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못 딸램이 2개월 만에 원서 200권 읽기까지
*제목만 보시고 ‘그럼 엄마표 영어를 때려치우라는 건가?’라고 속단하진 말아주세요^^;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M 교육연구소에서 하는 엄마표 영어 프로그램에 다녀온 적이 있다. 에너지 넘치는 강사님은 영어책과 관련된 독후활동 자료들을 나눠주고 하이톤의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So, what do you see there? Oh, a caterpillar? Yes, it is. What does the caterpillar eat? Do you remember what the hungry caterpillar ate on Friday? …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아이들이 무엇을 읽었는지 확인하고 같이 다음과 같은 활동들을 할 수 있죠…”
그러면서 어떻게 자료들을 가지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내면서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책과 관련된 노래를 불렀다. 2시간 남짓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는 내내 머릿속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걸 영어교육 전공도 안 한 부모들 보고 하라는 거야?”
영어회화에 어려움 느끼지 않고 영어교육을 전공한 나도 강사가 하라는 것들이 부담스러운데, 아이에게 영어로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길래 강사는 저런 것들을 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우리나라가 싱가포르처럼 ESL 국가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저런 자료들은 언제 일일히 다 찾아 만드나?
얼마 전에도 내가 쓴 이전 영어 유아학원(일명 영유) 글에 20년 넘게 영어를 가르치셨다는 선생님 한 분이 이런 댓글을 다셨다. “작게 영어공부방 하는 사람입니다. 작가님의 글에 많이 공감이 됩니다. 초등부와 중등부를 가르치는데 정말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크다는 걸 느낍니다. 초등부 아이들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가르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네요. 초등부도 그런데 영유아들은 어떨까요. 가르치는 사람도 아이들도 많이 힘들 겁니다. “
당연한 일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집중시간이 짧고 이해력도 낮으니 선생님들이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과정 설계도 세밀하게 신경 쓸 게 많다. 그래서 TESOL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Lesson Plan을 짜는 것이다. Lesson Plan은 어떤 표현이나 문법 요소를 어떻게 가르칠지 분 단위로 쪼개서 음성적, 시각적, 신체적 활동 등을 고려하여 커리큘럼을 만든다. 보통 50분에서 75분 정도의 수업을 설계하는데, 거기에 드는 시간은 수업의 몇 배가 걸린다. 학습 연령이 낮으면 교구까지 필요하다. 어린이집 영어 교사를 하는 지인들을 보면 활동에 필요한 교구들을 만드는 데만 해도 엄청 시간을 많이 쓴다. 어릴수록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도구들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영어 그림책 읽기 수업에서 만난 분이 TESOL을 했다고 해서 한참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
“전공도 하지 않은 보통의 엄마들이 어떻게 자료들을 찾고 아이들에게 활동을 통해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직업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직업이니까 하겠지만, 보통의 엄마들이 하기에는 너무 힘이 많이 들어요. 독서 전후 활동 준비하다가 힘 빠져서 결국은 학원으로 애들을 맡길 수 밖에요."
열 살에 아이 영어를 시작한 것의 좋은 점을 하나 고르라면 바로 이거다.
“힘 빼지 않아서 좋다”
초등학교 3학년의 집중력은 당연히 대여섯 살 아이의 집중력보다 높다. 그래서 책 읽기 전 전이해 활동이나 책 읽은 후 독후활동 없이도 충분히 영어로 그림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림책 이야기의 힘이 크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배경지식이 상당량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거나 읽은 후 이야기를 나누면 그걸로 충분하다. (더 많은 학습을 기대하고 활동을 하시는 분들께는 할 말이 없다. 책 읽기만 꾸준히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정말 학습활동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느 엄마표영어 모임에서 각자 아이에게 영어그림책 읽어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한 적이 있었다. 2-3살 아기 엄마들이 아이랑 책을 읽는 모습은 정말 말 그대로 ‘고군분투’였다. 엄마가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책장을 넘기는 건 양호했다. 벌떡 일어나 다른 데로 가고 뭐라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 지르고 떼쓰고 … 책을 한 권 다 읽기 전 엄마는 기운이 빠졌다. 6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 읽자고 하니까 다른 곳으로 가려는 아이를 잡아다가 읽어주는데 딴청 한다.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지 않아서, 아이가 책 읽는 것보다 춤추고 노래하는 걸 더 좋아하는 성향의 아이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집중력이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어린이집 특별활동 영어교사이나 영유아 영어수업 교사들이 수업에 쓰는 에너지는 성인 수업에 쓰는 에너지보다 훨씬 크다. 목소리도 하이톤으로 커야 하고, 교구를 쓰면서 액션도 훨씬 크게 해야 하니 당연할 수밖에.
어제도 영어 그림책 수업에서 만난 한 엄마가 “밤늦게까지 파닉스 가르치려고 단어들을 손코팅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잠 못 자가며 만든 교구인데 아이가 흥미를 안 느끼면 어떠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돌아온 대답은 “화가 날 것 같다”라고 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엄마표 영어 활동인가 물어야 할 지점이다. 아이를 위한 마음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엄마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기 쉬운 게 교구활동인 것이다.
초기 엄마표 영어는 '교구를 직접 만들어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가르치기 보다는 매니저처럼 '엄마가 책과 음원/영상 자료를 찾아주고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엄마표 영어 었는데 어느 순간 '엄마가 영어로 놀아주고 교구를 이용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되었다. 책과 음원/영상 자료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교구까지 만들어 직접 가르쳐야 한다고 하니, 엄마표 영어를 한다고 하면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길 수 밖에. 내 지인들도 내가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고 있다며 엄마표 영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10명 중 9명은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어휴, 난 그런 거 못해. 시간도 없고 게으르고 귀찮아서 못해.”
그런데, 나라고 다르지 않다. 귀찮은 거 싫어하는 걸로 따지면 나야말로 귀차니즘 대마왕이다. 강의와 강의 준비를 해야 하고 교육 기획일도 해야 해서 전업주부보다 여유로운 시간이 많지 않다. 가사도우미를 쓸 수 여력이 없어서 여느 주부처럼 집안 일도 해야 한다. 게다가 난 이기적이다. (진짜 이기적이라는 게 아니라 표현이 그런 겁니다;;;) 나에게만 오롯이 쓰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얼마 안 되는 진짜 ‘내 시간’을 아이 교구 만드는데 몇 시간씩 들일 수 없다.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내가 이런데 종일 일하는 워킹맘들은 어떨까? 워킹맘이 아니어도 엄마들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차 마실 시간이 필요하고, 장 볼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큼 할 일이 많다. 아니 더 많을 수도 있다. 해도 눈에 띄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그래서 하루에 30분 책을 읽어주라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거기에 교재를 찾고 교구를 만드는 일까지 하라니.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에게 말을 걸기 위해 영어회화까지 공부해야 하다니. (요즘 엄마표 영어 하는 엄마들을 위한 생활영어회화 교재가 계속 새로 나오고 있다. 여기에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여기선 안 하는 걸로. 조만간 글로 쓸 테다!)
게으르고 귀찮은 나를 위해 나는 아이와 책을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가장 에너지가 적게 드는 책 읽어주는 것 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6개월을 함께 아이와 영어 그림책을 읽었더니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영어 그림책 읽기가 제일 쉬웠어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엄마표 영어- 영어 그림책 읽기”
아이가 너무 어릴 때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표 영어는 음원/영상 노출과 영어그림책 읽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영어 그림책 읽기도 어느 순간엔 음원이 대체해준다.) 엄마표 영어를 꿈꾸는 엄마들은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해야’ 오래오래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느 언어가 그렇듯 영어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