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어버리는 시간의 비밀
어느 날 엄마랑 통화하다가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연아, 엄마가 예전에 너한테 그랬잖아. 엄마도 너처럼 누군가 이렇게 계속 신경 써주고 공부습관을 만들 수 있게 학업 분위기를 조성시켜 줬다면 엄마도 너처럼 되었을 거라고."
"그랬지?"
"그런데 최근에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 뭐냐 하면..."
나는 줄곧 다른 사람들보다 이해하고 깨닫는데 한텀 늦거나 배우는 게 느렸다. 아무튼 빠르지 않았다는 뜻이며 남들보다 특출 나거나 영특하진 않았단 이야기이다. 남들은 1~2번 만에 풀어서 이해될 문제를 나는 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10번 이상은 되풀이해야 이해되었다.
그런 내가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전략은 남들보다 오랫동안 엉덩이 붙이기였다. 그건 곧 '성실함'이었고, '은둔'과 '끈기' 그리고 '집요함'이었다. '인내'와 '지구력'을 갈고닦은 나머지 나는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엉덩이 붙이고 문제집을 풀 수 있었고, 미술 실기와 수학공부를 병행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참 미련맞고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고 싶을 만큼 지독한 스케줄과 강도였지만, 그렇기에 나는 미대입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러한 나의 '기질들'은 오늘날 내가 미국에서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간략한 이야기. 그런데 엄마는 내게 사뭇 다른 이야기를 건네셨다.
"뭐냐 하면, 엄마는 너처럼 이끌어주는 수학 선생님이나 미술 선생님이 계셨어도, 너처럼은 되지 못했을 거란 거야. 엄마는 최근에서야 이걸 깨달았어."
"무슨 말이야?"
엄마는 잠깐 머뭇거리시더니 이내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유튜브의 어느 영상에서 계속 끈질기게 해 나가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보셨는데, 그 이야기는 정확히 나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졌으며 엄마가 다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엄마가 설령 나처럼의 학업 분위기가 조성된다 할지라도 현재의 나처럼 성장했을 리 만무했으리란 결론이었다.
"엄마도 오랫동안 끈질기게 공부를 할 순 있어도 너처럼은 안 됐을 거야. 너는 그간 힘들다고 울고 어렵다고 투덜대고, 때론 해낼 수 있는지 자신이 없어하면서도 힘들어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해내고야 말았잖아."
"그랬지. 쉬운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지."
"그게 네가 가진 '힘'이야. 어느 순간, 너는 계속 끈질기게 해냈고, 정말로 해내고 말았지. 그러면서 너는 스스로 한계점을 이겨내고, 또 무언가를 넘고 또 뛰어넘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엄마는 그 유튜브 영상 속, 끈질기게 해 나가는 사람은 결국 그 무언가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면서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일정한 단계를 지나 아득히 초월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그래. 그래서 엄마는 생각했어. 아, 네가 힘들다고 지친다고 어려움을 겪고 못하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을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잖아. 그런데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너는 어느 순간, 어느 일정한 지점을 넘어 통과한 거야. 이젠 무엇이든 다 잘 해내는 사람이 되었잖아. 엄마는 그런 너를 보면서 '아, 이 아이가 나는 해낼 수 없는 넘어서는 무언가를 해냈구나.'라고 느꼈어. 너는 한계를 넘어선 그 무언가의 영역에 다다랐어."
이때까지 엄마가 내게 해준 격려와 칭찬과는 사뭇 결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어라, 그런가? 그래왔던가?
늘 이때까지 공부도, 실기도, 시험도 그 무엇도 남들처럼 쉽게 순탄하게 넘어온 적이 없었다. 남들보다 배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미련 맞을 만큼 외워도 그만큼의 성과가 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낄 때도 많았고, 차라리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약삭빠르게 인생을 편하게 살아보고도 싶었다.
그렇게 하나뿐인 인생을 어떻게든 후회를 남기지 않게 살아보자라고 다짐하고 갈고닦은 나의 '은둔'과 '끈기'가 이제는 단순히 나의 한계점을 뛰어넘게 만드는 걸 모자라 그 아득히 무언가의 경지에 다다른 '어떠한 영역'이 되었다. 그건 나도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처음 듣는 말이자 표현이라 적확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느낌은 일단 이러했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요즘 '공부'를 하면서도, '코딩'이든 '3D'든, 심지어 영어로 수업준비를 하든 그 어떤 과정을 이젠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하고 있다.
설령 처음해보고, 시도해야 하고, 또 새로 배워야 할지라도 이젠 그 '낯 섬',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로 인해 마주할 새로운 세계, 영역을 알게 될 생각에 즐겁다. 이게 엄마가 말하는 그 아득히 넘어선 무언가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제 어려움보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게 되는 '앎으로 배우는 기쁨'이 더 크다.
그렇게 나는 엄마에게서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값진 언어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마다 내가 쉽게 낙담해질 때마다 꺼내보고자 이렇게 한자씩 적어본다. 나 스스로보다 더 엄마가 먼저 알아차려주고 깨우치게 해 준 나 자신의 '영역'을 일깨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