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2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자영업을 하시던 아버지 사무실로 불법수입품을 판매하시는 보따리상 분이 자주 찾아오셨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뻣뻣한 털이 내피로 있던 악어가죽 자켓, 야간투시 망원경, 일제 카메라 등 혹할 만한 제품들을 늘어놓고선 아버지의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아버지께서는 결국 위 제품들을 전부 구매하셨는데 결국 일부는 잃어 버리거나 도난을 당했고, 대부분 오래되지 않아 못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내게 정말 구세주 같았던 중요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디오 플레이어. 일본의 SANYO라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는데 당시 발음이 힘들다고 꿍시렁 대었던 내가 기억난다.
이후로 주말이면 가족들과 비디오를 빌려 함께 보곤 했는데, 배꼽 빠지게 웃으며 본 영화 중 하나가 1993년에 개봉한 [미세스 다웃파이어]였다. 당시 노인 여성 분장을 한 로빈 윌리암스의 미친 연기력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코미디언 심형래와 이창훈의 영구와 맹구 연기만 보다가 신세계를 경험했달까? 로빈 윌리암스의 첫인상은 그렇게 강렬하게 내게 남았다. 이후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등은 내게 로빈 윌리암스는 위대한 연기자라는 각인이 되었다.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한번 로빈 윌리암스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1997년 개봉작 [굿 윌 헌팅]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인 맷 데이먼과 밴 에플렉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 '윌'은 누구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어린 시절 학대와 고아로서의 상처 때문에 늘 사람을 밀어낸다. 세상과 거리를 두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떠나는 삶을 택한 것이다. 영화에서 결국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 준 수학과 교수가 아니라) 그의 마음 깊숙한 상처에 다가간 정신의학박사 숀(로빈 윌리암스) 덕분이었다. 숀은 화려한 말솜씨나 전문적인 분석으로 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곁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우린 모두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영화 후반부에 숀이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하며 윌에게 다가가자 윌이 오열하며 끌어안는 장면은 내게도 치유의 순간이 되었다.
이 영화를 볼 때면 나는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관계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상처 또는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 기다려주는 태도가 아닐까? 정신상담을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윌이 숀을 만나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숀의 삶을 정의하고 해석하며 상처를 주는 장면이 있다. 아내를 모욕하는 말을 한 윌의 멱살을 잡지만, 이후 숙고한 뒤 만난 윌에게 숀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다면,
너의 삶을 전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숀은 윌을 기다리고,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먼저 드러낸다. 아내와의 첫 만남, 오래도록 병상에서 아내를 지킨 것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이야기까지. 윌은 숀의 진심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결국 그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는다.
이 영화가 빛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정이다. 윌의 곁에는 늘 친구 '척(밴 에플렉)'이 있었다. 공사장에서 윌과 잡부일을 하며 허름한 차로 아침이면 윌을 픽업하러 가는 게 일상인 친구.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윌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윌의 천재성을 알게 된 수학교수 덕에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다양한 회사를 거절하는 윌을 보며 그런 행동은 자신과 친구들을 모욕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이런 시궁창 같은 인생을 떠날 수 있는 윌이 일부러 자신과 친구들 곁에서 맴도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내 꿈은 아침에 네 집에 갔을 때
네가 떠나버린 걸 보는 거야
라고 진심을 전한다. 척의 이 말은 친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진심이었다. 나보다 더 먼저 멀리 빠르게 가는 네 모습을 기꺼이 응원하겠다는 것. 실제로 윌이 일보다 사랑을 찾아 자신과 친구들이 선물한 고물 차를 타고 떠났을 때, 척은 허전함보다 기쁨을 느낀다.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때로는 사랑보다 더 깊고, 가족보다 더 든든한 관계가 바로 이런 우정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윌은 마침내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선다. 늘 상처받기 전에 먼저 떠나던 그는, 이번엔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긴 여정을 힘차게 떠난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돈을 거절하고, 불확실하지만 진짜 원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고 관계를 믿기로 한 한 인간의 성장의 증거였다. 그리고 숀 역시 변화를 맞는다. 아내를 잃고 오랫동안 슬픔 속에 갇혀 있던 그는, 윌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다. 이처럼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서로를 통해 변화한다. 누군가는 치유받고, 누군가는 용기를 얻는다. 그 연결의 순간들이 이 영화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다.
[굿 윌 헌팅]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척처럼 진심을 다해 친구와 주변의 앞날을 응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배운 것들은 조금씩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에게는 공감과 이해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친구는 많지 않지만 진짜 사랑과 우정은 상대를 구속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가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라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이 세상에 윌과 숀 그리고 척과 같은 관계가 더욱 늘어나기를.
내게 연기로 감동을 주었던 최고의 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명복을 빌며.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