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메 Jan 23. 2017

스톡홀름,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나의 첫 북유럽 여행, 스웨덴 스톡홀름 #1

일시: 18 Jan. 2017 

@Stockholm, Sweden



북유럽이라 하면 왠지 모르게 추움과 동시에 따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북쪽이라는 위치가 주는 차가운 느낌과, 우리에게 북유럽의 존재를 더욱 널리 알린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한 환상 때문일까. 


스웨덴에 대한 공부는 거의 안 한 채,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만으로 난 스톡홀름에 향했다. 덕분에 나의 첫 북유럽 여행의 시작을 맞이한 스톡홀름에서의 첫날은, 북유럽에 대한 겨울의 환상을 와장창 깨기에 충분했다. 



 내가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날은, 갓 그친 비의 수분을 채 분출하지 못한 구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안개로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기온 자체는 사실 서울의 겨울과 별반 다르지 않아 나의 체감온도는 스톡홀름의 냉기를 견딜 만했지만, 내 마음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구름의 색에 물들여지는 것만 같았다. 



북유럽의 겨울은 다 이런 건가. 


다행히도 여행 이틀째, 삼일 째에는 햇살이 따뜻한 맑은 날씨였기에 스톡홀름의 겨울에 대한 춥기만 한 기억을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 곳에 왔을 때 마주한 스톡홀름의 하늘은, 내가 생각했던 겨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당황한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날씨야 어찌 됐건, 여행은 계속해야 될 테니. 





전날 부랴부랴 짠 여행 코스를 토대로, 일단 제일 먼저 감라스탄 지구로 향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메트로나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요금을 보고 바로 체념했다. 북유럽의 물가는 살인적이란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실제로 내 눈으로 그 값을 직접 확인을 해보니 다시 한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하철 한번 타기 위해 43크로나(한화 약 5,500원)를 내느니, 내 발이 고생하는 게 훨씬 나을 거란 판단을 했다. 그래서 결국 난 스톡홀름에 머무른 3박 4일 동안,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이외에는 그 어느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스톡홀름 뚜벅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감라스탄 지구로 향하는 길 중간에 있는 스웨덴 의회. 건물이 참 멋있다.

감라스탄 지구로 향하는 길. 

스웨덴 의회의 웅장한 건물을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죄다 가족이나 연인, 하다 못해 친구 등 일행과 함께 여행을 온 사람들뿐이었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이라 관광객이 적은데, 그 속에서 홀로 큼지막한 배낭과 함께 아이폰을 한 손에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나만 다른 별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걸어가는 부모님의 모습, 서로의 예쁘고 멋있는 자태를 담아내랴 몇 번이나 멈춰 서서 시도 때도 없이 비싸 보이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연인의 모습,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즐거워 보이는 내 또래 친구들의 모습. 


몇 번이고 혼자 여행을 해왔지만, 처음으로 혼자인 게 진심으로 서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스톡홀름으로 여행 오기 며칠 전에 반년만에 프랑스 다른 지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절친들을 오랜만에 만나, 쌓여있던 유학생의 외로움을 어찌어찌 달래고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반년만에 사람 만나는 기쁨을 만끽하고 온지라, 그때의 여운이 아직 가시질 않았던 건지. 딱히 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이 순간 그저 혼자인 게 서러울 뿐이었다. 



 마치 눈물을 애써 참으며 안개로 그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있는 하늘 같은 기분이었다. 





울적한 기분을 애써 달래며 들어선 감라스탄 지구는, 예쁘긴 했지만, 프랑스에서 몇 군데 구시가지를 돌아본 내게는 그렇게까지 신선한 감흥은 없었다. 스웨덴 사전조사를 너무 안 해서 그런가. 그런 반성을 하면서 정처 없이 감라스탄 섬을 걸어 다녔다. 전날 밤에 세운 계획대로라면 노벨 박물관에 가서 시상식 참가자들이 먹는다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왕궁에 가서 스웨덴 왕조를 살펴보기로 되어 있었지만, 막상 입구에 가보니 보고픈 마음이 뚝 사라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겐 딱히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건물 외관만 둘러보고 계속 감라스탄 지구 거리를 거닐었다. 



구시가지지만, 프랜차이즈 가게도 많이 들어서 있었다. 스웨덴에 와서 정말 크게 충격을 받은 게, 바로 편의점의 존재였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가진 불만 중에 하나가 편의점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프랑스가 없으니 유럽에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충격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마음에 한번 들어가 볼까 생각했지만, 아직 숙소에 짐을 두지 않은 상태라 안 그래도 무거운 짐을 더 무겁게 하긴 싫었다. 

