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도시계획이론
우리는 일상 생활속에서 계획이라는 말을 별 무리없이 사용하여 왔다. 방학계획, 인생계획, 결혼계획, 여행계획, 도시계획, 건축계획, 조경계획 등등... 지금까지 모든 단어와도 어울림이 있는 계획이라는 단어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거 같다. 본고에서는 최근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춰 진짜 계획이라는 말이 가지는 근원적 의미를 살펴보고, 계획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또한 여러 계획 중 특히 도시계획과 관련된 절차적, 과정적 관계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도시계획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의 삶과 연관된 모든 것은 계획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계획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그 결과의 영향력은 확연히 달라진다. 계획(計劃)의 사전적 정의는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作定)함 또는 그 내용”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계획(Planning)은 계획안(Plan)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정태적인 의미보다는 계획안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과정적, 동태적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계획활동(Planning)은 기존의 제도, 규범, 양식, 사회적 관계 등을 유지하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하는 접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즉 계획이라함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 등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과거, 현재의 상황에 맞게 분석, 예측하고 미리 판단함은 물론 그 결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신화를 바탕으로 사회질서의 합리성을 추구하고자 하였고, 그 속에서 ‘공공성’은 혁신에 반하는 비합리적 장애물로 간주하였다. (Pesch, 2008) 그러나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공공가치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재건하려는 시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계획에 있어서 공공이익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였고 무엇을 위해 계획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public interest(공공이익)은 common interest(공통의 이익)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공의 이익은 개인, 조직 등의 이익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말하며 폭넓은 개념으로 정확하게 합의된 정의가 아직 없으나, 최근 각 사회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통의 이익은 광의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포함하는 개념이나 협의의 의미로는 어떤 특정 집단이나 이해당사자간의 공통된 이익을 의미한다. 왜 공통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인가? 이익의 유형에 따라 개인 또는 부분의 이익과 관련된 것은 사적인 것으로, 집단이나 전체의 이익과 관련된 것은 공적인 것으로 본다(Benn and Gaus, 1983). 또한 공익은 공공성 추구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고, 공익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절차적 공익관’과 ‘실질적 공익관’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공공이익에 있어 실질적 공익을 위한 절대적 논의와 더불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이 계획의 정당성의 바탕이지만 그것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한 정당성의 근거로서 의미를 잃게 된다.
공공정책이나 계획의 정당성의 근거는 공익의 내용보다는 계획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일부집단의 개인적 가치 편향과 사회편향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가치가 수렴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계획과정을 거쳤는가 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중이나 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획이론이 필요할 때, 전문가에 의한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계획이 아니라 시민들과 같이 호흡하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여 각 지역에 “동네 계획가”로 활동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는 시민들과 밀착된 계획을 통해 도덕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때 그 실행의 정당성과 과정의 합리성이 보장된다.
계획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1)시장경제의 실패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고, 2)공익(Public interest) 수호 및 3)분배의 정의를 위해 계획의 정당성 및 필요성이 확보된다. 즉 시장 실패에 따른 시장의 매커니즘을 순순환으로 조정하고 외부효과의 방지 및 최소화함은 물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고, 계층적·지역적·세대간 공정한 분배정의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계획의 필요성과 맞물려 계획의 방법과 방식, 과정에 대한 논의는 도시계획 및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시대상황, 계획가의 특성, 대중들의 인식 등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도시체계와 계획과정에 대한 논의는 도시계획(설계)이라는 학문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오던 이슈이다. 과거의 도시계획이론은 도시체계와 계획과정의 관계를 바라보는데 있어 분석과 예측을 통한 합리주의적 계획과정을 바탕으로 도시의 시스템을 정책과 디자인을 통해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 경우 계획가의 역할은 건축, 도시, 조경으로 한정되는 물리적 계획가의 역할이 더 중요시 되었다.
