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새벽 4시, 해결되지 않은 부채감에 대하여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는 이 말을 명언이라 치켜세우지만,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에게 이 문장은 그저 무책임한 방관처럼 들린다. 새벽 4시. 세상 모든 것이 잠든 시각, 나만 홀로 깨어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컵과 함께 비상약을 삼킨다.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여 약을 늘렸다.
증약.
그 단어가 주는 패배감이 씁쓸하지만, 당장은 기계적으로라도 뇌의 스위치를 꺼야 했다. 그래야 내일이라는 링 위에 다시 오를 수 있으니까.
불안은 안개처럼 스며드는 게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목을 조른다. 지금 나를 짓누르는 건 막연한 공포가 아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덩어리들이다.
우선 이모의 암.
가족의 고통 앞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꿈도, 문학적 성취도 다 휴지 조각이 된다. 대신 아파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괜찮아질 거라고, 영혼 없는 위로를 건네는 것뿐이다.
그 뻔한 말들이 허공에 흩어질 때마다 나는 내 언어의 빈약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현실의 족쇄,
신용회복.
소설가라는 그럴싸한 명함 뒤에는 신용회복 중이라는 초라한 꼬리표가 붙어 있다. 성실하게 갚아나가고는 있지만, 돈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과거의 내가 저지른 선택들이 현재의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나.
다 지나간다고? 아니, 빚은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갚기 전까지는 끈질기게 내 옆에 붙어 있다.
그 와중에 개정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 번 세상에 내놓았던 자식을 다시 씻기고 입혀서 내보내는 일. 이번에는 다를까. 이번에는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또다시 외면받는다면, 그때는 정말 핑계 댈 곳도 없으니까. 완벽주의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문장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으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작게 만드는 건 사람들이다.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여자친구.
맛있는 밥 한 끼, 좋은 선물 하나 사주는 게 망설여지는 내 지갑 사정이 그녀의 미소 앞에서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건 로맨스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연애는 통장 잔고와 비례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반비례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그리고 부모님.
나이 서른이 넘은 아들이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죄송하다는 말도 이제는 사치 같다.
그저 아프지 않으시길,
내가 번듯해질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바라는 이 이기적인 마음이 또 나를 찌른다.
약 기운이 조금씩 돌기 시작한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곤두섰던 신경이 조금 무뎌진다. 다 지나간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다만, 버티면 지나간 흔적이라도 남는다는 건 믿는다.
지금의 이 불면도, 이모의 암도, 빚도, 미안함도.
결국은 내 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비극적이거나 혹은 지질한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나는 내일도 아침 7시에 카페로 가, 글을 쓸 것이다. 불안해서 쓰고, 미안해서 쓰고, 갚아야 해서 쓴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자,
이 지독한 현실을 돌파하는 방법이다.
비상약의 기운이 돈다.
이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아침에는 부디,
이 밤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뜰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