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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Oct 11. 2019

엄마표 영어든 시험용 영어든 중요한 건 맥락!

영알못 딸램이 2개월 만에 원서 200권 읽기까지

 

미국 사는 동생이랑 카톡을 했다. 동생이 갑자기 장난 반 진지함 반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드디어 아들이 하는 영어를 못 알아듣기 시작했어 ㅋㅋㅋ”

“못 들어본 거 막 암기하길래 국기에 대한 경례구나 하긴 했는데, 들어서는 모르겠어서 찾아봤…”


미국에 산지 이제 5년 차인 동생의 아들-a.k.a 나의 조카는 만 6살로 미국 초등학교 1학년이다. 작년 킨더 (초등과정 시작 전 유치원 1년) 들어가기 전까지 한국어로만 대화하고 한글책을 열심히 읽어줘서, 그리고 비자 연장하러 한국 왔다가 비자가 안 나와서 뜻하지 않게 6개월을 한국에서 지내서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아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미국 학교 들어간 지 2년이 채 안되어 원어민 같이 대화를 하는 거다. (역시 그래서 조기교육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건 금물. 아이와 어른이 언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걸 먼저 감안해야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요소가 있다. 절대 어려서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다. 동생이 2년간 조카처럼 영어에 노출되었다면,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훨씬 더 영어를 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동생의 톡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못 알아듣는 게 결국 맥락 때문이라서.. 너가 네 아들처럼 학교 다녔으면 다 알아들었을 건데. 넌 아들만큼 미국 사람들 안 만나고 영어를 쓰지 않으니까 당연한 거지, 뭐.”

“맥락은 결국 문화와 사고방식과 배경지식이니.. 애들 만화 중에 <Arthur>랑 <Milly & Molly>가 학교 생활이랑 문화를 잘 보여주니까 그걸 일단 틈틈이 보면 좋을 것 같아.”  




얼마 전 내 브런치 글을 읽는 친구 한 명이 나에게 갑툭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넌 영어 방송 아무거나 들어도 다 들리는 거야?”

“야,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 원어민도 자기가 모르는 분야는 들어도 모르는데, 우리도 똑같잖아.”


친구에게 대답해 놓고 집에 와서 한참 생각해보았다. 난 한 번에 100%에 가깝게 들리는 분야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영어 잘한다고 하면 안 되나. 그런데 최근 내가 통역한 것들을 생각해보니 사전 준비 없이 95% 이상 이해해서 통역을 했었다. 아. 내가 잘하는 분야가 있지! 순간 바닥칠 뻔한 자존감이 ‘나 여기 살아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동시통역자도 통역 전 준비를 엄청해 간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 것인지 주제가 잡히면 그 주제에 대해 몇 주씩 공부해서 맥락을 알아두는 것이다. 미리 예상 질문에 답변도 만들고, 관련자들과 인터뷰 엄청 하고.. 정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다 밟는 이유는, 그들이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맥락이 듣기와 이해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제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리노이공대에서 박사과정을 거의 마쳤다. 지도교수와 논문을 논의하고 논문을 쓰고 담당 교수를 대신해서 학부생, 석사생들을 지도하고 수업도 한다. 엄청 영어를 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제부가, 내가 통역하는 분야에 대해 듣더니 자기는 절대 그 분야를 못한다고 한다. 의외다 싶었다. 난 내가 통역하는 분야는 정말 거저먹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통역하는 분야가 나에게나 쉽지 제부에겐 쉽지 않을 수 있다. 자기가 공부하고 관심을 가지고 보고 듣던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능 영어가 왜 어려울까? 듣기나 웬만한 문제에서는 변별력이 없기 때문에 몇 문제는 엄청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 지문을 살펴보면 논문을 짜깁기 한 내용이 많다. 한 논문을 몇 군데 발췌해서 지문으로 엮은 건데, 그 지문들은 영어교사들 사이에서도 “해석을 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지문들이다. 실제로 대학 영어과 교수인 원어민에게 이 지문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봐달라고 했더니, 지문을 읽은 뒤 ‘자신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원어민이 영어를 못해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걸까? 아니다. 그 지문은 맥락이 없는 글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나는 영어로 수업하는 대학원 과정을 밟았는데, 그때 영어 논문을 한편 읽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맥락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어나가면 서론-본론-결론이 있어서 무슨 소리인지 대략 다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능 지문은 맥락 없이 딱 그 부분만 던져놓는 것이기 때문에, 논문과 같은 수준의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어도 이해가 안 되기 쉬운 것이다. (불쌍한 고등학생들...)



결국 얼마나 맥락을 알고 있느냐가 언어의 핵심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영어가 쓰이는 곳의 맥락- 배경지식과 문화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배경 지식을 위해 아이에게 책을 읽힐 때 정보와 지식 위주의 책과 문학책을 함께 읽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한국어로 된 배경지식을 쌓는 것이다. 한국어로 지식을 습득해 놓으면 그것을 영어로 접할 때 훨씬 수월하다. 나의 딸램은 워낙 한글책을 많이 읽고 요즘엔 학습만화와 유튜브도 열심히 봐서, 어디를 살짝 누르기만 하면 온갖 지식이 튀어나온다. 그런 (잡다하리만큼 많은) 지식과 정보 덕분에 영어책을 2달 만에 200권 읽는 게 가능했다.


영어권 아이들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학원물들

내가 배경지식을 채워주는 방법 중 하나는 만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문화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미드나 TED 같은 영상물들을 통해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열 살이라 만화를 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영어권 문화를 보여 주기 위해 추천하는 만화는 <Max & Ruby>, <Timothy goes to school>, <Charlie & Lola>, <Milly & Molly>, <Arthur>등이다(제목 누르면 해당 만화로 이동). 다른 만화도 더 많겠지만, 다 아직 섭렵하진 못했다. Arthur만 해도 시즌이 20 넘어서 상당히 분량이 많다.  


ESL 환경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게 결국은 문화와 언어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인데, 미국이나 영국에 꼭 가야만, 영유라 불리는 유아영어학원에 가야만 ESL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건 20년전 내가 영어 배울 때나 먹힐 이야기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정말 세계가 문자적으로 이웃사촌이 된 시대다. 원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인터넷을 이용해서 ESL 환경을 만들 수 있고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다. '이거 안 하면 안된다'고, '당신만 이거 못해주고 있는 거'라고 겁주는 사교육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는 게 오래 즐기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현명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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