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은 삭제다.

14화 : 현실의 나를 죽여야 소설 속의 그가 산다.

by 현영강

글이 안 써진다고 징징대는 지망생들의 작업 환경을 본 적이 있다. 가관이다. 모니터에는 한글 창을 띄워놓고, 옆에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수시로 카톡을 확인한다.



그들은 그걸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걸 '자해'라고 하겠다.



소설은 질투가 심한 애인과 같다. 당신이 단 1%라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면, 문장은 즉시 등을 돌려버린다. 당신이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는 그 찰나의 순간, 소설 속 주인공의 생명력은 꺼져버린다.



진짜 집중(Focus)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삭제'라고 부른다.



글을 쓰기 위해 의자에 앉는 순간, 당신은 현실 세계의 로그아웃 버튼을 눌러야 한다. 다음 달 나갈 돈이 얼마가 있는지, 내일 날씨가 어떤지, 점심에 뭘 먹었는지. 그 구질구질한 현실의 데이터들을 뇌에서 삭제해야 한다. 오직 내가 창조하고 있는 세계, 그 허구의 공간만이 유일한 리얼리티로 남을 때까지.



이건 명상과는 다르다. 명상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면, 집필은 마음을 다른 것으로 꽉 채워터뜨리는 것이다.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쓴다면, 작가의 심장도 쿵 하고 내려앉아야 한다. 주인공이 칼에 찔렸다면, 작가의 옆구리도 시큰거려야 한다.



그 정도의 동기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쓰고 있는 게 아니라 타자를 치고 있는 거다.



몰입의 상태는 위험하다. 시간 감각이 왜곡되고, 배고픔도 잊고,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잊게 된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잠영하는 것과 같다. 숨이 막히고, 폐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도, 더 깊이, 더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에 '대물'이 있으니까.



어설프게 집중하려 하지 마라. "딱 1시간만 써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졌다. 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건 직장인이나 하는 짓이다. 작가는 시간이 아니라 장면을 산다. 이 장면을 끝내기 전까지는, 지구가 멸망해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독기. 그 광기 어린 집착만이 독자를 납치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든다.



스마트폰을 꺼라. 방해금지모드는 아주 좋은 방안이다. 방문을 잠가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라.



"나는 지금 방구석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살인 사건이 벌어진 19세기 런던의 뒷골목에 있다."



현실의 당신이 죽어야, 소설이 산다. 글을 다 쓰고 나왔을 때, 마치 다른 차원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어지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 현기증이 없다면, 당신은 방금 가짜를 쓴 것이다.




집중해라.

세상 모든 소음을 지우고,

오직 당신의 문장 소리만 남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