짐 놓고 이따 밤에 야식 사러 숙소 근처 편의점으로 가야겠단 마음에 일단 여기선 사진만 찍고 다시 걸었다. 





처음 감라스탄 지구에 들어섰을 땐 특별할 것 없는, 여타 유럽에 있는 구시가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걷다 보니 스웨덴만의 구시가지의 매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편집샵이나 빈티지 샵도 많이 있고, 카페도 곳곳이 보여서 돌아다니며 눈이 즐거웠다. 게다가 뜬금없는 곳에 등장하는 동상까지. 옆에 조그맣게 동상의 이름과 제작자 이름이 쓰인 팻말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이런 곳에 동상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라고 감탄했다. 중간에 자주 보이는 우체통은 또 얼마나 스웨덴스러운지. 




감라스탄 지구를 한 바퀴 돈 후, 시립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다시 위쪽으로 향했다. 원래는 첫날엔 감라스탄 지구에만 있으려고 했지만, 어차피 노벨박물관과 왕궁도 안 가기로 하고, 생각보다 빨리 돈 바람에 시간이 꽤 남아 계획을 바꿨다.

 전날 거의 잠을 안 잔 바람에 피곤해서 그냥 바로 호스텔로 향할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 오후 3시인데 지금 호스텔로 들어가 버리면 오늘 하루 계속 호스텔에만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일단 도서관이라도 갔다 오기로 했다. 




 마침 지나가는 거리가 번화가여서 중간에 이런저런 가게도 들르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가 스웨덴에 오기 전에 스웨덴에 알고 있는 거라고는 H&M과 IKEA의 본고장인 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Zara Larsson과 디제이 Avicii와 Galantis가 스웨덴 출신인 점 정도였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레코드 가게가 있어서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EDM은 취급하지 않는 가게였는지 빈 손으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좀 더 걸어보니 말 그대로 H&M천국인 거리가 나왔다. 한 곳에 같은 브랜드 매점이 5 매장 이상이라니. 기가 막히면서도 난 그걸 또 다 돌았다. 각 가게에 놓여있는 상품들은 거의 똑같았지만,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 하다 못해 프랑스보다도 훨씬 많은 종류의 옷들에 둘러싸이니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건 쇼핑인 건가. 이 날은 사지는 않고 눈으로만 도장을 찍고 나왔다. 



시립 도서관 내부.

오후 4시 반, 이미 밤이 된 하늘을 뒤로하고 들어온 시립도서관은, 아담하면서도 작은 거인 같은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다. 1924년에 지어진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이라는데, 옛날에 지어진 거라 그런지 규모는 작았지만, 이름대로 스톡홀름 시민들의 세심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로비에는 스웨덴어 서적뿐만 아니라 영어 서적도 많이 놓여 있었다. 다른 방도 원형식 책장일까 궁금해서 다른 방에 이동해보니, 자리에 앉아 있는 스톡홀름 사람들의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작게나마 들려오는 펜 소리만이 공존하는, 관광지가 아닌 진정한 도서관의 방뿐이었다. 


그들에게 방해가 안되도록 다시 조용히 로비로 돌아와, 각 층을 한 바퀴씩 더 돈 후에 도서관을 나왔다. 스톡홀름 대표 관광명소로 꼽히는 시립도서관이지만, 관광지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도서관으로서의 위엄을 뽐내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드디어 여행다운 일 했다는 성취감을 안고, 밖에 나와 아까 걸어온 길 그대로 다시 돌아갔다.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스텔까진 꽤 멀었지만, 지금 내 어깨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을 드디어 풀 수 있단 생각을 하니 힘이 났다. 





낮에는 자욱한 안개 때문에 너무나 우울하고 외로웠는데, 해가 지니 그 안개와 스톡홀름을 밝게 비추는 빛들의 조화가 나름 도시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까는 그렇게나 올려다보기도 싫었던 하늘도 지금은 그저 예뻐 보였다. 낮에는 스톡홀름에 괜히 왔나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밤의 하늘은 내일의 스톡홀름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람 들었다 놨다 하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30분 정도 걸으니, 어느새 호스텔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다시 나와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누가 그랬다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결국 저녁을 포기하고, 다음 날의 컨디션을 위해 난 잠을 택했다. 


더 좋은 스톡홀름을 만나길 기대하며. 





매거진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스톡홀름 이틀째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Sungwon,


매거진의 이전글 디즈니와 함께 꿈을 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