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인간과 사랑에 빠진 인공지능

넷플릭스 대표 미드, <굿 플레이스>

크리스틴 벨 주연의 <굿 플레이스>와 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주연의 <굿 걸스>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과 그 경계를 어떻게 넘고 넘지 않을지를 고민하게 하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크리스틴 벨은 다름 아닌 <가십걸>의 그 목소리! 그녀의 '얼굴'은 단역이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모두의 귓가에 들리는 가십의 여왕, 블로거 '가십걸'의 목소리였다. 또한 <겨울왕국>의 진주인공 '안나'의 목소리였다. 벨의 얼굴 주연작인 <굿 플레이스>를 보다가 요망하고 느와르도 없는 무지개색 병맛 판타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후진했던 적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츠>는 대과거에 보다가 후진했는데 최근 <굿 플레이스>를 완주하고 덩달아 다시 보는 중(이었는데 미루어 둔 <킹덤> 재주행을 완료하고 헛헛해서 <환혼>으로 넘어갔다). 크리스틴 벨이 나오는 최신 도메스틱 스릴러, 이웃집 창문 어쩌고 저쩌고...도 병맛이라 일단 방치 중이다.




크리스티나 헨드릭스의 대표작인 <굿 걸스>도 보다가 뭔가에 치여서 후진했는데 다른 OTT의 그, 엘리자베스 모스를 만난 운명의 작품, 1960년대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광고계의 뒷이야기를 다루었던 <매드맨>에서 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도 재회했다. <매드맨>의 진주인공인 페기 올슨/엘리자베스 모스가 갓 입사했을 때, 비서장이었던 조앤 해리스/크리스티나 헨드릭스는 이후 엘리자베스가 (여성 최초) 카피라이터로 성장하는 동안 회사의 실세를 거쳐 (여성 최초) 파트너/공동대표가 된다. <굿 걸스>에서는 꼴통 남편과 네 아이를 건사하는 만랩주부로 등장하는데 얼떨결에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공유를 닮은) 아이 친구 아빠(플레이 데이트) 겸 범죄 파트너인 마약상과 썸까지 탄다. 이건 쉬는 시간에 그냥 틀어놨다가 우연히 보게 된 장면(그녀의 상상인지 아닌지 모름주의)들이고 처음 봤을 땐 범죄자들에게 약점이 잡혀서 마트를 터는 것까지만 봤었다.




<굿 플레이스>에 도착해서 여기가 그, 헤...븐, 인가요? 라고 묻는 크리스틴 벨. 아니, 엘리너 셸스트롭. 귀여운 새우덕후 엘리너는 아무리 봐도 '내 취향이 아닌 나의 천국'에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를 깨닫고) 세네갈 출신의 윤리철학 교수(=착함 전문가)인 가짜 소울메이트 '치디'에게 윤리에 대한 과외를 받는다.


옆집은 개츠비, 아니 '타하니'라는 살짝 거만한 (남아시아계) 영국언니의 대저택. 타하니의 소울메이트는 침묵수행 중인 '지안유'라는 베트남 수도승이라고 하는데...사실 지안유는 (필리핀계) 플로리다 DJ 제이슨, 그러니까 얘는 이름부터 잘못 등록된 에러다. (베트남/필리핀 오류는 엘리너가 세네갈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프리카라고 했다가 혼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인의 출신국을 넘 쉽게 햇갈리는 백인들에 대한 씁쓸한 풍자/sarcasm이다.) 엘리너가 에러인 것을 알고 감싸주던 치디는 제이슨마저 에러인 것을 알아버리고 거짓말 (못 하는 병)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죄경력에 비해 뇌가 좀 순수한 제이슨은 '여자가 아닌' 인공지능 (not-a-girl) 재닛에게 반해서 청혼을 수락받고 결혼식을 올려버리는데...




이 병맛 시나리오가 어디서 왔나 했더니, 다문화 뉴욕 드라마 맛집 <브루클린 나인-나인>과 같은 크리에이터의 작품이다. 주요인물의 예사롭지 않지만 한결같은 성격과 자신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는 착장. 특히 '여자가 아닌' 재닛은 여러가지 색상의 재닛 유니폼을 입고 나오다가, 뒷 시즌에서는 다른 재닛들과 구별하기 위해 처음 입었던 재닛 유니폼을 계속 입고 있다. <브나나>의 제이크 페럴타의 가끔 반짝이는 천재성을 제거한 곰탱이 버전이 제이슨/지안유인 듯. 제이슨과 재닛이 천생연분인 것처럼 제이크와 에이미도 뗄 수 없었지. 에이미 역시 에이미 수트를 컬러별로 돌려입거나, 승진한 후로 경찰 유니폼을 계속 입었지. <브나나>에서는 4차원 정신적 지주인, 지나가 엘리너의 포지션이다.


한편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츠>는 발랄한 색감의 뉴욕 드라마여서 <브나나>의 분위기도 있지만, 기본 세계관은 <굿 플레이스>와 더 비슷하다. 이상한 나라, 아니 헤븐에 떨어진 엘리너처럼, 이상한 뉴욕에 남기로 한 키미는 사이비 교주의 벙커에서 구조된 '두더지 여인'이다. 지난 세기 이후로 세상 구경 못해본 이 시골 여인은 현재의 뉴욕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 순수하지만 그래서 용감하다. 마침내 첫사랑! 을 외치려던 순간, 불법체류자인 그는 다급하게 같은 반 노년여성과 위장결혼을 하고 마는데...


처음 봤을땐 모르고 그냥 보다 말았지만 이제 보니 키미의 그 교주는 <매드맨>의 남주인공 '돈 드레이퍼'였고, 키미의 이부동생 키이미는 돈 드레이퍼의 장녀, 샐리 드레이퍼/사브리나 스펠먼/키어넌 십카였다. 뿐만 아니라 키미의 첫사랑인 베트남(!) 출신 불법체류자인 연하남 '동'은....<메이즈 러너>의 이기홍이었다! (그는 내가 영어이름을 굳이 쓰지 않기로 결심한 계기를 제공해주신 분이다.) '동'은 약간 이 구역의 지안유/제이슨, 느낌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야무지다. 키미가 너 수학 잘하잖아! 라고 했더니, 누나 그거 인종차별이야! 라고 받아주는 센스. 그리고 일단 수학을 잘하니까 제이슨보다는 낫지. 제이크처럼 촐랑거리지도 않고.




키미는 엘리너와 닮은 구석이 있지만 타의로 고립됐을 뿐, 고립된 자들의 정신적 지주였고 지금은 나사빠진 뉴욕 4총사의 정신적 지주다. <브나나>의 지나처럼 (또는 <직장의 신>의 미스 김 처럼) 고독한 늑대, 였던 앨리너는 어떻게 만나도 높은 확률로 로맨스가 싹트는 치디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성을 탑재하고 '굿 플레이스'의 리더로 거듭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