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서다.

어쩌면 이 암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인지도 모른다.

by 재생지

프롤로그 2.


2018년 2월, 한 줄짜리 권유가 바꾼 인생


다니던 피부과에서 의사는 진료 중 가볍게 말했다.

“종합 검진을 한번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단순한 권유였다.

하지만 그날은 내 인생의 방향을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꿔 놓았다.


갑상선 초음파 검사 중

딸깍거리는 마우스 버튼소리가

같은 자리에서 반복될수록

묘한 정적과 함께

처음 느끼는 뭔지 모를 불안이 몰려왔다.


검사 끝나고

”주치의 선생님을 꼭 뵙고 가세요.”

그 한마디에

공기가 묵직해졌다.


갑상선에 좋지 못한 형태의 결절,

림프절 주변의 다수 결절들.

최종 진단은 갑상선암.

그리고 이미 측경부를 지나간 전이가 확인되었다.


그날 이후 병원이라는 공간은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한 세상이 되었다.


터널 같은 시간들


급한 마음과 혹시나 하는 기대에

몇 군데의 병원을 더 향한다.

그러나 의사의 설명은

내 앞이 아닌 먼 곳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곁의 아내는

숨을 꾹 눌러 담은 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아 보이는

그날의 현실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후로 매일이 터널 같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들,

수술을 기다리는 날들,

잠든 척하며 서로의 깊은 한숨을 소리 없이 감추던 밤들,

그리고 아침마다 부은 눈을 애써 웃음으로 감추던 아내와

마주하던 출근 시간들.


수술 날짜는 2018년 4월 25일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모습


수술실로 들어가며 닫혀가는 자동문 사이로

아내가 보인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머리를 젖혀 거꾸로 뒤집힌 세상을 본다.

안경을 벗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천천히 손을 흔드는 아내의 모습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했다.


그 순간,

오래전 전철에서 처음 본 아내에게 이끌려

혼자 설렘을 안고 뒤따라가던

그 젊은 날의 장면이

문득 눈앞에 포개졌다.


터널 속

불빛이 번갈아 스치는 것처럼

병원 복도의 형광등과

젊었던 날의 전철 칸이

필름 조각처럼 끊기며 오갔다.


그날 이후 내 삶의 달력은 조금 달라졌다.


수술 후에는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침울함과 우울함이 교차했고,

때로는 불현듯 밀려 오르는 과한 에너지.


중·고생이던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많아졌던 것도 같다.

혹여 내가 없을 수도 있는 세상에서

그 아이들이 어떻게 서 있을지

걱정돼서였을 것이다.


예후, 재발, 부작용…

나는 수없이 검색하고, 공부했다.

두려움보다 알아야만 버틸 수 있었다.


누군가는 위로의 마음으로 말한다.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는데...”


그 말 앞에 생각했다.

'암이 아닌 암이 어디 있나'


예후가 비교적 좋다는 말일뿐,

이미 전이가 있는 환자의 하루는

당사자 아니면 알기 어려운 무게를 가진다.


늑골에도 징후가 있어

추적 검사가 필요했고,

후유증이 심하다는 환우들의 경험 역시

나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암 진단과 수술을 거치면서

분노, 부정, 걱정, 감사, 체념, 환희, 안도, 우울, 무력 등등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돌아가며 지나온 듯하다.


퇴원 후

아무 일 없었던 듯 쉼 없이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어딘가

'불량품이 되어 버린 기분'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암은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선물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자

삶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그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값진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친 발걸음도

언젠가는 그리움이 되어 되돌아온다.


지나쳐 간 모든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끝에서야

뒤늦게 붙잡으려 한다.

채우는 데만 마음을 빼앗긴 채,

정작 지금 가진 것들은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지금 가진 것을 느끼고,

그것이 무엇이든 떠나기 전에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의 기술 아닐까.


그렇게 나는 하루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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