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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Aug 16. 2019

영어유치원, 이래도 보내시겠어요?

영어유치원 원어민 강사가 말하는 영유 효과

대학 친구 중에 어릴 때 외국으로 이주해서 국제학교에 다닌, 한국어보다 영어가 훨씬 편한 친구가 있다.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국어가 서툴렀는데 20년을 한국에서 살다 보니 이젠 한국어가 능숙하다. 그러나 여전히 동생과 대화할 때는 영어로 대화하는 게 더 편한 친구다. 거의 원어민인데다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 친구는 강남 대치동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어유치원에서 부원장까지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이 친구와 조기 영어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어 유치원(영유)이 정말 효과가 있어?"

"있지."

"영유 졸업한 애들이랑 3학년부터 시작한 애들이랑 5학년쯤 되면 별 차이 없다는데?"

"그래도 영유 졸업한 애들 보면 영유 출신인 거 알 수 있어."

"그래? 어떻게 알아? 티가 나? "

"원어민만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한 차이 같은 게 좀 있거든."

원어민만 안다는 그 미묘함은 뭘까?

영어유치원 비용 알아보면 최소 백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른다. 부가비용도 만만치 않다. 1-2년만 다녀도 수 천만 원 드는데, 그 효과라는 건 겨우 "원어민만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라니. 돈이 발에 걸리적거리는 집이면 영어유치원 보내라고 하겠다. 그런데 정말 일부 사람들 빼고 몇 천만 원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의 심리는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을 자연스럽게 바란다. 아이에게 들어간 몇 천만 원에 대해 정말 아무런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이 교육에 돈을 쓸 땐 뭐라도 아이에게 바라는 게 있다. 들어간 돈이 많을수록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커진다. 원어민과 같은 발음, 원어민이 쓰는 표현, 원어민과 같은 유창함..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내가 기대한 것만큼 아이에게서 나타나지 않을 때, "괜찮다, 그럴 수 있다."며 아이를 닦달하지 않을 수 있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뿌린 만큼 거두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원어민만이 아는 그 미묘한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난 사실 모르겠다. 지난 주에도 영어캠프에서 통역하느라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랑 이야기해 보았는데, 중국식 영어든  남미식 영어든 소통만 가능하면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선생님으로 온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분인데 미국으로 건너가신 분이 계셨는데, 사실 발음이나 억양으로 보면 내가 훨씬 더 원어민스러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이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하실 때 억양이나 발음과 상관없이 더 집중하고 진심으로 반응했다. 그 모습들에서 나는 ‘중요한 건 콘텐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언어 습득에서 중요한 것은 Fluency와 Proficiency인데, 한국에서 영어는 늘 Fluency를 우선시하는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고 영어회화 수업을 신청했다가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나는 입도 뻥긋 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원어민처럼 말을 너무 잘하는 거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지옥 같았고, 한 학기가 너무 길었다. 수업할 때는 몰랐는데 학기 마지막에야 교수님이 한국인인걸 알았다. 너무 영어를 잘해서 아시아계 미국인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1:1 인터뷰 때 “영어로 말하기 어려우면 한국어로 해도 된다”며 한국말을 하셔서 깜짝 놀랐다. 교수님께 영어회화가 너무 어렵다고, 한국에 이렇게 원어민 같은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고 하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대략 내용을 이랬다.


"흔히 한국인들은 말하는 사람들의 발음과 억양이 유창하면 저 사람이 정말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말하는 내용이 어떤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너랑 같이 수업 들었던 A는 발음이 좀 어눌하고 천천히 말해서 못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발음 좋고 유창하게 말하는 것 같았던 B보다 나는 A가 훨씬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A가 구사하는 영어가 훨씬 정확하고 전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마케팅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콘텐츠는 어디서 나오나? 생각하는 힘이다. 내용을 구성하는 힘이 없으면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힘이 내용을 구성하는데, 생각하는 힘은 집중력과 함께 간다. 보통, 책을 많이 읽어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고 하지 않는가? 책을 그냥 후다닥 읽는 게 아니라 집중해서 읽어야 생각할 거리들이 생겨나고 생각하는 순간도 생겨난다. 집중력은 언제 어떻게 키우는 건가? 나는 단연코 흥미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사람은 집중하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입시학원에서 가르쳤던 분들이 하는 말이 있다. "국어와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영어를 잘할 확률은 7-80%지만,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국어와 수학을 잘할 확률은 50% 이하"라는 것이다. 국어와 수학을 잘하는 아이는 집중력이 높아서 영어도 잘할 가능성이 높은데,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아이의 집중력이 높은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데 왜 집중력이 높진 않을까? 영어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영어유치원을 가는 아이들에게 ‘영어유치원에 가서 노는지 공부하는지'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공부한다고 대답한다(아이들의 대답이 정확하다. 영어유치원은 정확하게 말하면 유아 영어학원이기 때문이다. 학원은 학습을 전제로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재미있을리 없다. 흥미를 못 느끼는 아이들은 멍 때리기 쉽다. 공부하는 척은 해야 하고 알아듣지는 못하겠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앉아있지만 딴생각을 한다. 한 2년 그렇게 멍 때리는 걸 하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떨까? 집중력을 형성해야 할 시간에 집중력을 키우지 못한 아이들은 초등학생 뿐 아니라 중고생이 되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최종 목표라고 여기는 수능은 집중력과의 싸움인데 이 아이들의 수능 결과는 과연 어떨까.

멍 때리기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긴 한데...

수능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수다. 이는 집중력이 있다면 영어에서도 성과를 내는 건 어렵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나 역시 회화는 대학 들어가서도 젬병이었는데, 3개월간 집중해서 영어에 올인했더니 1년간 한국인 없는 곳에서 미국인/호주인들과 생활하는데 크게 어려움 겪지 않고 대학에서 공부할 만큼 영어소통이 가능했다. 도서관 영어학습 관련 코너에 가면 전혀 영어를 못했는데 1-2년 만에 미국에서 박사과정 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수천 만원의 비용을 들여 얻는 것이 고작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라면, 차라리 난 그 돈으로 1년간 아이와 세계여행을 하겠다. 경험만큼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 주는 건 없으니까. 세계를 경험한 아이가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이 더 가격대비 월등한 효과라고 생각하니까.


덧붙임 1.

Reference 없다고 개인의 편향적인 생각이라고들 하길래 빵빵하게 참고자료 조사해서 작성한 글 링크합니다. https://brunch.co.kr/@urholy/26


덧붙임 2. 비용대비 효과가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애들 다 영유 보내도 재정적으로 전혀 어려움 없으신 분들 태클 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효과가 얼마나 많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생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이 글의 요지입니다. 영유를 보내야하나 또는 영유를 계속 보내는 게 맞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니 참고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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