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cuphile
요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사람보다 AI다.
생성형 이미지 도구는 몇 초 만에 로고를 만들고, 인공지능은 ‘트렌드에 맞는’ 색조합을 제안한다. 창의성의 무게가 가벼워진 시대, 어쩐지 디자이너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창작’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그런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Abstract: The Art of Design] 속 나이키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를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기존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새로운 감각, 다른 시선, 예상치 못한 연결을 찾아내며 끊임없이 새롭게 시도하는 인간 그 자체였다. 그의 디자인은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걸 깨달았다.
연결의 힘 : 건축에서 운동화로
팅커 햇필드는 원래 건축학을 전공한 육상선수(높이뛰기)였다. 그는 운동화의 곡선과 구조를 건물의 형태처럼 바라봤고, 그 시선은 나이키의 혁신적 제품 ‘Air Max 1’으로 이어졌다. 그가 영감을 받은 것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였다. 내부의 배관과 구조물이 외부로 드러난 그 건물처럼, 운동화 속 공기주머니 ‘에어’를 그대로 밖으로 노출시켰다.
그 단순한 발상은 신발 디자인의 역사를 바꿨다. 숨겨져야 할 구조를 드러내면서, 그는 제품이 가진 ‘기술’을 ‘디자인 언어’로 변환했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해 비슷한 패턴을 만들 수는 있어도, 다른 분야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문법을 창조하는 일은 아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문제 해결의 방법
그는 늘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경기 중 겪는 불편, 발의 피로, 반복적인 부상 같은 현실의 문제들. 그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움직임을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했다.
AI가 만들어내는 디자인은 종종 ‘멋져 보이지만 쓸 수 없는 것’으로 끝난다. 반면 인간 디자이너는 맥락을 읽고, 불편을 감지하고, 보이지 않는 욕망을 형태로 바꾸는 존재다. 그건 데이터로 대체되지 않는 인간의 감각이다.
미래 디자이너의 조건
이 다큐를 보고 나서 디자인 영역에서 AI가 인간의 역할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지만, 진짜 디자이너는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에 살아남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세상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찰자이며 실험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디.
기존의 것을 조금씩 고치는 ‘업데이트형 인간’은 곧 AI에게 대체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보는 사람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간다. 아마도 AI 시대의 생존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시도하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팅커 햇필드가 그랬듯이.
결국 AI는 답을 만들어내지만, 인간은 질문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 위기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시도를 멈추는 마음이다. 팅커 햇필드처럼, 한 번 더 새롭게 걸어보는 것. 그것이 앞으로 삶을 살아갈 인류의 생존 방식이어야 한다.
혹시..
넷플릭스 구독을 하지 않고 있지만 팅커 햇필드가 궁금하면 :
https://youtu.be/JEk4OPtW4eU?si=zAKfLLJxupc4td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