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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Sep 11. 2024

12. 런던의 쇼디치는 어떻게 힙스터의 성지가 되었나?

영국 런던의 동부에 위치한 쇼디치(Shoreditch)는 많은 패션 브랜드, 독립 상점, 디자인 스튜디오, 카페, 갤러리들이 집중된 매우 트렌디하고 창의적인 지역이다. 우리나라의 패션 및 디자인 관련 매체와 블로거들이 앞다투어 이 지역의 스타일과 문화를 소개하면서 쇼디치는 국내에도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상점들이 위치한 다양한 색감의 쇼디치 거리


섬유 산업의 중심지에서 힙스터의 성지로


작은 농촌마을이었던 쇼디치는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섬유 및 의류와 관련된 직물공장, 작업장, 그리고 이와 관련된 시설들이 집중되면서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특히, 면직물, 모직물 등의 직물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져 섬유 산업과 함께 의류 생산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의류 제조 공장들이 위치해 있었고,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제품들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제조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 시설을 아시아 등 저비용 국가로 이전을 하면서 섬유 산업의 쇠퇴와 함께 쇼디치는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겪게 되었다. 많은 공장과 산업 시설들이 문을 닫으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빈집과 빈 공장들이 늘어나면서 지역의 주거 환경이 악화되어 빈곤과 범죄 문제가 발생하는 등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매우 저하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런던 전역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쇼디치 지역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이민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쇼디치와 같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쇼디치에는 다양한 저임금 직종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에 이민자들은 저렴한 비용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이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섬유산업과 관련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민자들이 쇼디치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의 섬유 및 패션 산업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민자 커뮤니티는 지역 사회에서 서로 협력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쇼디치의 패션 산업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다문화 지역으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1970년대부터 쇼디치 지역에 대한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재개발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재개발 사업은 쇼디치의 사회적, 경제적, 물리적 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노후한 공장과 창고들이 주거, 상업, 문화 공간으로 전환되었으며, 새로운 계층의 유입을 위한 새로운 시설들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물리적인 환경의 개선은 새로운 주민들의 이주를 촉진시켰지만,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일부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만들면서 지역 사회의 구성원이 변화하게 되었다.


쇼디치 지역에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예술적 활동, 창의적 산업, 독립 상점, 카페, 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쇼디치는 트렌디하고 창의적인 문화적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젊은 전문가들과 창의적인 인재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쇼디치의 경제적 활력이 회복되었다. 오늘날 쇼디치는 다양한 문화적, 상업적 공간들이 조화를 이루며, 런던의 중요한 문화적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라피티 아트로 장식된 쇼디치의 예술적 거리 풍경


창의적인 인재들은 왜 쇼디치로 모여들까?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그의 저서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2002)'에서 창조계층(creative class)을 혁신과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주요한 원동력으로 보았다. 창조계층은 고급 기술, 디자인, 예술,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데, 이들은 문제해결, 창의적인 아이디어, 혁신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며, 지역 사회와 도시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창조계층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 주된 이유는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창의성과 지식 기반의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조계층은 어떤 지역에 모이는 걸까? 플로리다 교수에 의하면 창조계층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환경을 선호하며, 문화적인 다양성, 높은 교육 수준, 높은 삶의 질, 그리고 사회적 포용성이 있는 도시에서 보다 잘 성장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보스턴 등의 창조도시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다양한 인구구성, 풍부한 문화자원, 높은 교육 수준, 그리고 창조적인 산업이 결합되어 창조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쇼디치의 경우는 어떠할까? 창의적인 인재들이 쇼디치로 모여드는 데 기여를 한 요소들을 살펴보자.


첫째, 지역자원을 활용한 산업공간의 재개발과 창조적인 재구성이다. 쇼디치에 있던 기존의 공장과 창고를 디자인 스튜디오, 갤러리, 카페, 코워킹 스페이스 등과 같은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창의적인 인재들의 창조적인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둘째,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지역 주민들로 인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문화이다. 쇼디치에는 다양한 이민자 커뮤니티로 인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창조적인 시도를 존중하고 지원하는 지역사회의 특성은 창조적인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


셋째, 쇼디치 인근에 위치한 유명한 패션 및 디자인 학교들을 통한 교육과 창조적인 인재양성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및 디자인 학교인 중앙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 CSM), 런던 패션 대학(London College of Fashion, LCF), 런던 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UAL) 등은 다양한 창조적 분야의 인재들을 양성하고 이러한 인재들을 지역으로 유도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창조적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넷째, 다양한 창조적 커뮤니티와 네트워킹이다. 쇼디치에는 여러 가지 창조적 네트워킹 이벤트, 워크숍, 콘퍼런스가 열리며, 이는 창조적인 인재들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와 네트워킹 기회는 창조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다섯째,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비용이다. 쇼디치의 임대료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상승했지만, 런던의 다른 중심지에 비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신생 디자이너들이 스튜디오를 운영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쇼디치가 예술과 기술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새로운 상업적 기회와 문화적 풍요를 갖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창의적인 인재, 즉 창조계층의 유입이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 중소도시들이 '인구감소' 문제에 앞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여 협업하고 혁신을 이루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창조계층과 창조도시에 대한 정책적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박근혜 정부 시기(2013-2017)이다.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창조계층 육성 및 창조도시 개발에서 뚜렷한 성과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정책의 일관성 부족, 모호한 정책 목표, 보수적인 사회환경, 경제적 지원의 한계, 부족한 인프라와 자원, 산업과 학계의 협업부족, 지역 간 불균형, 그리고 실행력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창조도시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환경 조성, 스타업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인프라 제공, 그리고 산업과 학계, 민간과 정부 간의 협력과 실행력 강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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