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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y 10. 2016

"What do you want to do?"

저렇게 '지맘대로' 살아도 될까?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람들

 "그거 알아? 우리 네덜란드인들은 10대 때 딱 2가지만 배워."


 "그게 뭔데?"

 "What do you want to eat? What do you want to do?"


게스트하우스 직원 페리의 네덜란드 교육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과장 좀 했는데, 어릴 때부터 우린 항상 질문을 받아. '뭐 먹고 싶냐', '어디 갈래',  '뭐하고 싶니' 등의 아주 간단한 질문부터...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부모님, 친척, 선생님, 친구... 모두가 내게 질문을 하니까 내가 평소에 생각이 없으면 그 질문들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거야.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렇게 작은 것부터 생각하는 버릇 덕분에 국민들 각자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어. 난 우리나라 교육 좀 괜찮은 거 같아."


저 두 질문으로 내 머릿속에 네덜란드인이 받는 교육을 간결하게 압축시켜 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사소한 것 하나까지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양육법. 학생이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 게다가 공교육에서 영어를 어찌나 잘 가르치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해 대부분의 국민은 2개 국어를 구사한다. 버스기사님도, 시골의 후미진 가게 주인도, 누구나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다. 공교육만으로 2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교육도 부럽지만, 국민 각자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가 있다는 게 참 근사하다.


아무튼 페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근무하며 새벽에는 그래피티를 하며 지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럼 그래피티가 합법이야?"

"당연히 불법이지. 그래서 경찰 뜨면 도망가야 돼!" 

새벽에 그렇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대마초 때문인지 항상 눈밑에 다크서클이 있는 그 아이는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 교수처럼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피티를 이야기하는 순간은 눈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전 세계 여행객들과 이야기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러 다니는 그 삶이 좋단다.


나한테는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야.


그렇게 페리와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바에 새로 들어오는 여자에게 페리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이 여자아이는 왠지 까다롭지 않을까라는 내 기대와는 다르게 굉장히 붙임성 있다. 바에서 계속 맥주를 들이키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본인의 스케치북. 그걸 보여주며 한 장 한 장 본인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본인의 스케치대로 몸에 문신까지 새겨버린 화끈한 영혼이다. 그녀는 미술 전공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에 휴가를 왔는데, 본인에겐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라고 했다. 실제로 오후에는 암스테르담의 조용한 카페나 운하 근처에 앉아 몇 시간이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밤이 되면 본인이 좋아하는 술과 대마초를 즐기며 밤새도록 파티에서 놀다가 해 뜰 때쯤 돌아와서 푹 잔다. 그리고 오후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을 일주일 내내 암스테르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고흐의 미술관에서는 7시간 동안 그림 감상을 하고 있다. 휴가니까, 암스테르담이니까, 다른 사람들 다 가는 곳에 가서 사진 찍고 다니는 게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만 한다. 유명한 곳에 가는 게 휴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들로 시간을 가득 채우는 것. 그게 휴가다.


 "너희는 11개월 일하고 1개월 휴가 가지? 나는 11개월 여행하고 1개월 일해."

 

"비용은 어떻게 충당해요?"

 "11개월 동안 내 수만 마리의 일꾼(꿀벌)들과 퀸(여왕벌)이 날 위해서 열심히 일해 놓으면 내가 남아공 돌아가서 1개월 동안 일을 하지. 그리고 그 돈으로 난 다시 다음 11개월 동안 여행 다닐 수 있어. 큰 돈은 아니라 고급 여행은 못해도  배낭여행은 충분히 할 수 있어."


남아공에서 온 흰 수염이 인상적인 아저씨(사실 실제로 보면 할아버지다.) 에드워드. 그동안 6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30년간 여행하며 살고 있는데 이번이 다섯 번째 네덜란드 방문이란다. 아저씨에겐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삶의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아닌 삶 자체다. 11개월 동안 여행하고 1개월 일하는 삶. 아무리 사회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래도 1년 중 11개월을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 아저씨는 어떤 마음일까?

때마침 그날 북한에서 도발을 일으켰고, 여기 네덜란드 뉴스에서도 꽤 관심 있게 그 주제를 다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드워드 아저씨가 남한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가끔씩 일어나는 북한의 도발에 외국인이 더 걱정하고, 나는 별 걱정하지 않는 이 장면이 이제는 그리 낯설지가 않다. 장기 여행자 답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방에서 식빵과 잼을 꺼내 맛있게 먹던 아저씨는 매스미디어의 음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거 알아? 정치는 다 쇼야. 아무리 현 집권당이 정치를 못해도 결국 다음 선거에서 그들이 선거할 거야. 왜냐고? 이미 그들끼리 다 정해놓았거든. 정치는, 투표는 그냥 쇼일 뿐이야."

 "맞아요. 도대체 왜 그렇게 돌아가는 걸까요?"

오바마, 넬슨 만델라를 이야기하며 아저씨만의 강의가 이어진다. 중간중간 내가 이야기를 거들어도 본인의 이야기만 쭉 하신다. 아저씨는 혼자 하는 오랜 여행 끝에... 그냥 말이 하고 싶었나 보다. 15분 동안 열심히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겨워진 나는 자러 들어갔다.

 

이튿날 다시 마주친 에드워드 아저씨는 다시 내게 1980년대 한국 인구의 변화 추이에 대해 10분간 설명을 했다. 1년 중 11개월을 여행하며 사는 삶과 그 마음을 듣고 싶은데 어쩐지 아저씨는 다른 이야기들이 더 하고 싶으신가 보다.


어쨌든 아저씨는 오늘도 지구 어딘가 떠돌고 계시겠구나.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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