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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Sep 07. 2016

영어 때문에 X무시당한 순간들

반갑지 않지만 내가 성장하는 계기

종종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은 좋은 형태로 찾아오지 않아서, 한 번 크게 당해봐야 깨달을 때가 있다. 물론 현명한 사람들은 그러기 전에 미리 준비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항상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종종 밀어 넣기도 한다.)

내 영어가 가장 빨리 단기간에 늘었던 순간은 영어 때문에 'X무시'당한 순간들이 쌓였을 때다.


아무튼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않나 싶은 영어 실력으로 무작정 간 싱가포르.(물론 전혀 괜찮은 실력이 아니었고,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200번 넘게 이력서를 보내고, 20번 이상의 인터뷰 끝에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분명 면접도 다 봤는데... 얘네들 뭐라는 거야? 게다가 싱가포리안 특유의 영어 악센트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영어실력은 영어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현격한 차이가 나는데, 신입이었던 나는 그래서 더 난감했다.(한국에서도 입사 초기, 선배들이 하는 말이 한국어인데도 암호처럼 들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못 알아들어서 미안하고, 나를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늘어갈 무렵 아직도 분통 나게 하는 작은 해프닝이 생겼다.


1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면 돼."

"아... 미안, 다시 한번 말해 줄래?"

"(깊은 한숨과 싸늘한 눈빛) 아니, 나 재방송 안 할 거야."


냉랭한 한 마디를 날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던 매니저. 순간 얼어붙은 사무실 분위기. 옆 동료가 다시 차근차근 내게 설명해 주는데, 난 너무 비참했다. 그런 일을 겪었지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열여덟, 개나리" 등 오히려 한국 욕만 찰지게 하는 법을 익혔다. 


2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난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됐다. 그곳엔 다행히(?) 나 말고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영국인 이사와 필리핀 매니저로 이루어진 2차 면접도 무사히 마치고 일하던 어느 날.

 "니가 어떻게 나랑 같이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내가 회사 들어오기 전 나를 면접 본 영국인 이사. 내가 그의 말을 몇 번 못 알아듣자 날카로운 말을 내게 던졌다. 내가 말할 때 틀린 문법이 있으면, 낮은 목소리와 결코 따뜻하지 않은 표정으로 차갑게 지적하던 그. 면접에서는 예상 질문과 답변을 달달 외웠기에 나의 진짜 영어실력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전에선 달랐다.

 '야, 넌 모국어로 일하고 있잖아. 니 모국어가 운 좋게 세계 공용어일 뿐이라고!'

난 또 내 영어실력을 반성하지 않고, 그를 욕했다.


3

"이번 일은 XX에게(접니다.) 맡기자."

내가 참석하지 않았던 어떤 미팅.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나를 넣자는 동료들의 말에 필리핀 매니저가 조용히 한 마디 했다.

"XX는 영어 못해서 안 돼."


미팅에 참석했던 동료가 살짝 전해 주었던 그 말.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그때 비로소 화가 났다. 진작 났어야 할 화가 이제야 났다. 같은 실력으로 같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왜 내가 이렇게 무시받아야 되나... 그리고 입사 3개월째, 처음으로 나의 생존에 불안을 느꼈다.




나와 그 사람들에 대한 분노, 생존에 대한 두려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출퇴근 시 무조건 영어 들을 것, 가지고 있던 외국영화 중 하나를 골라 통째로 외울 것, 웬만하면 한국 사람 만나지 말 것, 외국인이 많은 모임에 나갈 것, 영어 스터디 활동할 것 등 몇 가지 철칙을 세웠다.

그렇게 몇 달을 살았다. 누가 영어 못한다고 해도 '그래, 나 못해. 어쩌라고?'라며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내 공부와 내 일에 충실했다. 필리핀 매니저가 나는 못할 거라고 했던 프로젝트의 테스크포스팀에 들어가게 됐고, 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을까? 회사의 HR 담당자가 나에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 못하는데 너랑 OOO(다른 한국인 동료)는 영어 참 잘 한다."

 "내가 잘 한다고?"

 "응.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고 대답도 다 하잖아."


 내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나는, 그 말을 그저 '듣기 좋은 말'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A가 동료B를 뒷담화하는 내용이 신경 쓰지 않는데도 귀에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아마 뒷담화라서 더 그런 듯. ㅋ) 그 사실을 깨닫고 신기하다고 여길 즈음 "다시 한번 더 말해 줄래?"라고 말하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도 난 영어 때문에 가끔 좌절하고, 계속 나 자신을 영어에 노출시킨다. 


몇 번의 사건을 통해 내 영어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스스로 확신했을 때, 난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감사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진작 시작했어야 하는 공부는 몇 번이나 자존심에 상처받고, 타인을 저주한 끝에야 시작됐다. 누군가 나의 부족함을 알려주면 나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데, 알량한 자존심만 세우고 있었다. '인생은 학교라서, 내가 무언가를 배우지 못하면 그걸 배울 때까지 똑같은 괴로움이 찾아온다.'는 말은 정답이다. 괴로운 일이 일어날 때는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와 술을 찾기보다는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언제고 다시 또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지난 몇 년 간 프로 이직러로 생활하며 가장 늘어난 건 영문이력서 만드는 요령. 

잘 먹히는 영문 이력서를 만드는데는 영어 실력이 크게 상관 없더라고요. 

그 요령을 여러 차례 브런치를 통해서 나누었는데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싶어 아예 전자책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문 이력서를 좀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 여러 글은 많이 봤지만 어떻게 적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분들, 외국계 기업에서, 좀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으신 분들.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

https://kmong.com/gig/24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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