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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Jul 04. 2019

엄마표 영어가 어려운 진짜 이유

영알못 딸이 2개월만에 원서 200권 읽기까지

영어 만화를 2학년이 되면서 보여주기 시작한 것 같다.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페이스북에 기록한 걸 참고해보니 9살이 되면서부터 영어 만화 시청을 시도한 듯...) 처음엔 소리에 익숙해지라고 한글자막으로 된 만화와 한글자막 없는 영어 만화를 반반 정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점점 한글자막 만화 비중이 줄면서 지금은 자막 없이 영어로만 만화를 보고 있다. (영어 만화에 관한 글은 <영어 만화에 자막없이 퐁당> 포스팅 https://brunch.co.kr/@urholy/7을 참조하시길..) 영어 만화 노출과 관련하여 9살 때의 일을 페이스북에 적어둔 것이 있어서 옮겨보았다.

 

영어 노출은 음원과 동영상으로 이루어지는데 3세 이전엔 동영상은 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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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3일


1. 차가 덜컹거리자 딸램이 차가 딸꾹질 한다며 “히껍(hiccup)!” 이러더니 “히껍이 뭐냐”고 묻는다. ‘딸꾹질’이라고 알려주자 “이 차가 히껍한다”고 한다. 헐. 가르쳐 준 단어가 아닌데..


2. 갑자기 "How are you?"라고 묻길래,
 "Fine, how are you?"라고 되물으니
 "Happy!"라고 답한다.


3. 불꺼진 거실에 잠깐 나갔다 오더니 딸램 왈.
 "Mommy, scary..."


4. 과자가 쏟아지자 "No way...!"


5. 레고 가지고 노는데 고양이에게 따라오라며 "Come on.."
 내친 김에 내가 영어로 이야기하며 3분 정도 놀았는데 거부감 하나도 없음. 약속한 만화 시간 때문에 더 하지 못함.


물론 위의 예시들을 가지고 딸이 영어를 한다고 하기엔 우스운 것들이다. 그러나 충분히 자연스럽게 아이가 영어를 배워가는 증거라고 보인다. 딸은 어린이집 때 특별활동으로 한 수업 밖엔 영어를 접한 적이 없다. ‘국어가 먼저 그리고 적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믿는 나는 일부러 영어에 노출시키지도 않았다. 올해 들어서면서 이제 슬슬 노출 해야겠다 싶어 한시간 정도 영어 만화 보여주고 아침에 내가 좋아하는 영어노래를 같이 듣는 정도.


엄마표 영어는 3시간을 무조건 영어에 노출시키라고 하고 한글자막이나 한국어 만화는 절대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아이에게나, 엄마에게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딸을 관찰한 결과,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 한 시간 정도 노출을 시키는게 처음엔 낫겠다는 생각.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3시간이 아니라 한 시간만 노출시켜도 나중에 학원에서 공부한 아이들 정도는 따라잡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그러나 긍정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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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얼마 전까지는 계속 물음표였다. 이제야  느낌표 같다.


엄마표 영어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무조건 하루 3시간을 영어로 채워줘야 한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3시간 노출이라는 것은 듣기와 읽기에 3시간을 노출시키라는 것인데, 읽기보다 훨씬 많이 차지하는 듣기는 음원이나 동영상으로 하라는 거다. 엄마표 영어를 진행하는 기간 동안에는 영어노출 3시간을 채우든 말든 상관없이, 한글TV 시청도 안되고 한글 자막 만화 시청도 안되는, 오직 영어로만 미디어를 접하는 생활을 해야한다.


우리 가족의 경우, 나는 TV시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아이 아빠는 내향적인 사람(일명 ‘집돌이’)이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1주일에 한번 사회인 야구를 하는 것과 TV 보는 것으로 푸는 사람이다(그런 그에게 TV를 없애자고 하는 건 스트레스를 풀지 말라는 것과 같은 의미). 딸도 ‘집순이’인데다 아빠랑 같이 예능보며 깔깔거리는 게 아빠랑 공유하는 중요한 취미생활 중 하나다(그렇다고 둘이 맨날 주구장창 예능만 보는 건 아니다. 내가 집에 없을 때만 가능한 공동의 일탈행위랄까). 3 명 중 2 명이 TV시청을 좋아하는데 영어 때문에 TV 한글 프로그램 시청 금지를 내리는 건 엄청난 반발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스웨덴에서 만난 북유럽 친구들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더빙된 만화나 영화 대신 자막이 있는 영어 만화나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그 덕에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자막이 있어도 영어를 배우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영어 만화 시청의 ‘연착륙’을 위해 한글 TV 시청을 금지하지 않았고, 초기에 딸이 원하면 한글자막 있는 영어만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가능하면 자막없이 보게 하려고 살짝 실랑이를 하기도 했지만.)


자료를 검색하다가 이런 걸 발견. <극한 직업 강남 유치원생>이라는 부제가 웃프다. 출처: http://principlesofknowledge.kr/archives/17191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오면 하루 3시간 영어에 노출을 시키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엄마표 영어책들에선 틈틈히 노출을 시켜주라고 한다. <흘려듣기>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등원할 때까지 영어동요를 틀어주고, 차 타고 이동할 때도 무조건 영어동요를 틀어주라고 한다. 아이들이 놀 때 흘려듣기를 위해 영어동요나 영어책 읽어주는 음원 또는 영어만화를 틀어주고, <집중듣기>를 위해서 아이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15-30분씩 음원을 들으며 책을 손으로 짚어가며 읽으라고 한다. 그래야 겨우 3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꼭 3시간일까?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중학교부터는 수학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떼어줘야 하는데 언어를 말하기까지는 대략 3,000시간이 필요하고 3년간 하루 3시간씩 들으면 그 시간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꼭 3년 안에 영어를 다 떼어야 하나? 그리고 꼭 중학교 가기 전에 떼어야 하나?


강박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으면  엄마표 영어는 숙제가 아닌 즐거움이 된다.


어떤 아이는 일찍 영어에 눈 뜰 수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영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중학교 입학까지 6년이나 남아있는데 그럼 하루에 한시간 반만 영어에 노출되어도 되는 거 아닌가? 꼭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영어를 마치지 않으면 수학이 뒤떨어지나? 고등학교 전까지 영어와 수학을 병행한다고 하면 시간적 여유는 더 생긴다.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만 노출을 해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루 3시간 노출이라는 강박이 사라진다. 내가 처음에 한글자막으로 만화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강박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엄마표 영어가 진짜 어려운 이유는 성공 케이스대로 똑같이 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강박이 없으면 아이도 엄마도 여유가 생긴다. 행복한 엄마표 영어의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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