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못 딸이 2개월만에 원서 200권 읽기까지
몇 년 전, 아는 분이 자녀 과외를 부탁하셔서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의 의사이고 어머니도 학력이 좋은 분이어서 자녀에게 기대하는 게 많았는데, 그 자녀는 소위 ‘문제아’였다. 툭하면 가출하고, 학교 수업 땐 매일 자고..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고2인 아이를 만나보니 영어는 중3 수준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실력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영어학원에 보냈는데 애가 잘하니까 부모가 욕심을 부려 더 많이 공부를 시켰고, 그게 너무 큰 압력으로 작용하여 아이가 모든 걸 중단하고 엇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대로, 그 부모는 아이가 엇나가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아이가 잘 되길 바라고 집중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환경을 제공했을 텐데, 아이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았고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연히 글을 발행하기 바로 직전에 MBC에서 방영하는 <공부가 머니?>라는 프로를 봤다. 교육전문가들이 컨설팅을 의뢰한 임호 부부에게 하는 말이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하라, 아이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 봐라"였다.) 십여 년간 다양한 영어교육 기관을 거치며 부모의 사랑이 욕망으로 변질된 것을 수없이 보았다. 욕망이 사랑으로 포장된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SKY 캐슬에서 이 부분을 너무나 잘 묘사하지 않았나. 나 역시 내 아이가 잘 해서 나를 빛내주길 바라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내용이 좋아서 일부 발췌를 한다.
“저희 아이는 모국어, 영어 두 가지 언어를 가르치는 유치원에 다녀요. 외국인 교사가 꽤 엄격하거든요. 요즘 아이가 영어읽기 단계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말하기를 딸아이의 수준이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진대요. 그래서 유치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가져다 집에서 따로 공부를 시켰어요. 속상한 것은 아이가 울면서 말하는 거 있죠? ”엄마, 나 하기 싫어. 영어가 너무 어려워요. “ 이젠 내가 읽어주는 영어그림책도 싫대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냥 유치원 교육에 맞추어야 하나요? 아니면 아이의 요구대로 해줘야 할까요?”
한 어머니의 답답한 고백이다. 이 어머니만의 고민이 아니라 수많은 부모들이 공감할 만한 문제다. 자식의 영어능력 때문에 초조해하는 심리는 사회적인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어린아이가 울면서 “공부가 싫어요.”라고 한다면 나머지 10년의 세월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당신의 아이는 10년 이상의 긴 씨름을 해야 할 어려운 순간에 와 있는 것이다. 이때 부모의 태도가 학교의 태도보다 더 중요하다. 부모의 안타깝고 초조한 마음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된다면 아이는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된다. 공부는 마땅히 즐거움과 신비함으로 가득해야 한다. 더욱이 유치원이나 초급단계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에게 스트레스와 압력이 되어버리면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딸렸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부담스러운 ‘스트레스’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부모 자신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외적으로 들어오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감당해낼 수 있으며, 그러한 압력을 아이한테 전하지 않을 수 있다. “ (왕배정, <영어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중에서)
아이 방학이 끝났다고 하면, 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학교에,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흔히들 ”편해지겠네~“라고 반응한다. 맞다. 편해지고 내 시간도 생긴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들에게도 충전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워킹맘이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건 뭐라 할 수 없다. 그건 사회 시스템이 못 받쳐주는 것이니까. 본인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전문기관에 맞기는 거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솔직히, 단지 귀찮아서 또는 빨리 성과를 보고 싶어서 외부로 우리 아이들을 내보내는 게 아닐까? ”내가 실력이 안되어서”는 변명이라는 걸 이미 실력이 안 된다는 엄마들이 수없이 많은 엄마표영어 사례로 증명해주었다. 돈이 있어서 외주 주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니까. 그러나 그게 어린 자녀의 교육에까지 당연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린 자녀의 교육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와도 밀접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매일 밤마다 아이에게 영어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제일 중요한 건 아이와 <교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빨리 영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교감이 중요한 것이다. 며칠 전 아이가 학교에서 재밌게 읽은 한글 동화책을 빌려와서 나에게 읽어주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자신이 느꼈던 감동과 즐거움을 엄마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서 책을 읽어주는 딸이 사랑스러웠고 다시 한번, 함께 책을 읽으며 쌓아가는 교감이 얼마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비슷한 내용을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도 발견했다.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바로바로 효과를 보는 일은 별로 없다. ... 아이들이 하루빨리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어제 같은데, 어느 날 문득 화살 같은 세월에 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자.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소모하는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과정이 되듯이 그림책도 한 권 한 권 쌓이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자라는 기계를 발명해 아이들도 빨리 자랄 수 있다면 우리가 왜 반평생 가까운 시간을 소모하겠는가? 영어그림책을 처음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어땠을까? “후, 그림책을 10년 동안 읽어줘야 한다니! 너무 아득하다.”, “후, 그림책을 천 권이나 읽어야 하다니! 너무 많다.”
당신 역시 첫 시작부터 결과에 집착하고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은 존재할 수 없다. ... 우리의 바람이 바로 결과로 이어진다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느끼는 정서적인 교감도, 친밀함을 쌓을 기회도, 과정도 없어지고 즐거움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왕배정, <영어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속도와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어렵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다. 영어뿐만 아니라 아이와 관련된 모든 면에서.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