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메 May 29. 2017

스톡홀름의 겨울 하늘,
내 마음도 분홍빛으로 물들다.

나의 첫 북유럽 여행, 스웨덴 스톡홀름#3

일시: 2017.01.19

@스톡홀름, 스웨덴




한창 취업 활동하랴 뭐하랴 글 쓰는 게 뒷전이 되어 있었다. 

이제 막 숨통이 트이니, 벌써 4개월이나 지나버린 스톡홀름 여행의 이틀째 이야기를 이어볼까 한다.




카페에서 카푸치노로 마음을 녹인 후, 난 도시 전경을 보고 싶은 생각에 Skyview를 타러 가기로 했다. 스카이뷰를 타기 위해서는 에릭슨 글로브라는 둥그런 모양의 돔(일본의 도쿄돔같은 곳인 거 같다)으로 향해야 하는데, 섬 하나 건너서 위치해있었다. 교통비에 돈을 들일 생각이 별로 없던 나는 까짓 거 섬 하나 건너가는 거 걸어서 가보지 뭐, 라는 마음으로 섬과 섬 사이에 놓인 다리를 자동차들 옆 인도로 걸어나갔다. 




걷다 보니 느낀 건데, 한강 위에 놓인 한국의 다리보다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의 폭이 훨씬 넓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 자동차와 기차가 만들어내는 거센 바람에 밀릴 걱정도 없어 보였다. 펜스도 다리 밖 풍경이 다 보여서 걷는 내내 숨통이 탁 틔었다. 그만큼 도보로 섬과 섬 사이를 횡단하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겠지.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펜스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와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바람소리를 느끼며 걷는 기분. 스웨덴 사람들의 길쭉한 다리의 성장배경이 이거였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저 둥그런 돔을 향해 걸어갔다.




오후 3시, 시계상으로는 아직 느긋하게 움직여도 될 시간이었지만, 스톡홀름의 하늘은 어두워질 준비를 벌써 하는지 해가 점점 기울여갔다. 동시에 내 발걸음도 빨라져 갔다. 하지만 다리 아래로 보이는 기차 철도나 나처럼 다리 위 산책을 만끽하는 이곳 주민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볼 때마다 몇 번이고 멈춰 서곤 했다. 다리 위에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시간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이 도시를 뒤덮는 공기는 여유로움을 한가득 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여유로움을 따라가기에는 나의 시간 분배 능력이 따라가질 못하는 것 같다. 결국에는 스카이뷰를 목전에 두고 개장시간이 지나버려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옆에 있던 쇼핑몰에 있는 H&M에 가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인되어 있던 예쁜 치마를 두벌 사고, 다시 아까 지나온 다리로 되돌아갔다. 



오후 4시 반이 다돼갈 시간. 

하늘이 점점 오묘한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하늘에 난생처음 보는 색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스톡홀름의 하늘은 뿌연 안개 아니면 여유로운 공기만 뽐낼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행 첫날 스톡홀름의 하늘을 보고 많이 실망했었던 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이 날의 스톡홀름의 하늘은 내게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스케치북을 보여줬다. 


 


좋은 카메라였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압도당한 하늘의 매력을 더 잘 담아낼 수 있었을까. 그런 아쉬움을 달래며 몇 번이고 멈춰 서서 여러 하늘을 아이폰에 담아냈다. 내 앞을 지나가던 스웨덴 여학생들은 하늘을 볼 새도 없이 수다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어째서 이런 하늘을 보고도 감탄을 하지 않는 걸까. 그만큼 이 곳에선 일상적으로 하늘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건가. 스웨덴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석양에 압도당한 적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손에 꼽혔다. 




북유럽 스웨덴 내에서도 그나마 남쪽에 위치한 스톡홀름조차도 이렇게나 오묘한 하늘을 가졌는데,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대체 얼마나 많이 자연의 신비를 몸소 표현하는 하늘들을 볼 수가 있는 걸까. 북유럽의 자연이 더 궁금해졌다. 이런저런 잡념이 일시적으로 잊히고 분홍빛 구름에 마음을 빼앗겨 있는 도중에 시계를 봤다. 오후  5시. 아직 저녁 먹을 시간도 안되었지만, 나의 배는 행복함과 경이로움으로 이미 빵빵하게 채워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해가 기울어지는 건 한순간. 다리를 건너고 아까 지나오던 마을로 들어서니 하늘은 순식간에 낯익은 밤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온 기분이었다. 다리 하나 걸은 것만으로도 하나의 인생을 경험해온 그런 느낌이랄까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폰 앱으로 확인해보니 오늘 아침부터 움직여서 걸은 거리가 무려 20km 이상이나 되었다. 식사도 점심에 카페에서 먹은 크로와상 하나가 전부인 채. 하지만 다리 위에서 감동만 계속 먹어서 그런지 딱히 배고프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다시 호스텔로 향해 조금은 무거워진 나의 두 다리를 끌며 걸어갔다. 



그래도 명색이 여행인데 뭐라도 좀 먹는 게 좋지 않을까, 호스텔에 도착해 잠깐 누워서 고민을 해봤다. 


하지만 누가 그랬다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결국엔 오늘도 밥을 포기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제처럼.

하지만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모습의 스톡홀름을 볼 수 있었다. 

나,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 같았다. 스톡홀름과.


분홍빛에 서서히 물들어간 나의 마음은 문득 그런 예감이 들었다. 









매거진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Sungwon,

매거진의 이전글 잊지 못할 카푸치노의 향연 Johan & Nyströ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