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동화작가
홍당무 색깔의, 아무렇게나 땋아 올린 돼지꼬리 머리를 한 소녀가 서커스 무대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나가 '세상에서 제일 센 남자'를 때려눕힌다. 남자의 이름은 아돌프(Adolf).
나치독일이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1년 전인 1944년 발간된 동화 '삐삐 롱스타킹'은 세상에 빛을 보자마자 전쟁의 폐허 속에 절망과 낙관론이 공존했던 전후 스웨덴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놨다. 길들여지지 않는 이 반항적인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에 보수층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각에선 "정신병자 같은" 캐릭터라는 평가도 나왔다. 학교엔 가지 않은 채 기행을 일삼기 일쑤고 사회적 관습을 묵살하고 늘 가치 전복 꿈꾸던 소녀. 그 때문에 삐삐는 오늘날까지도 페미니스트의 원형 Proto-Femistist으로 간주되곤 한다. 관습 타파적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의 의외성은 저자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스트리드는 세계에서 18번째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의 작가로 손꼽힌다. 동화작가 중에서는 에니드 블라이튼, 안데르센, 그림형제 다음으로 4번째로 많이 번역된 작가로 선정됐다. '긴 양말을 신은 삐삐'를 시작으로 써 내려간 '미오야 나의 미오', '방랑의 고아 라스므스', '꼬마 백만장자 삐삐' 등 여러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스트리드는 1907년 스웨덴 스몰 랜드 빔멜뷔 인근의 내스 Näs에서 나고 자랐다. 내스의 자연 풍광은 창작활동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유년시절부터 일찍이 문재(文才)를 보이면서 한때 '빔멜뷔의 셀마 라겔뢰프(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소설가)'라는 별칭까지 얻었지만 개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지역 신문사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아스트리드는 기혼 남성과 연애 끝에 18세의 나이로 임신을 한다. 그 후 고향을 등지고 스톡홀름으로 거처를 옮겨 속기사로 일했다. 주일 동안 속기사로 일을 하고 주말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위탁시설에 있는 아들을 보기 위해 기차로 오가는 날이 이어졌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기록, 전쟁일기
초등학교 교사로도 잠시 근무했던 아스트리드는 1939년 전쟁이 터졌을 때 세 자녀를 둔 32살의 평범한 주부였다. 전시에는 우편국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편지를 검열하는 일을 했는데 주로 기밀문서가 있는지 정탐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편지 중에는 스웨덴에 난민으로 정착한 유태인들이 옆 나라 핀란드에 사는 유태인들과 나눈 대화가 적힌 서신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독일 나치의 절멸 정책에 의해 가족 친지들의 삶이 파괴당한 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는데 아스트리드는 이런 글들을 포함한 전쟁 중의 이런저런 기억들을 기록에 남겼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살던 스톡홀름 소재 아파트의 광주리 안에서 17권의 기록물이 발견돼 2015년 '전쟁일기 War Diaries'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6년 간의 세월을 담은 이 기록은 그녀의 유작이 됐다. 일기의 인용문 중에서 자신이 검열했던 핀란드 유태인의 마지막 편지 문장을 보면 당시의 절박하고도 참혹했던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에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편지로는 차마 말 못다 한 참상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주리다."
'긴 양말을 신은 삐삐', 일명 말괄량이 삐삐는 이런 상황 속에 탄생했다. 1941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아스트리드는 발목 염좌에 시달리며 자리에 누워 지냈다. 위안 삼아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침대에서 틈틈이 써내려 갔는데 어느 날에는 잠자리에 든 딸의 성화에 못 이겨 머리맡에서 삐삐 롱스타킹의 첫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들을 엮어 1944년 발간, 일약 인기 작가로 유명해졌는데, 당시는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던 상황이었다. 즉 삐삐 롱스타킹은 전쟁의 산물인 셈이다. 비슷한 시기 핀란드의 작가 토브 얀센 Tove Jansson도 1945년, 저 유명한 무민 시리즈의 첫 책을 출간했다. 무민 그림체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파스텔톤 색감, 그리고 세상에 걱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삐삐 롱스타킹의 재기 발랄함을 보고 있자면 이들의 탄생 배경을 참혹한 전쟁과 연결 짓기가 힘들다. 암흑기가 항상 그러하듯 절망은 저항을 낳고, 저항은 희망을 부르고 결국엔 예술을 융성하게 한다. 당시 스웨덴은 지금의 세련된 복지국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볼셰비즘(러시아)과 나치즘(독일)이라는 양대 세력에 샌드위치처럼 낀 채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나치에 볼 베어링 등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실익을 챙기려고 눈치를 보던 약소국의 이미지가 더 현실에 가까웠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불면증과 노이로제로 신음하면서도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계속 펜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폐기 처분된 '말괄량이 삐삐', 인종차별 논란?
