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아이가 여섯 살이 된다.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교육에 대해 지인들이 먼저 걱정해 준다. 특히, 영어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워낙 교육에 대한 소신(?)도 관심도 크지 않은 나라서인지 아직 공감이 잘 안 된다. 하지만 높은 비용을 투자하면서 영어유치원을 보내려는 부모가 많다는 사실과 유치원은 줄어도 영어유치원 수는 늘어난다는 기사는 대세 수요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물론 영어유치원과 실제 그 효과성에 대한 갑론을박도 많다(아래 글 참고). 이번 글을 쓰면서 내린 결론을 마지막 부분에서 밝히고 싶다.
영어유치원은 대부분 원어민교사와 한국인교사를 한 반에 동시에 두고 있으며 원내에서는 주로 영어로만 소통한다고 한다. 최근 유치원 수가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과밀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일반유치원은 선생님당 원생수가 많은 경우 20명이 넘는다고 한다(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영어유치원의 경우 평균적으로 유치원의 반 정도이거나 그 이하라고 하니 아무래도 학생을 밀착케어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들이 많은 비용을 내고 입소하는 만큼 보이는 것에 대한 관리가 철저할 수밖에 없다. 시설과 환경에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미술이나 체육활동을 전용으로 할 수 있는 특별공간이라던가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재료 등의 퀄리티가 원비가 비싼 만큼 좋다. 그러다 보니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 영어공부와 더 나은 케어라는 일석이조를 거두려 한다.
살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얻는 메리트를 실감하면서 산다. 회사에서만 보더라도 많은 직원들이 선망하는 글로벌사업부, 영미문화권 해외주재원 등에 근무하고, 발탁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가 능숙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영어는 수능에서 당당히 외국어 영역(전체점수의 20%)을 차지하는 중요한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부모들의 머릿속에는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하다. 그런데 영어를 잘한다는 개념이 조금 모호하다. 영어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보통 영어유치원에서 말하는 최대 장점은 유아기 때만 형성이 가능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언어구사라고 한다. 하루 중 영어에 장시간(하루 5~6시간) 노출되고, 원어민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발음을 듣거나 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전환하지 않고 바로 영어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에서 덧붙이는 말은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어서 어떻게 그 실력을 유지하고 끌어주느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어휘를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효과를 좌우한다고 한다. 결국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도 영어유치원에 준하는 비용을 영어학원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2002, 유럽배낭여행 中 독일에서
20대 초반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유럽의 꽤 많은 국가를 돌았고, 많은 외국인을 만나 소통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영어를 잘했다고 생각(들이댐, 무모함..)한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 달았을 때쯤 파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40대 일본인 남성을 만났다. 일본인 남성은 1년 동안 세계일주를 하는 중이었는데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 남북관계, 인종차별,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밤새도록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둘 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가 유창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 뜻만 통하는 정도였다고 생각되는데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웃고 질문하고 답변하며 충분한 소통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영어발음이 유창하지 않고, 어휘나 문법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은 우리가 대화의 주제로 나누었던 각종 소재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의견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도 소통을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영어를 사용해 우리는 주제를 가지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한 내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주제와 관련한 지식 그리고 직간접 경험 등이 더욱 중요하다. 단순히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더 좋은 발음을 위한 촉매제로서 영어유치원은 내게는 큰 매력이 없다. 오히려 영어유치원이 가진 부수적인 매력인 밀착케어와 준수한 시설이 더 끌리지만 이 또한 한 반에 50명이 넘은 아이들이 우글댄 유치원에서도 즐겁게 생활했던 나를 생각해 보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도 주 1회 정도 가볍게 영어를 배우는데 집에 와서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파벳과 색깔을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나마 흥얼거리는 아이를 보니 큰 걱정이 없겠다 싶다.
많은 부모님들의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을 비판하고자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부모로서 내 가치관에 따라 아이를 교육하려 한다. 아직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조리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즈음이 비로소 영어공부를 deep 하게 시작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 생각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일 수 있게 도서관, 박물관, 유적지, 놀이공원, 캠핑, 여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더 많은 시간을 소통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쓰고 싶다. 그런 와중에 영어로 된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자 영어를 공부하거나 관심분야 관련된 영어 콘텐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받아들인다면 부모로서 대만족이다. 쓰고 보니 우리 동네 경제학이 아니라 육아일기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