량소에서는 굳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큰 저울에, 반대편에는 추를 두고 치즈의 무게를 재고 있다. 계량소에서 먼저 치즈 무게를 확인하면, 밖에서는 검사원이 치즈 검수를 한다. 그리고 그 검사를 통과해 그날의 치즈로 뽑힌 사람은 (휴대폰으로?) 영예롭게 사진을 찍는다. 


사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모습. 지게(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도 귀엽게 생겼는데, 그 지게를 어깨에 매면 저절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지 아저씨들이 치즈를 옮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다. 가끔은 치즈가 아닌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구경꾼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충분히 디지털화 가능한 이 모든 절차를 알크마르 사람들은 굳이 아날로그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화된 것이 있다면 광장에 설치해 놓은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 정도. 전통을 지키는 노력이 먼저였던지, 관광이 먼저였던지 어쨌든 매주 금요일 많은 관광객들이 치즈시장에 들른다. 역시 내가 가진 고유의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나 보다.

 

알크마르는 치즈시장 말고도 볼 게 많으니 바로 가지 말고 더 둘러보라고 사회자는 권하지만, 치즈 거래가 끝난 후 도시는 이윽고 조용해졌다. 덕분에 난 조용히 이 소도시를 즐길 기회를 갖게 됐다.


그녀의 말대로 난 이곳 알크마르에 남아서 치즈 박물관에도 들렀다. 입장과 동시에 치즈 한 조각을 준다. 유럽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이 치즈를 먹을까? 유럽인들이 보기에 정사각형의 납작한, 아무 맛이 없는 "가짜 치즈"에 익숙한 난 역시나 치즈 박물관에 별 감동받지 못했다. 




사람에 치여, 비싼 물가에 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생각도 안 했던 운하 투어 보트에 올라탔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네덜란드 동화는 아닐지라도 그 동화의 집은 이런 모양일 거야.


집, 회사, 광장, 교회... 자신들의 보금자리 아래 항상 물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새삼 이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땅에 길을 내고 삶을 이어나간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알크마르에서 가장 낮은 다리 아래를 지나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한 시간 가량의 운하 투어 후에 이 조용한 도시가 더욱 좋아진 나는 내친김에 자전거를 빌려 알크마르의 교외로 나갔다. 산이 없는 나라인 만큼, 자전거 타기 정말 좋고, 국민들도 자전거 타기 정말 좋아한다.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젊은 아이들도, 아이를 앞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금요일 오후의 여유를 흠뻑 틀기고 있다. 강가를 마주한 어느 집 앞,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뭔가를 쓰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네덜란드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교외로 나오니 집집마다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가족들이 보트를 타고, 준비해 온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가정이 이런 거겠지? (물론 보트는 없어도 된다.)


PS.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는 매 30분마다 알크마르에 가는 기차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벨기에] 브뤼셀에서 길을 헤매다 들어간 만화박물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