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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메 Jan 12. 2018

아키하바라에서 면을 국물에 담그고

츠케멘야 야스베에 아키하바라점

11.01.2017

@아키하바라(秋葉原)




요새 미식가가 되기 위해 이런 저런 정보를 수집중인(수집만 하고 정작 가지는 못하는) 나.


일단 내가 자주 다니는 동네 맛난 곳 찾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에, 아키하바라 JR 전기상가 출구에서 나와 TX로 노선 갈아타는 중간에, 밖에 나와 이리저리 살펴봤다.



어느 가게에 들어갔느냐를 말하기에 앞서, 나와 아키하바라의 관계성을 설명하자면,


아키하바라역은 나의 통학길의 환승지다.

중학생때부터 거의 매일 타고 다니는 TX(츠쿠바 익스프레스의 줄임말,つくばエクスプレス)의 종점이자 출발역이고, 그런 아키하바라에서 학교 가기 위해 타고 내린지는 어느덧 4년째가 돼간다.


아키하바라는 일반적으로 오타쿠의 성지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강한데, 실제 아키하바라의 분위기에는 보이지 않는 뚜렷한 경계선이 있다. 그야말로 오타쿠들을 위한 존이 있는가 하면(전기상가거리가 좋은 예), 같은 역 개찰구를 나와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걷다보면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들이 즐비하다. 전기상가 출구를 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아트레(atre, 일본의 대표적인 에키비루(駅ビル、주요 JR전철역 바로 옆에 있는 소규모쇼핑몰. 루미네[LUMINE]와 더불어 대표적인 에키비루))도 아키하바라의 다양한 면모 중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담당하고 있다.

전기상가출구뿐만 아니라, 중앙개찰구쪽에도 소규모 쇼핑몰이나 요도바시카메라같은 전기상점이 있다.



참고로, 이 에키비루라는건, 환승 노선이 일정기준 이상 한마디로 무진장 많던지, 아니면 갈아타는 유동인구수가 일정기준 이상인 한마디로 무진장 많은 JR역에 있는게 특징이다.

(언젠가 에키비루 특집으로 글 쓰고싶다)




그렇다.

아키하바라역도 예외는 아니다.

JR만 해도 3개의 노선이 있고, 도쿄메트로 히비야선과 TX도 지난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맞춰 아키하바라에서 전철을 타보면, 일본의 전철지옥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내가 늘 이용하는 소부선은 아침은 밥 먹듯이 지연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전철 하나 보내고 나서 다음에 오는 전철을 타는 일도 흔하다.



인구밀도로 치면 도쿄역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아니 더하지 않을ㄲ



갈아타는데만 체력을 소비하다 보니, 정작 아키하바라역을 많이 돌아보지 못해왔다는 걸 요 근래 깨달아,



아무튼, 아키하바라의 이야기는 이쯤으로 해두고, 난 머릿속으로 생각해놓은 가게로 향했다.



츠케멘전문점 야스베에(つけ麺屋 やすべえ) 라는 가게다.



사실 그 옆에 있는 쇼와식당에 갈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스타미나 음식보단 면이 더 땡겼다.


체인점인데다 신주쿠나 시부야 등 주요 에리어에 가게가 있다. 나도 이름은 몇번 들어봤는데,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츠케멘(つけ麺)


츠케멘이란, 면을 국물에 찍어 먹는 스타일의 일본식라멘의 종류 중 하나다.


(출처: 위키피디아 일본어 번역)





가게 문을 들어가면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다 내려가면 점원이 우렁찬 이랏샤이마세~라는 인삿말과 함께 발권기에서 식권을 사도록 안내한다.

발권기에는 일본어로밖에 안써져 있었는데, 사실 면 종류는 네가지밖에 없다.


(일반)츠케멘(つけ麺)

매운 맛 츠케멘(辛味つけ麺)

미소(일본식 된장) 츠케멘(みそつけ麺)

매운 맛 미소 츠케멘(辛味みそつけ麺)


그리고 먹고싶은 양에 맞춰 사이즈를 사면 된다.

양은 발권기 옆에 붙어있는 종이에 자세히 쓰여 있었다.


근데, 메뉴 상으로는 이렇게 쉬운데, 발권기는

츠케멘 소/츠케멘 중...미소츠케멘 대


이런 식으로 하나씩 버튼이 돼어 있다. 처음 오는 외국인에게는 어려울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던 차, 뒤에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두 명의 여성 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이 많은 걸로 봐서는 여행객이었다.


맛있게 츠케멘을 후루룩 드시는 걸 보니, 별 탈 없이 발권을 하신 거같아 왠지 모르게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돈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일반 츠케멘 중 사이즈(つけ麺 並盛)에 추가로 반숙계란(味玉)버튼도 눌렀다.


발권된 티켓을 대기하고 있던 점원에게 주고, 안내 받은 자리로 향했다.


사진은 제대로 찍진 못했지만, 라멘집은 기본 카운터석이다. 야스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십년 전부터 스며들어 있는 혼밥문화의 좋은 예랄까나.

덕분에 여자 혼자여도 들어오기 편한 분위기다.


게다가 내가 들어간 시간은 17시 30분. 아직 퇴근 러쉬가 되기 직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서 구석에 혼자 앉아 가게 전체에 울려 퍼지는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마음 편하게 츠케멘을 기다렸다.



약 10분도 채 되지 않았나.

나의 츠케멘이 드디어 왔다.


참고로, 기본적으로 면은 차가운 상태(차갑다기보단 약간 미지근한 상태)로 나온다. 그치만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는 면도 따뜻하면 얼마나 좋을까.

따뜻한 면을 먹고 싶을 땐 발권한 식권을 점원에게 내밀 때


あつもりでお願いします。(아츠모리데 오네가이시마스」

라고 한마디 하면 된다.


그치만 난 얼른 먹고싶은 생각에 그냥 면으로 주문했다.


음식 사진을 정말 못찍는 내게 츠케멘을 맛있어 보이게 찍기란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지만, 그나마 나의 갤럭시 카메라가 선전을 해줬다.




짭쪼름하고 달짝지근한 뜨거운 국물과 함께 통통한 면을 먹으니, 추위에 꽁꽁 경직되어 있던 온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점심도 제대로 못먹었던 터라, 평소에는 적은 양도 다 먹을까 말까 하는 내 위가 오랜만에 열심히 일을 해줬다.


어느샌가 면을 먹어치운 나는, 반정도 남은 국물이 아까워 스프와리(スープ割り)를 주문해 국물을 더 받아 후루룩 마셨다.


만약에 면을 다 먹고 난 후, 국물도 마시고싶다면 주방에 있는 점원에게 스미마셍이라고 부르고 국물 그릇을 보여주며 「스프와리 오네가이시마스」라 말하면 국물을 더해준다. 사람 따라선 발권기에서 밥을 추가로 사서 스프와리한 국물과 함께 비벼 먹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스프와리 안하고 쿨하게 면만 먹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 나도 다 마시지는 않고 3분의1정도 남기고 나가긴 했지만.



코트를 주섬주섬 입으며,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날 때 쯤엔 계단이 꽉 차도록 줄이 생겨 있었다.


역시 일찍 오는게 득이야.


그리고 역시, 밥 다 먹고 나서 점원에게


「ごちそうさまです(고치소사마데스,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나갈 때가 가장 기분 좋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고치소사마를 전할까.


먹는 게 즐거운 그런 요새 겨울이다.








나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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