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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지금? 지금이라 다행!

by 칼과나

고2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정신의학과 병원의 링크를 보내왔다. 우울증 있는 친구랑 얘기하다가 친구가 좋다고 한 병원이라고 했다. 요즘 애들은 자신의 우울증과 치료경험을 꿀팁처럼 공유하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것이 내가 놓친 가장 최근의 단서였다.


아이가 보내온 병원은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평일에 시간 내기가 어렵고, 계획적인 성향을 가진, 운전은 자신 없는 나에게 모든 것이 매우 불편한 병원이었다. 예약은 할 수 없으며 가서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서울이 아니라서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어중간히 멀고 운전을 해서 갈 자신도 없는. 그때 아이의 말을 듣고 두말없이 병원에 갔더라면 고3에 멈춰버리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때늦은 한탄일 뿐이다.


정신건강 상의 문제가 불거지면 맨 먼저 하는 것이 부인이라더니 내가 딱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어느 정도는 그랬던지 막상 내가 주말에 병원에 가보자고 하니 아니라고, 안 가도 된다고 하면서 서로 엇갈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갔고, 고3이 된 아이가 평일 아침, 학교를 못 가겠다고 해서 급히 찾아간 병원이 바로 그 병원이었다. 그리고 병원 접수처에서 아이는 야무지게도 친구가 추천한 선생님의 진료실 번호를 말했던 것이다. 과연 선생님은 잘 듣고, 신뢰감을 주는 방식으로 말하는 분이었다. 아이의 상황을 잘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양한 심리검사를 권했는데 다만, 우리가 간 병원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검사를 하지 않는다며 다른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소개 받은 병원에 가서 검사 날짜를 잡으니 2주 후였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로부터 또 2주 후였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검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심리검사를 진행한 전문가의 보고서에 대한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 설명에 의하면 아이는 우울증이 두드러지진 않고 저변에 깔려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우울감을 묻는 질문에서는 다 ‘괜찮다’고 답을 하는데 그림을 보고 답하는 문항으로 무의식을 보면 자아상이 손상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정인지를 잘 못해서 무기력, 불안, 집중 안 됨 같은 증상이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맨 처음 찾아갔던 병원 선생님이 아이를 처음 보고 했던 말도 비슷했다. 평일에 고3이 학교를 못 갈 정도로 힘들어서 왔으면서 선생님에게 말할 때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얼굴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가족은 어떠냐고 선생님이 물었을 때 ‘엄마가 잠깐 나가 있을까?’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한 후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보통은 엄마가 옆에 있어도 환자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고 최소한 자리에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도 하는데 딸아이의 경우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고. 그만큼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억누르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반가웠다. 병원에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나는 엄마가 나한테 생활에서 멍청한 짓 했다고 한숨 쉴 때 정말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요.’라고 말했을 때. ‘갑자기?’ 싶어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상처를 꽁꽁 싸매고 숨겨서 덧난 곳을 드디어 풀어헤쳐 햇빛 소독을 시작하는 것 같아서 안도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 말해. 그렇게. 말을 안 하고 입 꾹 다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리고 상담하러 가서도 엄마 뒷담화 실컷 해. 니가 우울증 진단받고 온 날 이거 절대 엄마탓 아니라고 해줘서 고마웠지만 엄마는 어쨌든 너의 계절이고 환경이고 니가 자란 세상의 많은 부분이었으니까. 지금 너의 현재가 엄마나 가족이라는 환경 없이 완전 진공상태에서 나온 건 아니니까. 어쨌든 네 마음속에 엄마가 드리운 그림자 같은 게 있을 거고. 그걸 입밖으로 꺼내는 것에 죄책감을 안 느꼈으면 좋겠다는 거야.”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없다. 나도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 좋은 친구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을 것이고 그럴 때 상처받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변인들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 아이에게 상처준 것을 후회하며 나를 괴롭히기 보다는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하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는 매주 한 번씩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그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마음속에 가라앉혀둔 감정들을 상담 시간에는 다 끌어내 입밖으로 끄집어내어 보는데 내 마음속에 이런 게 있었나 싶어서 놀랍다고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감정들에 이름도 붙여보고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마음의 힘을 조금씩 찾아가기를 바란다.


왜 하필 지금!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얼른 던져버리고 너무 어리지도 너무 커버리지도 않은 딱 지금이라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해도 소용 없는 자책이나 후회보다는 괜찮다는 얘기, 다 잘 될 거라는 얘기를 결국은 듣고 싶으니까. 나도 아이도. 그리고 우리 둘 중에 그 말을 해줘야 하는 것은 엄마인 나임에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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