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베이스 기타 레슨을 시작하고서 1달이 훨씬 지난 기록

by 이소연


나는 미국에서 소위 '나 혼자 잘 산다'를 실현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이왕 미국까지 온 김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상자를 그 누구보다 잘 실천 중인 대학원생이다. 그중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베이스 기타 연주하기'를 실천 중인데, 우연히 들른 악기 상점에서 운명처럼(?) 베이스 기타를 마주했고, 첫 4달은 홀로 독학을 하며 TAB 악보 보는 법과 연주법을 익히다가, 정체된 실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자 그리고 계속 연주하기 위한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주고자 그리고 엄마의 악기는 제대로 된 선생에게 배워야 첫 습관이 잘 잡힌다는 조언에 따라 베이스 기타 레슨을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엔 반신반의로 시작했던 베이스기타 레슨은 작년 11월 즈음에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순항 중에 있다. 솔직히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올 줄도 몰랐으나 조금 있으면 곧 5개월이라는 세월의 속도가 참으로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첫 1달은 맹숭맹숭한 느낌이 컸다. 그래도 처음이니까, 기본기부터 다시 제대로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이 주신 핑거링 연습과 메트로놈 연습을 주야장천 했다. 원래 기본에 제일 재미없지만 제일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 기본기를 첫 1달 나름 충실히 닦았던 탓일까 2달째에 접어들 때 즈음 나는 한결 편안해진 나의 핑거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홀로 연습하던 도중 나는 나의 손가락에 약간의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서 나의 손가락을 바라보니, 언제 생겼는지 모를 '물집'이 잡힌 걸 발견했다.


'물집'이라니! 옛날옛적 학교 체육 수행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연습했던 배드민턴 때 이후로 너무 오랜만에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물집이 잡힐 만큼 무언가에 '몰두'한 적이 별로 없기도 했다. 요가를 하면서 물집이 잡힐 일이 별로 없으니 그건 열외다.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 빤히 나의 '물집'이 잡힌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툭'하면 '톡'하고 터질듯한 물집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했던 건, 내가 홀로 그간 4개월 동안 연습했을 땐 생기지 않던 물집이 '베이스 레슨'을 시작하고서 생겼다는 점이다. Chat GPT는 내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핑거링과 연주법을 시작해서 나기 시작한 거라고 뼈 때리는 일침을 해주었다. 아, 그동안 내가 홀로 연습했던 건 제대로 된 연습도 아니었거니와 아예 틀리게 연주를 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물집이 잡힐 만큼의 압력과 제대로 된 운지법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내 손가락에 물집이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손가락 '물집'은 단순히 내가 그동안 잘못했다는 걸 알려주는 걸 의미하지 않았다. 그만큼의 나의 시간과 노력으로 베이스 기타 연습에 몰두한 나머지 나의 손가락에 단단한 '몰입'의 징표를 새긴 걸 뜻했다. 그렇기에 나는 아픔보단 '뿌듯함'과 동시에, 베이스 기타를 배우길 잘했다는 '기쁨'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지금은 그때의 물집이 터진 건지 어떻게 된 건지, 온데간데없고, 이젠 한 손가락뿐만 아닌 여러 손가락에서 굳은살이 배기고 있다. 살이 트기도 하고, 벗겨지기도 하면서 그 속에서 단단한 살점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주를 한번 끝내고 나면 살이 아리고 아프다. 가끔 베이스 기타 선생님에게 엄살도 피우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 또한,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주며 정상이라고 웃어넘기곤 한다.



베이스 기타를 배우면서 나는 내 손가락 마디마디 하나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그 음정, 울림, 떨림의 순간들을 오롯이 맛보고 느끼며 체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몰입이 만들어낸 '물집'이란 귀중한 증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이 느끼고 실감할 수 있는 나의 열정의 '증거'이자 동시에 '훈장'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설렘과 짜릿함, 그리고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었다는 성취감마저 들게 했다.


이 맛에 다들 음악을 하고 악기를 배우는가 보다 싶다. 요즘 AI 니 뭐니 하며 딸깍 하면 자동으로 음악을 만들고, 음을 생성하고 직접 연주하지 않아도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지만, 번거롭고 힘들고 짜증 나기만 한 기본기를 연습해야 하는 이 '아날로그' 악기만이 선사할 수 있는 그 날것의 맛이 남아있기에. 그리고 내가 스스로 줄을 튕겨가며 음을 만들어내고, 내가 만드는 리듬에 맡겨 연주해야 하는 이 악기를 다루며 '인간다움'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베이스기타를 메고 레슨을 들으러 간다.


물집이 잡힌 이후 생긴 굳은살이 더욱더 심지 곧게 굳을 수 있게 연습하기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