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재능'을 이기는 법
나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남들의 몇 배 이상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간신히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서 '공부'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 내에 푸는 것 그 이상의 과정이었다.
국어는 지문 속독보다도 정확히 문제 요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수학은 문제를 풀기도 전에 공식부터 암기를 했어야 했으며 영어는 또래 학생들보다 문법을 익히는데 늦어져 중학생 때 초등학교 영어 문법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남들보다 늦어지고 늦춰야 했을 때 그리고 지치고 힘들어서 울고 있을 때마다 우리 엄마는 곁에서 격려를 해주셨고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겨주셨다.
"소연아, 지금 울어도 괜찮아. 지금은 네가 실수해도 넘어져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하지만 이후에 정말로 네가 스스로 해내야 하고 뭐든 척척 해내야 할 때 울고 있으면 그 때야 말로 정말로 늦어."
나는 그럴 때마다 끄덕이며 울면서 수학문제를 풀었고 야식을 먹어가며 미술학원에서 실기 특강이 끝나면 곧장 국어학원으로 달려가 모의고사를 풀었다. 그리고 평일 주 3회에 토요일까지 영어 과외를 받으며 영어 문법에 장장 6시간 이상씩 공부했다.
미술 실기와 국, 수, 영 공부를 병행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둘 다 하려다 둘 다 놓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때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숱하게 지나왔다. 제일 나를 속상하게 만든 건, 공부에 들인 나의 노력과 시간만큼이나 비례하지 않는 나의 성적이었다. 누가 봐도 1등급이 나와야 하는데 나의 실수로 2등급이 나올 때면 그만큼 서러울 수가 없었다. 시험은 묵묵히 시간을 쌓으면 자연히 좋아지리라 믿었던 내게 번번이 도끼로 발등을 찍는 순간들이었다.
노력이 배신을 하더라.
이 말이 내겐 '시험'을 두고서 하는 말이었다. 그만큼 나는 시험 때마다 편차가 제법 큰 편이었는데 정말로 잘 볼 땐 전교 7등 안에 들었다가도 실수를 하면 갑자기 3등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미대를 가기 위해 실기를 놓치지 않았고 실기 때문에 공부를 놓지도 않았다. 특히 나의 공부의 근간이 되어준 '수학'을 놓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하루는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왜 시험만 보면 이리도 긴장하는지.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들이 다 헛수고는 아닌지. 도대체 나의 성실함, 끈질김은 언제 발휘가 나는지. 나는 막막함으로 뒤숭숭했다. 그런데 엄마가 또 이런 말을 건넸다.
"원래 뚝배기가 열이 오를 때까지 시간이 걸리잖아? 네가 그런 타입이라 그래. 열이 나서 펄펄 끓을 때까지 데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중에 그 열기가 한번 데워지고선 오래가잖아. 그런 것처럼 네 그릇이 커서 그런 거야. 작은 그릇이면 금방 데워져서 금방 끓고 식겠지만 너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이만치 공부를 했는데도 성과가 안 나왔다는 건, 그만큼 더 데워져야 해서 그런 거야."
"그래?"
큰 뚝배기만큼이나 나의 그릇이 크다는 그 말이 그 순간에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남들보다 느리고 뒤처진듯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해내다 보면 그만큼 성장하리라.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미국 대학원에 온 지금의 나로선 그 말을 복기를 하면 정말 그 말이 맞았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그릇이 크길래 대학에 첫 입학했을 당시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나.
심지어 고등학생 때보다 더 공부를 다양하고 폭넓게 그것도 더 많이 몇 배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작업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옛날부터 우직하게 엉덩이 무겁게 앉아서 공부하던 습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물론 초반엔 고통스러웠으나 가면 갈수록 익숙해지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단 점이다. 나의 장점이자 강점이 성실, 끈기, 우직함, 꾸준함이다. 뭐든 하나를 잡고 하면 오랫동안 꾸준히 계속, 진지하게 한다. 그건 그림도 그래왔고 애니메이션도 그래왔고 요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요즘 느끼는 점은 내가 '재능'이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점이다. 머리가 특출 나지 않아 요령을 피우지 않고 앉는 습관부터 기를 수 있었고, 그래서 '꾸준함'이란 성실의 씨앗을 품을 수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남들이 보면 미련 맞을 만큼 앉아서 수학 공부를 했고 성적이 오르던 오르지 않던 묵묵히 앉아있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그 '꾸준함'은 시간이 쌓여 결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단단한 나의 '성질'이 되어주었고 그 단단함은 현재 나의 미국 대학원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근간이 되어주고 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하기 싫은 작업이라 할지라도 이 꾸준함은 나태함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이 '꾸준함'의 성실은 나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었고 나의 성격 중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꾸준함이 재능을 이기는 순간을 목격했다. 아무리 빨리빨리 습득하고 금방 무언가를 창조하고 습득하고 성취한다 할지라도 묵묵히 쌓아온 '꾸준함'이란 심지는 그 굵기를 달래 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그만큼 쉽게 뽑히지도, 무너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견고히 자리 잡고서 더욱 몸집을 키운다. 그 점이 정말로 무서운 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재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예술'이란 분야에서 천재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그렇기에 나는 남들보다 느렸기에 '꾸준함'을 갈고닦았고 여기까지 흘러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꾸준함의 힘을 경험하였고 앞으로도 목도할 것이다.
그렇게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의 '꾸준함'이 '재능'을 이기는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