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女자

프롤로그

by Kim기자

"이 바닥에서 일하려면, 고위층 인사와 바에 가서 마시고, 방귀 트고, 잘 수 있어야 한다. 실로 남성적인 문화가 만연해 있는데,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은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여성과 잘 게 아닌 다음에야 같이 일하길 꺼린다고 말한다. 그들은 여자를 일적인 것 외에 다른 쪽으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한 여성 근로자 말이 아니다. 1988년, 업계 상위 톱 5에 들어가는 영국계 광고회사에서 일한 남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한 말이다. (Inside the Locker Room: Male Homosociability in the Advertising Industry, 2009, Gender, Work, and Organization)



대다수의 여성들은 일터에 들어가면 여성성을 포기하도록 하는 재사회화 과정부터 거친다. 직장에서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유지한 채 존재하기보단 말과 행동, 업무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남성과 최대한 비슷해지는 것이 차라리 미덕이다. 그러지 않으면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선 남자처럼 욕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상대방이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음담패설까지 해주면 더 좋아한다.


신입사원으로 언론사에 갓 입사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선배들은 동기(여자)와 내가 첫 회식자리에서 각각 국장의 좌우에 앉도록 했다. 술잔이 비면 막내들이 알아서 빈 잔을 채워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뭔가 형언하기 힘든 불쾌감이 느껴졌지만 나만의 피해망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 이어 나온 국장의 발언이 쐐기를 박았다. "꽃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기분이 좋네~" 룸살롱 구도를 직장 회식자리에 그대로 Ctrl+C, Ctrl+V 한듯한 그림이지만 그래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사회생활 못 한다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일종의 칭찬이라 정신 승리하고, 그냥 밝게 웃기만 했다.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를 하게 됐을 때도 어디서 많이 본듯한 데자뷔가 반복됐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한 서른이 넘은 성인 여자의 결혼 의향과 남친 유무를 걱정해 줬다. "여자들은 이래서 안 뽑아야 한다", "직업인으로서 사명감, 책임감이 없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퇴직서에는 '개인적인 사유(유학)'이라고 적었다. 여성이 회사를 나가는 이유는 언제나 '개인적인 사유'여야 했다. 그들에게도 나로서도.


누구나 퇴사를 하면 조직에서의 기억을 자기도 모르게 미화한다. 그저 아름답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이 좋으면 좋은 거지.' 그렇게 넘기고 싶은 거다.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뒷모습도 아름답습니다'는 공용 화장실에서 보는 표어처럼,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아름답게 기억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조직을 나온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한 사회, 국가, 국경 밖의 세상에도 이런 모순이 만연해 있기에. 일터를 벗어난 일반 사회에서보다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이 더 만연하다고 체감한 까닭은 성희롱이 단순한 성적 욕구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닌 위계서열, 힘의 불균형 문제에서 파생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위계질서로 돌아가는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것일 뿐이다.


처음에는 군대문화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에서 길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군대 복무 시절, 보고 듣고 경험한 멍에를 전역을 하고도 가지고 나와 또 다른 집단과 사회에 복제하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가긴 했다. (사실 여자는 군대를 안 가는 것부터도 차별이긴 하다) 그리고 비교적 성적 차별이 '덜' 하다고 알려진 서구 선진국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접하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그들이 과거에 겪은 것들을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성차별 문제를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었다. 그 말은 곧, 현재 여혐 남혐 김치녀 개저씨 메갈 한남충 맘충... 무수한 표현을 양산하며 극도의 균열 양상을 보이는 한국 사회도 과도기를 거치고 있을 뿐 미래에는 좀 더 향상된 단계로 발전해나갈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그들도 겪은 흑역사, 서구 선진국들의 시행착오들을 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에 살았던 과거의 '언니'(논란의 여지가 많은 표현이지만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그대로 사용했다) 들은 어떤 상황에 처했었고, 어떤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으며 또 어떻게 대처했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간 대립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구도는 좀 더 세련된 형태로 진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자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미워하고 혐오하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동반자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때로는 그들 자신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문제가 되지만) 남자들과 '싸워서' 얻는 힘의 균형은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양성평등이라고 부르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기에 '여성이 제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소극적, 적극적인 방법을 동원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을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으로 규정짓는다고 치면, 어쩌면 그 페미니즘의 형태마저도 변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정과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양성평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구조라면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정신계몽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화의 주체와 객체, 목표, 기대효과의 근사치를 계측해야 하고 이에 앞서 케이스 스터디도 동반되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 WEF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6'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의 양성평등 지수는 전 세계 144개국 가운데 4위, 아이슬란드가 1위, 핀란드(2위), 노르웨이(3위)가 뒤를 이었고 덴마크는 19위를 차지했다.(한국 116위) 또 다른 자료를 보자. European Institute for Gender Equality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간의 통계를 비교, 최근 (2017년 10월 11일) 발표한 따끈따끈한 자료를 보면 EU 국가 중 스웨덴이 성평등 지수 1위, 덴마크, 핀란드가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다른 서구 선진국들보다 북유럽권 국가들 중심으로 사례를 엮게 된 이유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디나 비슷해서 딱히 특출 난 대안은 없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세상의 반쪽'들이 구믈ㅅ다히 써 내려간 몸부림의 역사를 일부 참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반성과 교훈도 적잖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시도들은 비단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과정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 회복,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미래를 살아갈 이세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의 반쪽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러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