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일 때는 늘 직장인이 우글거리는 동네에서 살았으니 주로 3040 직장인만 보였다. 그들이 시대의 주류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사회 및 경제활동이 왕성한 시기의 세대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전업주부가 된 이후부터 주로 동네를 벗어나지 않다 보니 대낮에 카페를 가도 지하철을 타도 마트를 가봐도 3040보다 5060 또는 그 이상의 세대가 더 눈에 띈다. 지금도 사당역의 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50대 이상 시니어 비율이 방문객의 80% 이상으로 보인다.
은행 근무 시절 50세 이상의 시니어 고객을 증대하는 생애주기 전략을 담당했다. 실제로 50세 이상의 평균 자산(부동산 및 금융자산) 보유액은 3040에 비해 더 많으며 총인구에서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9년 당시 TF팀에서 시장조사를 하며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시니어 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 정도라는 점이다. 점점 늘어나는 고령층을 제대로 감동시킬만한 서비스, 제품 등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역시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니어 시장은 은퇴자(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벌어둔 자산으로 노년을 살아가는 사람)와 비은퇴자로 구분하여 접근해야 한다. 더 깊게 비은퇴자는 자발적 비은퇴자와 비자발적 비은퇴자로 다시 구분될 수 있다.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과 반드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만 생활이 가능한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는 말이다. 냉정하게 말해 결국 시니어 산업에서 주타깃이 되는 대상은 은퇴자와 비은퇴자 중 자발적 비은퇴자라고 볼 수 있다.
은퇴 이후에도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하며 살아가는 분들을 지칭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용어가 있다. 용어 자체는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시작되던 2010년 이후부터 더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은 경제적 여유를 기반한 왕성한 소비활동을 하며, 전통적인 가족을 우선하는 경향도 있지만 자신의 삶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다.
LG경영연구원에서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은퇴시기 경제력을 갖춘 50세 이상의 연령대별 소비 유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자녀가 성장하는 시기(3040)에는 교육비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지만,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부터는(5060) 본인의 여가활동에 중심을 둔 소비를 보여 준다. 과거의 시니어 세대와 비교를 해보면 확연히 달라진 결과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절약하고 자녀의 결혼까지 지원하는데 집중하던 것에서 나 중심의 투자와 소비로 변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 연구원에서는 조건이 비슷한 가구들의 지출규모를 비교하여 구성원의 특성에 따른 평균적인 소비규모를 추측해 보았는데 매해 25~39세의 소비규모가 줄어드는 반면 55~69세의 소비규모는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MZ세대의 소비에 대해 집중 조명하며 시장의 주요 세대로 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시니어 세대의 소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령인구의 증가와 평균수명의 증가 그리고 50대 이상 세대의 부의 집중 등으로 인해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액티브 시니어의 증가는 현재를 살아가는 5060 세대의 의식 변화를 보여 준다. 가족과 자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던 그들이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 현재를 살아가는 자녀세대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전 조금 나이 차이가 나는 어린 지인이 결혼을 앞두고 처가의 경제적 지원이 부족하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처가댁에서 결혼할 때 많은 지원이 어렵다고 하시면서 장인어른은 차를 바꾸시고, 장모님은 해외여행을 자주 떠나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님과 비교하고 본인 또한 자녀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며 말하는 그에게 '그게 뭐가 문제냐'고 강력하게 말하진 못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그 친구의 생각이 아쉽게 느껴졌다.
지금의 2030 세대가 주로 이야기하는 수저계급론은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부모의 지원 여부에 앞서 나와 배우자가 힘을 합쳐 그 결혼생활을 어떻게 시작하고 유지해 나갈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의 도움은 보너스라고 여기는 게 맞다. 어쩌면 지인은 자신의 편안한 결혼생활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자녀를 위해 희생하신 배우자의 부모님께 관성처럼 희생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반대로 결혼할 때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은 자녀가 부모를 반드시 부양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바랄까?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1955~63년) 세대들을 가리켜 일명 낀 세대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경제성장과 함께 살아온 그들은 6.25 전쟁 전후세대인 부모님을 부양하며 살았지만, 그들의 자녀세대(저성장, 저금리, 자산가격의 상승 등 이유로)에게는 부양받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증가는 희소식이다. 그러한 노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분위기는 더 밝아질 것이며 노인을 경시하는 풍조 역시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출처 : 최순화 님 인스타그램
얼마 전 80세의 나이로 미스유니버스 코리아에 도전한 최순화 님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근무하던 그녀는 2017년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 74세 나이로 패션위크에 데뷔한 시니어 모델이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여든 살의 나이에도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며 겸손한 그녀의 모습은 액티브 시니어를 대변한다. 그녀의 도전은 시니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나이로 점점 향해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정신이 늙고 낡지 않았다면 그게 바로 청년이다.'(청년이라고 반드시 열정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니 이 글을 본 청년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나는 나이를 먹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겉모습이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편안해야 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부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