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의 수작!
방금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봤다. 수작이었다. 내 가치관에서도 최고의 영화였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고, 감독이 각본도 쓴 훌륭한 작품이다. 들어가 보자.
오늘 영화 검색을 하다가 어느 기관의 영화 순위를 우연히 보게 됐다. 거기서 1위는 로마였고, 3위가 토니 에드만이었으며, 6위가 이 영화였다. 내겐 모두 수작이라, 예전부터 좋은 작품으로 알려진 이 영화를, 그 기관의 순위를 믿은 후 보게 됐다.
요즘 계속 얘기하지만, 나는 행복한 삶을 연구하고, 건강한 삶을 나누길 좋아한다. 이 영화는 내 가치를 되새겨 보게 했다. 각본도 매우 훌륭하고, 개연성 또한 강했고, 호기심을 자아냈다. 근 10년 동안 본 영화 중 단연 수작으로 꼽고 싶기도 하다.
이 영화를 왜 이렇게 치켜세우느냐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서다. 영화에서 부부는 이민 문제로 다투다 별거에 들어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렇다. 인생의 이야기 또한 그렇게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시작된다. 특히, 내가 이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이유는, 행복한 가정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 줬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갖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돌아가는 가정이 건강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 매사 시끄럽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가정은 뭔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됐다. 단순한 결론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도 별거를 시작으로 갖은 사건이 연계해서 계속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현명한 사람은 단순한 삶을 산다. 그에 반해 어리석은 사람은 우왕좌왕하며 인생을 낭비한다.
영화 속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일을 안 하지 못해, 주인공에게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난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그때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판단했으면 좋을 일이, 그렇지 못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파장을 일으키는가. 간단한 예를 들면, 별거를 선택함으로써 가정 내 구성원은 결국 모두 상처받게 되고, 다른 일도 현명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한 연쇄 고리로 삶은 더 꼬여만 간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자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화만사성을 최고의 구호로 친다. 내가 주체적이고,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거라는 확신이 내게는 있다. 이런 나는 좋은 가정을 만들어나가 볼 꿈 하나를 갖고 있다.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기왕 그렇게 되면, 훌륭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을 때, 그 구성원들은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아가 부모가 별거나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아이들이 받을 상처는 생각보다 크다. 결혼을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면,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물론, 헤어지고 싶어서 모든 부부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부부 간의 불화는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이혼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보다 현명하게 갈라서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은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복잡한 사건, 즉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일은 가급적 생기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는 게 현명하다. 그래서 단순한 삶이 내게는 건강해 보인다.
결국 내가 탐구하는 건, 한 번 사는 우리의 인생을 보다 만족스럽게 살아가자는 거다. 복잡하고, 꼬일 대로 꼬이고, 불쾌하고, 머리 아프게 하는 삶을 살 필요는 전혀 없다. 지금처럼 복잡한 세상에서는 자기 가치와 세계관을 명확히 지니지 못하면, 인생에 휩쓸릴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도 결국에는 아픔을 치러야했다.
주역에 이런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처음에는 하늘을 나는 듯하다 이내 추락한다. 현명한 사람은 결국 그 끝이 좋다.’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우리는 마음의 욕심을 비워야 한다. 우리 삶을 좀 더 넓게 보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