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8화 :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순간 서사는 죽는다.

by 현영강

흔히 빠지는 함정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자신에게 세상을 향해 던질 위대한 메시지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삶의 진리를 깨우쳐주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래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일장 연설을 늘어놓거나, 지문을 통해 작가 본인의 철학적 견해를 줄줄이 읊어댄다.



작가는 스스로를 선지자나 지식인으로 포장하며 뿌듯해할지 모르지만, 그 원고를 읽는 독자는 불쾌감을 느낀다. 독자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굳이 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훈계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훈계는 현실의 직장 상사나

부모님 잔소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친다.



​소설은 정답을 제시하는 매체가 아니라, 치열한 질문을 던지는 매체다. 작가가 처음부터 이것이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답을 정해놓고 서사를 전개하는 순간, 소설 속 인물들은 생명력을 잃고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얄팍한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만다.



주인공은 한치의 오점도 없는 도덕군자가 되어 바른말만 골라 하고, 악당은 그저 주인공의 정의로움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평면적인 샌드백으로 소비된다. 이런 흑백논리로 점철된 세계관에는 어떠한 인간적인 고뇌나 입체적인 갈등이 끼어들 틈이 없다.



현실 세계의 인간은 그토록 단순하지 않다.



선악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며, 때로는 가장 선한 의도가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진짜 세상의 모습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절대로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서 떠먹여 주지 마라. 대신 주인공을 지독한 딜레마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어라. 그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고통스럽게 파멸해가는 과정, 혹은 타락의 유혹 앞에서 처절하게 흔들리는 내면의 붕괴를 그저 묵묵히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독자에게 인간의 존엄이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인물들이 각자의 이기심과 절박함 속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떻게 늪에 빠져드는지를 냉정하게 중계했을 뿐이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독자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두어야 한다.



​작가가 개입하여 서사를 통제하고 교훈을 쥐어짜 내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위대한 문학은 작가가 던진 거창한 메시지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 피 흘리며 내딛는 위태로운 발걸음에서 피어난다.



당신의 소설에 만약 정의, 진실, 사랑 같은 추상적이고 거창한 단어들이 설명조로 나열되어 있다면 당장 백스페이스를 눌러 전부 지워 버려라.



소설가는 설교단에 선 목사도 아니고, 교탁 앞의 훈장님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인간이라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가 진흙탕 속에서 어떻게 뒹굴고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잔인한 관찰자일 뿐이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다. 작가가 입을 꾹 다물고 서늘한 눈으로 상황을 묘사하기만 해도, 독자는 그 이면에 숨겨진 비극과 모순을 스스로 찾아내고 깊은 여운에 잠긴다. 가르치려 들지 마라. 그냥 보여주고, 질문만 던진 채 무대 뒤로 매정하게 사라져라.





가장 침묵하는 작가가,

독자의 마음속에,

가장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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