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왔다.
집이 깨끗해졌다.
내 속은 시끄러워졌다.
원체 불안도가 높고 대단한 성취를 하지도 못한 나지만 늘 속이 편했던 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때에 하고 싶은 만큼' 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돌아오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때에 해야하는 일이 많아졌다.
남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일어나면 집을 정리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남의 집 남편이었으면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그렇게 자기 관리가 철저한 덕에 요 며칠 너무 피곤하다.
일단 밤 10시만 되면 안방 내 책상에서 뭘 읽거나 쓰려고 하는 나에게 자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노트북 PC를 챙겨서 식탁으로 나가야 한다.
청소를 하는 건 좋다 이말이야. 자기가 할 일만 하고 입은 좀 닫았으면 좋겠는데 나에게 이건 니꺼니까 니가 치워라.(지금 치워라.(저 지금 일하는 거 안 보여요?) 뒷 베란다를 가득 채운 천을 치워라.(거기 원래 천 두기로 한 자리예요!) 누구 나눠주든지 버리든지 해라.(싫어욧!)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바로 해라.(나중에 할 거예욧!) 기타등등.)
그 말을 들으면서 짜증이 솟다가 엄... 나한테 잔소리 듣는 간장이와 슈 기분이 이런 것일까 잠깐 생각했다.(슈야 일어나. 지금 일어나. 이불 개. 뱀허물 같이 벗어놓은 옷 정리해라. 옷장에 찔러놓지 마라. 학교 가기 전에 영어 한 페이지 쓰고 가면 어떻겠니. 놀기 전에 할 일부터 하면 어떻겠니. 전화기 내려놔라. 기타등등 기타등등.)
맞는 말이지만 듣기 괴로운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수조에 넣어 항구까지 오면 좁은 곳에 갇힌 정어리는 대부분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 메기 몇 마리를 넣어두면 정어리 몇 마리는 잡아 먹히지만 나머지 정어리들이 천적인 메기한테서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갇힌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버릴 새가 없다는 걸 두고 메기효과라고들 한다지.
물론 정어리 입장에서야 일단 잡혀서 수조에 들어가버리면 메기 없이 스트레스를 받아 죽으나 메기한테 도망을 다니다가 살아있는 상태로 사람들의 식재료가 되나 나아질 건 1도 없지만 어쨌든 이 실험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적당한 견제의 순기능?
그렇다면 나도 내 인생의 메기 안기둥 선생을 잘 이용해서 내 인생의 괄약근을 조여 봐야겠다. 물론 나도 그와 아이들이라는 정어리떼에게는 메기임을 잊지 말아야겠지. 그는 나를 청소와 정리정돈으로 갈군다면 나는 그를 '공부 안하늬?'로 갈군드아. 자꾸 잔소리하면 나도 메기가 될테야!
정어리떼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메기의 비율이 중요할 것이다. 딱 적당한 긴장 정도 수준으로 비율을 유지할 것. 메기가 너무 많으면 정어리떼가 다 잡혀먹혀버리겠쥬? 메기가 너무 적으면 딱히 긴장하지 않겠쥬?
하지만 내가 일을 집에서 하니까 내가 노는 줄 알고 자꾸 '이거 해라, 저거 해달라, 지금 밥을 먹겠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해싸면 싸우지말고 우아하게 회사에 출근을 해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