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배속

20화 :

by 현영강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남자의 이어폰 틈새로 쥐가 우는 듯한 기괴한 금속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인물들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산하게 움직이며 대사를 뱉어냈다. 남자는 지금 꽤나 무겁고 진지한 예술 영화를 '1.5배속'으로 재생해 시청하는 중이었다. 배우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찰나의 여백이나, 허공을 응시하며 길게 내쉬는 한숨 따위는 화면을 톡톡 두드리는 남자의 손가락질(10초 건너뛰기) 몇 번에 무참히 잘려 나갔다.



​"결말만 알면 되거든요. 그사이의 지루한 공백을 견딜 만큼 내 인생이 한가하지 않아서요."



​눈이 마주치자 그가 변명하듯 어깨를 으쓱하며 혼잣말을 흘렸다. ​효율. 현대인들이 신흥 종교처럼 떠받드는 그 폭력적인 단어. 남자는 영화가 가진 고유의 호흡과 맥박을 거세한 채, 오직 앙상한 '정보'와 '결말'만을 진공청소기처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슬픔도, 분노도, 처절한 비극도 1.5배속의 세계에서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가만히 내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교감신경이 멋대로 날뛰는 내 심장은 타의에 의해 늘 1.2배속, 혹은 1.5배속으로 불규칙하게 요동친다. 나는 이 통제할 수 없는 과각성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어 남들처럼 '1.0배속'의 평온한 일상을 살아보기 위해 매일 둥근 처방약을 삼키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그런데 내 눈앞의 이 건강한 영장류는, 스스로 안락한 1.0배속의 현실을 걷어차고 기어이 그 숨 막히는 1.5배속의 쳇바퀴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었다.



​남자가 마침내 2시간짜리 영화를 45분 만에 '처리'하고 화면을 껐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진한 여운이나 카타르시스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할당된 업무를 하나 끝냈다는 얄팍한 안도감과, 또다시 무언가를 배속으로 돌려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텅 빈 불안감만이 번들거렸다. 그는 허겁지게 다음 영상을 찾아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찌익- 하는 기괴한 배속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때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서재에 켜둔 내 노트북 화면을 떠올렸다.



​소설이란 본디 독자의 시간을 억지로 붙잡아두는 오만한 매체다.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지독한 함정을 파놓고, 묘사와 은유라는 이름의 늪을 만들어 독자가 결코 활자를 건너뛰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1.5배속으로 도망치려는 이얄팍한 시대의 멱살을 틀어쥐고, 내가 조판해 낸 인물들의 가장 무겁고 느릿한 호흡 속으로 기어이 침수시켜 버리겠다고.



​남자의 스마트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산스러운 빛을 등지고 카페를 나섰다. 오늘 밤엔, 어떤 재생 버튼으로도 속도를 높일 수 없는, 아주 끈적하고 숨 막히는 문장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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