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자비 없는 퇴고만이 소설을 살린다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작가는 묘한 쾌감과 마약 같은 뽕에 취하게 된다. 밤을 새워가며 모니터에 쏟아낸 수만 자의 글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마치 헤밍웨이나 도스토옙스키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특히 그중에서도 작가 스스로 감탄하며 밑줄을 긋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가 막힌 은유, 철학적인 통찰이 번뜩이는 독백,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서정적인 풍경 묘사. 작가는 그 문장을 보며 자신의 천재성에 전율하고, 독자들도 이 문장을 읽으며 나와 똑같은 감동을 느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그 문장이 당신의 소설을 망치는 가장 치명적인 암세포일 확률이 높다.
영미권 문창과에서 가장 뼈아프게 가르치는 격언인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s), 즉 네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을 죽여야 한다는 잔인한 원칙이 여기서 등장한다. 소설은 명언집이 아니고 감성 에세이도 아니다. 소설의 본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서사 그 자체다.

아무리 아름답고 기발한 문장이라도 그 문장이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거나, 다음 사건을 촉발하거나,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쁜 쓰레기에 불과하다. 초보 작가들은 서사의 흐름이 뚝 끊기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그 잘난 문장을 도저히 버리지 못해 억지로 끼워 넣는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다. 작가가 서사를 팽개치고 갑자기 무대 위로 기어 올라와 자기 문장력을 과시하며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1초 만에 눈치챈다. 그리고 그 순간 소설을 향한 몰입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내 두 번째 장편 반반한 마을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 나는 무려 30만 자가 넘는 원고를 가차 없이 도려내야 했다.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문단들, 내가 며칠 밤을 새우며 깎고 다듬었던 눈부신 문장들이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것처럼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나는 백정의 심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 화려한 수식어들을 모조리 걷어내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겨놓자, 역설적이게도 멈춰있던 서사의 엔진이 미친 듯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설의 속도감은 작가가 무엇을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버렸느냐에서 결정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비 없는 퇴고를 위해서는 원고를 활자가 아닌 소리로 대해야 한다. 완성된 원고를 소리 내어 읽어보라.
아무리 눈으로 볼 때 유려해 보이는 문장이라도,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호흡이 턱 막히거나 혀가 꼬인다면 그건 죽은 문장이다. 부사와 형용사는 가장 먼저 도살장에 끌고 가야 할 표적이다. 정말, 매우, 몹시, 화려하게, 끔찍하게 같은 수식어들은 작가의 게으름을 증명하는 단어일 뿐이다. 슬프게 울었다 대신 어깨를 들썩였다고 고치고, 몹시 화가 났다 대신 유리잔을 벽에 던졌다고 고쳐라.
군살을 깎아내고 깎아내어 더 이상 단 한 글자도 뺄 수 없을 만큼 건조하고 단단해졌을 때, 비로소 그 문장들은 독자의 심장에 날아가 꽂히는 비수가 된다.
작가가 자신의 문장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소설은 생명력을 잃는다. 원고를 수정할 때 당신은 어미의 마음이 아니라 냉혹한 킬러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그 문단,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바로 그 문장을 드래그해서 백스페이스를 눌러라.
그 뼈아픈 상실을 견뎌낸 작가만이,
독자의 밤을 훔치는 진짜 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