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서사의 목을 조르는 방식
초보 작가든 기성 작가든, 원고를 쓰다 보면 스스로가 천재로 느껴지는 끔찍하고 달콤한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밤을 새워 쥐어짜 낸 수천 개의 문장들 사이에서, 유독 기가 막힌 비유나 소름 돋게 유려한 묘사를 발견했을 때다. 작가는 모니터 앞에서 스스로 빚어낸 그 완벽한 문장에 취해 수십 번을 소리 내어 읽으며 도파민을 분비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네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바로 그 문장이 네 소설의 멱살을 잡고 서사의 속도감을 시궁창에 처박고 있는 가장 악질적인 암세포일 확률이 높다.
소설은 작가의 화려한 어휘력을 뽐내는 시화전이 아니다. 독자가 문장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책갈피를 끼워두고 사색에 잠기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철저한 실패다. 긴박하게 연쇄 살인마를 쫓는 스릴러의 한복판에서, 혹은 연인과 피 튀기며 이별하는 서늘한 갈등의 정점에서 뜬금없이 작가의 자의식이 번뜩이는 수려한 문장이 등장한다고 상상해 보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서사의 긴장감은 일순간에 툭 끊어지고, 독자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 아니라 모니터 뒤에서 폼을 잡고 있는 작가의 역겨운 맨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퇴고는 단순히 오탈자를 잡아내고 비문을 수정하는 얄팍한 교정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스스로 부여한 자기 연민을 박살 내고, 자신이 낳은 새끼의 목을 직접 비틀어버리는 지독한 도축의 시간이어야 한다. 이 문장을 쓰기 위해 내가 몇 시간을 고민했는데, 이 비유를 찾으려고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졌는데 따위의 구차한 변명은 집어치워라.
그 문장이 아무리 눈부시게 아름답더라도, 앞뒤 문맥의 속도감을 갉아먹거나 캐릭터의 감정선보다 앞서 나가 튀어 오른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백스페이스를 눌러 산산조각 내야 한다.
가장 아끼는 문장을 도려내는 그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프로가 될 자격이 없다. 버리지 못하고 덕지덕지 끌어안고 가는 서사는 결국 작가의 알량한 자의식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질식사하고 만다. 정 버리기 아깝다면 '버리는 문장장' 같은 비겁한 폴더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유배를 보내든가 해라. 하지만 진짜 무자비한 작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 아름다운 쓰레기들을 영원히 딜리트(Delete) 해 버린다.
당신의 원고를 다시 한번 차갑게 노려보라. 네 눈에 가장 예뻐 보이고, 남들에게 가장 자랑하고 싶은 그 문장에 사정없이 붉은 줄을 그어라. 네가 뼈저리게 사랑한 문장을 죽여야만, 비로소 네 소설 전체가 숨을 쉬며 살아난다. 예술가인 척 폼 잡지 마라.
우리는 독자의 시간을 훔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살점마저 베어내는 냉혹한 백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