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거문화 _
아파트 모델하우스..그 욕망의 시작
Model House
본 글은 2008년 석사학위 논문 ‘아파트 견본주택 변천과정 연구’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내용을 정리.
오마이뉴스 기재 글 참조.
모델하우스...아니 더 정확히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석사논문을 쓰면서부터이다. 논문이라는 압박감과 더불어 관련 자료를 찾으면서 철학, 인문, 사회, 정치, 문화 등 연관된 내용을 복기하다 보니 대략 연상되는 어휘가 '욕망', '거짓', '진실', '차이', '권력' 등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거대 담론이 보이면서 나 자신도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논문을 쓸 때만 해도 모델하우스, 견본주택, 샘플하우스, 주택전시관, 주택문화관 등 우리가 소위 '모델하우스(Model House)'라 부르는 용어는 잘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그런 어휘였다. 어쨌든 그 당시 내가 정리하기론 큰 틀에서 포용하는 어휘는 '견본주택(見本住宅)'이라는 어휘이고, 이 밑으로 파생되어 시대상황이나 시기, 콘텐츠, 규모, 의미 등에 따라 모델하우스, 주택전시관, 주택문화관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아파트 견본주택의 변천과정"이라는 것이 다소 딱딱하고 흥미 없는 것일 수도 있으나 내가 느낀 '작은 설렘'을 공유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견본주택의 역사는 우리 주거문화의 단편을 바라보는 단상이 될 수 있다. 과거 사업지 주변에 세워졌던 모델하우스는 우리의 도시적 공간으로 이동하였고, 평면적 구성의 단순한 구조에서 입체적⋅복합적 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런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나 역사적 변천보다는 견본주택의 의미와 견본주택이 주거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목해 글을 기술하고자 한다.
원본보다 복제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견본주택(Model house)은 현실과 다른 이상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의 주거를 상상하곤 한다. 일단 우리가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결정한다면 우선 단지에 대한 구체 적 정보를 수집하고 견본주택을 방문함으로써 그 여정은 시작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이상적 주거공간인 견본주택은 현대인에게 완벽한 주거공간으로 인식되었고, 결국 대중들은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견본주택을 실제로 여기게 되는 왜곡된 주거공간을 강요받게 되었다. 결국 견본주택은 시뮬라크르(Simulacre)처럼 원본 없는 복제, 원본이 복제를 베끼는 상황을 가져왔고, 우리의 실제적 주거공간은 견본주택의 가짜 알레고리에 편입되어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다양한 견본주택 유형 _ 모델하우스, 주택전시관, 주택문화관, 00 갤러리 등
우선 우리나라 아파트 견본주택 관련 어휘는 크게 4~5가지로 분류된다. 견본주택의 사전적 의미는 아파트 등을 건축할 때 원매자들에게 보이기 위해 미리 지어 놓은 견본용 집으로, 입주 후 이것과 똑같은 구조임을 확일할 때까지 일정기간 동안 이것을 철거하지 않는 주택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델하우스는 견본주택의 한 종류로 아파트를 건축하기 이전에 건립하여 실제와 똑같이 지어 놓아 일반인과 아파트 구입 대상자에게 준공 아파트의 실제 마감 수준과 대상 부지 주변 환경 및 도로, 기반시설 등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분양촉진과 기업 매출을 확대하는 영업적 성격이 강조된 유형이다. 또 다른 유형인 주택전시관은 1970년대 중반 대한주택공사의 상설주택전시관이 시초이고, 대규모 전시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공공적 성격의 주거유형 교육이나 자재 전시, 기업 PR 등 계몽적 성격이 더 강조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주택(주거)문화관이란 이름으로 건설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기술적 우위성과 품질, 시공의 우수성을 인식시키며 주거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가 서로 호흡하는 교류의 장이 마련되었다. 최근에는 ‘00 갤러리’와 같은 건축, 문화적 중심에서 예술의 의미를 부여한 복합문화공간을 통한 창조적이고 차별적 마케팅이 견본주택의 주류를 이룬다.
