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메 Feb 04. 2017

잊지 못할 카푸치노의 향연
Johan & Nyström

#나의 첫 북유럽 여행, 스웨덴 스톡홀름 #2

일시: 19 Jan. 2017

@Stockholm, Sweden


스톡홀름에서 맞이한 이틀째.


다행히 전날만큼 날씨가 흐리지도 않고, 기온도 꽤 따뜻한 날씨여서 그제서야 여행할 맛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은 딱히 가기로 정해놓은 데도 없었다. 이 곳에 오기 전에 계획표를 짜긴 했지만, 이미 스톡홀름 첫날 모든 계획이 틀어진 마당에 굳이 계획표대로 돌아다닐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이왕 대중교통을 안쓰고 걷기로 한 거, 활동영역을 더 넓혀보기로 했다.

전날에 거닐은 감라스탄 지구를 넘어, Södermalm(제델맘) 지구로 향하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감라스탄 지구 바로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지구인데, 다리 하나 사이에 놓은 감라스탄과는 그 거리의 느낌이 살짝 달랐다. 감라스탄은 그래도 관광지 느낌이 없지않아 꽤 많이 나는데, 다리 하나 건너니 좀 더 이 곳 주민들의 거리같은 느낌이 났다.


물론, 그래도 번화가인 건 변함 없었지만.

스톡홀름의 번화가다운 곳은 전 날 다 돌아다닌 덕분에, 좀 더 조용한 곳을 돌아다니고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중심 거리에서 벗어나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전날부터 두 발로 계속 걸으며 느낀 게 하나 있다.

비탈길이나 꽤나 많은 수의 계단이 이곳 저곳에 보인다는 것.


지금이야 현대적인 도시화가 되어 있지만, 그 옛날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기 힘든 지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이런 길이나 계단을 어떻게 다니실까. 그런 의문점을 품으며 거리거리를 정처없이 지나갔다.



계속 걷다 보니 초등학교가 하나 나오고, 그 건너편에 문앞까지 안오면 카페인지도 잘 모를 그런 카페가 하나 나왔다.

 

Johan & Nyström(요한 앤 니스트롬)


규모는 작아도 어딘가 낯익은 가게 이름에 핸드폰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틀 전에 부리나케 계획표를 짜는 와중에 얼핏 스쳐가듯이 다른 분 블로그에서 본 이름이었다.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커피 전문점이라는데, 커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오게 된거 텅텅 빈 배도 채울 겸 들어가기로 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직원들도 편안한 분위기로 나를 맞이했다.


입구 바로 옆에 큰 메뉴판이 있는 것도 모르고, 뭐가 있고 뭐가 유명한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뭘 시킬까 잠시 고민하다가, 카페라면 무조건 있을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그나마 카푸치노라면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많이 마셨으니까 마시기 쉬울 거란 생각에서였다. 거기에 더불어 계산대 옆에 놓여있던 크로와상도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내가 이토록 주문을 잘 한 적이 또 언제 있을까..


사실, 라떼는 아니지만 라떼아트가 곁들어진 카푸치노를 마시는 게 처음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그렇게 커피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프랜차이즈의 입맛에 길들여져 그게 커피의 맛 기준으로 알고 있던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저렇게 예쁜 아트가 그려져 나온 것도 신기했고, 커피 전문점이라더니 진짜 전문적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한입 마셨다.


그리고 그 한입은, 나의 커피 맛 기준을 한번에 몇백레벨 업그레이드시켰다.


  세상에 이런 맛의 카푸치노가 있다니.


내가 지금까지 로스터리 카페를 가본 적이 없어서 다른 커피 전문점의 카푸치노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프렌차이즈의 카푸치노가 얼마나 개성이 없는 맛이었는지 정도는 확실하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정말, 내가 지금껏 마셔온 카푸치노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카푸치노 한입의 힘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어제까지, 하다못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스톡홀름에 괜히 왔나,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었는데, 이 카푸치노 마시기 위해서 다시 스톡홀름 올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과연 스톡홀름 여행자들의 블로그에 올라올 만 했다.




커피를 어느정도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니, 커피 뿐만 아니라 티도 주요상품 중 하나로 내놓고 있는 것같았다. 아기자기한 통과 함께 각 종류로 구비된 티팩박스를 보니, 안살 수가 없었다. 가져온 배낭이 작아 나중에 비행기 탈 때 괜찮으려나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계속 걱정하기엔 내 눈 앞에 통들이 너무나 영롱하게 그 예쁨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결국, 커피 좋아하는 아는 언니를 위한 선물용과 우리 가족용으로 티팩 박스를 하나씩, 그리고 내가 마신 카푸치노를 맛있게 만들어 주신 바리스타에게 무슨 콩을 썼는지 물어봐서 알아낸 브라질산 커피콩도 두 팩 샀다.


커피 한잔의 행복이라는 걸, 새삼 제대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손에 요한 앤 니스트롬이라 이름이 적힌 종이백을 요리조리 흔들며, 난 다시 정처 없는 산책을 시작했다.

어제는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하늘이, 오늘은 유난히 예뻐 보였다.


이것 또한 카푸치노 한잔의 힘인가.


도착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만 해도 다시 오고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들것같았던 이 도시가, 2주가 지난 지금, 많이 생각이 난다.


이것 또한 카푸치노 한잔의 힘이겠지.



카푸치노의 향연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번 스톡홀름에 오고싶다.




매거진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스톡홀름 이틀째 다른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Sungwon.

매거진의 이전글 스톡홀름,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