그러나 최근 도시는 물리적 공간계획 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해온 여러 다른 영역들이 중첩되게 관계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계획가는 기존의 계획가들이 가지고 있던 물리적 계획 역할과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전문가적 수준의 분석과 이해당사자나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의 갈등을 제3자의 입장에서 해소하는 조정자 내지 협상가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즉 과거의 분석과 예측보다는 상호소통을, 정책이나 계획을 통한 통제보다는 여론이나 공론화를 통한 의견일치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체계와 계획과정에 대한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현 시대의 화두이자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계획하는가에 대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동네사람의 일원으로, 도시의 구성원으로,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구조적 환경은 항상 개인을 고립화시키는 방향(예를 들어 노동시간이 길어 여유가 없다던지, 경제적 궁핍으로 남을 생각하기 어렵다던지..)으로 유도하고 있다.
도시문제와 사회문제의 중심에는 ‘개인의 고립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좋은 도시를 위해서는 몇몇 개인의 노력 또한 중요하겠지만, 그것에 우선해 모든 시민, 아니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시민이 도시의 구성원이자 주인으로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만들어야 할 시기이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가장 기반이 되는 주체는 시민이 되어야 하고, 그 주변에 계획가, 자본가(기업인), 관료 등이 함께 좋은 도시를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계획가는 합리성에 바탕을 둔 합의성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본가는 이익을 위해, 관료는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위치에서 시민들과 호흡하여야 한다. 이는 작은 단위의 커뮤니티를 마련하고, 각각의 이해당사자간의 합의와 타협을 위한 공론화의 장을 통해 실현가능하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각자의 생각은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그 중심에는 계획과 설계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다원화되고, 자치화, 민주화 되어갈수록 과거 물리적 환경개선에 중심을 둔 시스템적 접근방식에서 공공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공공선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는 과거 하향식 결정방식이 상향식의 분산된 의사결정방식으로 바뀜과 동시에, 계획가와 주민이 상호교감과 학습을 중시하고, 합의된 내용에 대한 약속이행을 전제로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주민참여에 의한 시간이 초기에 더 들어갈지는 몰라도, 그에 따른 집행이 수월해진다. 합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기반한 계획과정의 민주화는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시민중심의 공간,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일 등은 ‘좋은 계획’을 만드는 출발점인 동시에 지금까지의 도시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다시 살리는 일이다. 시민을 중심으로 도시를 가꾸어 간다는 의미는 우리의 실핏줄을 살리는 것이다. 기존의 계획이나 그 과정이 동맥과 같은 두꺼운 선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면 앞으로는 우리의 실핏줄과 같은 작은 조직, 섬세한 부분을 통해 우리의 도시를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소방차에 맞는 길이 아니라 길에 맞는 소방차를 개발해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또한 우리는 지금까지 주택공급과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미명아래 기존의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이전까지 우리는 도시의 조직(Urban Tissue)을 옷으로 비유했을 때 매번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추구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러워진 옷을 잘 빨아서 그 조직 위해 새로운 우리의 기억과 삶을 덧 씌워 멋스러운 도시를 만들어야 할 시기이다. 역사와 기억은 단순히 물리적 흔적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지층(地層)과 공간적 지리(地理)를 포괄하고, 일반인의 작은 기억과 흔적 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앞으로의 도시재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면서 우리가 가진 콘텐츠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도시계획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도시계획이라는 이론적 의미와 아울러 1) 무엇을 위한, 2)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가치의 문제와 실천(실행)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것이다. 또한 가치의 문제를 계획가적 입장이나 도시공간에 대한 철학의 문제에 있어 경제, 사회, 문화, 행정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계획개념을 바탕으로 바라봐야 한다.
계획을 포함한 모든 사물과 관계에서 ‘균형(Balance)’이라는 의미는 정지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시소(Seesaw)와 같은 동태적 긴장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균형은 항상 서로의 양립된 의견과 조건을 서로 견제하고 긴장하면서 이루어지는 ‘긴장(tension)’이 유지되는 그런 균형이다. 이는 우리의 유기체적 몸과 같이 하나의 조건이 무너지면 다시 균형을 잡기위해 다른 하나가 긴장하고 변화하는 것과 같다. 이는 우리 몸의 항상성과 같이 계속 관계하고 지속되는 것이고, 이것이 계획이 가져야 할 중요한 속성이 아닌가한다. 항상 서로 관계하고 긴장되지만 ‘균형’이라는 말처럼 그 중심이 잡힌 계획...그런 계획을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공론의 장을 마련해 우리가 당면한 작은 일부터 논의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