견본주택의 변천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시대적 영향이 많이 있지만, 본 글에서는 세부적인 이야기는 차치하고 주거문화사적 의미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1915년 ‘가정박람회’를 기원으로 하여 1970년 최초의 근대적 견본주택의 등장에서 오늘날의 ‘00갤러리’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주거문화의 문제점과 의미를 무엇일까?
전용공간 중심의 내향적 주거관의 훈육
우리는 견본주택을 통해 아파트의 외부공간이나 단지의 접점 공간을 보지는 않는다.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전용공간(단위세대)의 내장재나, 평면의 구성, 방의 크기 등에 주목할 뿐이다. 일상적 생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 영역은 단위세대로 축소되었고 이는 선분양제도와 마케팅의 강화로 그 의미가 더욱 공공히 되고 있는 느낌이다. 전용공간 중심의 폐쇄적 주거관은 하나의 완결된 단지의 폐쇄적 주거공간을 양산하였고, 우리가 서로 교류하는 공공(公共) 공간을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편입시키지 못한 편향적 주거문화를 고착화시켰다.
주거 계급화의 기제로서의 견본주택
아파트가 대중화되면서 여러 중산계층의 성장과 함께 우리의 아파트 주거는 자신의 계급 순위를 결정짓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즉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현대인들이 이제 자신의 주거공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강남의 아파트에 사는 것과 강북의 아파트에 사는 것은 이제 엄연한 주거 계급의 분리를 가져왔고, 일상생활에서도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물신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이는 지역적 도시공간을 분리시키는 기제로 작용하여 사회적 통합을 막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재산증식의 수단으로써의 모델하우스
아파트나 주상복합, 재개발지역의 다세대, 다가구 등... 우리 주변의 모든 주거지에서 ‘돈’을 빼면 참 할 말이 많아진다. 우리 국민은 언제 부터인가 주거공간이 돈으로 환산하는 척도가 되었고 거기에는 ‘이해타산’은 있을지언정 진정한 가족의 ‘장소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부의 축적이 왜곡된 주거관에 의해 더욱 힘을 발휘하는 이유다.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변질된 우리의 주거는 ‘거주성’이라는 주거 본연의 가치를 잃은 지 오래되었고, 소위 졸부라는 부동산 재벌로 대변되는 소비 권력에 의해 서민들은 주거 계층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적 시각과 더불어 우리 주거문화의 역사적 관점에서 모델하우스는 대한민국의 과거, 현실, 미래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과거의 객관적 평가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견본주택의 역사는 우리 대한민국 주거문화의 자화상이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압축적인 한국화 과정
우리나라의 견본주택은 과거 계몽적 의도에서 현재는 상업논리에 따른 소비적 의도로 변화하였다. 산업화와 마케팅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 메커니즘을 적용한 견본주택은 여러 한국적 상황의 제도와 문화 인식을 통해 그 모습이 진화하고 발전하였다. 초기의 단독주택 유형의 견본주택이 현재의 거대한 갤러리 견본주택으로 변모하면서 도시공간의 랜드마크(Land mark)로 발전하였고 그 속에 담긴 프로그램도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의 가능성이 접목되고 있다. 이는 압축적 근대화를 거친 대한민국의 한국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시험하는 대표적 매개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주거문화의 비판, 역사, 한국화 과정 등은 우리 주거문화의 지향점, 아니 우리가 어떻게 주거를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실천의 시작이 될 것이다.
얼마 전 광고 모델의 S라인을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광고모델의 각선미를 조절한다고 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어리석음처럼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더욱 완벽한 인간형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한다. 견본주택은 우리의 주거와 등가물의 관계로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우리의 일상 주거공간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주거문화를 바탕으로 대중들이 갈구하는 주거유형이 계속해서 현대사회에서 표출되는 한 우리의 견본주택은 주거와 근접해질 것이고, 이와 더불어 우리의 주거도 진화하고 발전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