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불우
초봄의 시내버스는 지독하게 건조하고 답답했다. 바깥은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버스 내부는 과열된 히터가 뿜어내는 인공적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답답한 공기를 위협으로 감지한 듯, 또다시 경고음 없이 요동치며 심박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주머니 속 비상약 통의 매끄러운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나에게 이 열기는 폭력적일 만큼 징그러운 생명력이었다.
그런데 맞은편 좌석에 앉은 노인의 시간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계절에 멈춰 있는 듯했다.
노인은 두꺼운 솜바지에 낡은 패딩 점퍼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 채운 채로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앙상하게 뼈마디가 불거진 두 손을 연신 비비며 이따금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더위에 외투를 벗거나 창문을 조금씩 열고 있었지만, 노인만은 홀로 지독한 한파 속에 버려진 사람처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의 추위는 바깥의 기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육체의 가장 깊은 곳, 엔진이 꺼져가는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증식해 올라오는 본질적인 영하의 온도였다. 젊은 시절 맹렬하게 타오르며 삶을 지탱했던 생의 땔감들이 바닥나고, 이제는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외부의 미지근한 온기에 기대어 간신히 얼어붙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는 쇠락한 육신.
노인의 메마른 입술이 떨릴 때마다, 죽음이라는 서늘한 그림자가 조금씩 그의 체온을 갉아먹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 앙상한 떨림을 관찰하며 나는 가만히 내 손목의 맥박을 짚었다. 내 몸은 원치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불이 붙어, 심장을 널뛰게 하고 온몸의 감각을 과각성 상태로 끓어오르게 만든다.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나의 병적인 열기와, 생명력이 증발해 버려 스스로를 데우지 못하는 노인의 지독한 냉기. 우리는 이 좁은 버스 안에서, 온도계의 완벽한 양극단에 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육체의 한계와 싸우고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기계음이 울리고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버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노인은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그 뼈만 남은 손으로 손잡이를 위태롭게 부여잡고 차가운 거리로 내려섰다. 그의 낡은 패딩 뒷모습이 봄바람 속으로 파묻히듯 멀어졌다.
나는 다시 뜨거워진 숨을 천천히 내쉬며 노트 앱을 켰다. 인간은 누구나 한 줌의 재가 되기 위해 각자의 속도로 타들어 가는 불꽃이다.
어떤 불꽃은 나처럼 통제 없이 미친 듯이 튀어 오르고, 어떤 불꽃은 저 노인처럼 재만 남긴 채 스러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