그러던 2014년, 오랜 세월 동안 스웨덴인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온 국민동화 삐삐 롱스타킹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스웨덴 SVT 방송사가 1969년에 제작된 TV 시리즈물에서 삐삐의 인종차별적 대사와 몸짓에 문제를 제기, 삭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삐삐가 "내 아버지는 검둥이들의 왕"이라고 말하는 대목과 양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아시아인 흉내를 내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그로부터 다시 3년 뒤인 2017년, 삐삐 롱스타킹은 다시 논쟁의 장으로 재소환됐다.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는 지적에 따라 스톡홀름 근교 Botkyrka 지자체의 도서관이 오래된 편집본(1948년 본)을 수거한 뒤 불태워 없애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17년 9월 7일 탐사보도 기자 Janne Josefsson의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웨덴 사회가 다시 한번 발칵 뒤집어졌다. 도서관 측은 처음에 인쇄본이 너무 오래돼 낡았고, 새 책을 수납할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나중에 가서야 인종차별적 묘사가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항간에서는 다문화 추세에 대한 스웨덴 당국의 대응이 과도하다,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좌익세력의 이념 정책 검열에 걸렸다는 비난을 쏟아냈고 문화적인 자살행위로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다문화 사회로의 체질 개선에 급급한 나머지 스웨덴적 가치 Swedishness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둥이들의 왕이라는 표현이 스웨덴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저 주장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스웨덴의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나타난 결과였다. 2014년 방송사의 편집 삭제 행위에 대해 응답자의 81%에 달하는 2만 5천여 명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도서관의 소거 행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검열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린드그렌의 후손들은 방송사의 삭제 결정에 찬성을 표했지만 정작 보편적인 스웨덴인들의 정서를 가늠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스웨덴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반발했던 걸까.
2015 새 편집본에서는 "king of the Negroes” 또는 “negro king”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대신 “king of the South Seas”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이건 마치 춘향전에 중국인을 비하하는 문구나 "쪽발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고 책을 불태우거나 해당 문구를 수정, 삭제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1940년대에 사용된 어휘에서 변화한 사회상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론도 있고 고전을 멋대로 수정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도 있었지만 제 아무리 삐삐 롱스타킹도 시대적 변화의 바람을 비켜갈 순 없었나 보다.
아동학대 처벌법, 세제 개편, 동물권 보호...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사회 개혁가로
당초 사건을 보도한 저널리스트 Janne Josefsson은 이런 반발의 배경에 다문화 정책 intercultular policy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스트리드가 누군가. 그녀는 스웨덴 크로나 지폐(20크로나 새 화폐)에도 등장할 만큼 스웨덴인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인물이다.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오늘날의 스웨덴 사회가 만들어지는 데 상당부분 일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일례로, 프리랜서 집필가인 그녀에게 부과된 세율이 102%에 달한다는 기사가 1976년 보도되자 대번에 반발 여론이 일었다. 이 바람에 44년간 정권을 잡았던 사민당이 같은 해 실각했고 새 정권은 세제 개편을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1979년에는 그녀가 문학상 시상식 때 한 발언이 계기가 돼 스웨덴이 아동에게 행해지는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는 데 단초를 제공했다. 일명 '아스트리드 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아동학대 처벌법은 그녀에게 빚을 졌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왠지 정치를 하셨으면 거물급 인사가 됐을 것도 같다는 망상이 들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1980년에 실시된 원자력 발전소 폐기 국민투표 때 부결을 이끌어 내는데 한몫했고 동물권 보호에도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다방면에서 논객으로서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는 활약상을 보였다. 그랬던 그녀인데, 그녀의 작품에 손을 대고, 심지어 책을 불태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 제기를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시선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 탓인지 다문화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평소에 꾹 참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감히 그분의 책을 건드려?"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게 사후에도 논쟁의 불길을 지핀 장본인이었던 그녀는 2002년, 60년이 넘게 가족들과 살아온 스톡홀름의 아파트에서 91세의 나이로 영면한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거리마다 인파가 운집하고 총리와 왕실 일가가 참석한 가운데 국장에 가까운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스웨덴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Astrid touched the everyday Swede’, by Suzanne Öhman-Sundén)라는 평가를 받는 여성이 가는 마지막 길 다웠다.
Her Quote
Don't Let them get you down. Be cheeky, and wild and wonderful.
남들이 널 좌절시키게 내버려 두지 마라. 건방지고 담대하고 멋진 당신이 되길.
Destination for tourists
'유니바켄'Junibacken. 스톡홀름에 있는 동화 박물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 작가의 고향 빔멜비에 있는 테마파크.
'Dalagatan 46 in Stockholm'. 1941년부터 작고한 2002까지 60년 가까이 작가가 살던 아파트를 개조한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