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아 슐리, <글쓰는 여자의 공간>
사회학자이자 사진작가였던 지젤 프로인트는 사진의 힘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찍은 예술가들의 사진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사진작가 프로인트의 명성은 여성 작가들을 및나게 했다. 반대로 여성 작가들의 명성이 지젤 프로인트를 빛내주기도 했다. -23p, 서문
타니아 슐리는 '공간'이라는 주제로 35명의 여성 작가들을 나열했다. 개인의 취향이지만 대부분 모두가 인정할만한, 주로 20세기 작가들이다. 영어권 백인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은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더, 비영어권 (그리고 유색인종) 여성 작가들을 가급적 많이 모아둔 흔적도 보인다. 한강 작가가 부커상을 수상하기 전에 나온 책이라 동아시아 작가의 부재는 어찌 넘겨보겠는데, 인도계 영어권 작가들이 없는 것은 서운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리스트 덕분에 리스트 덕후인 나는 행복하지. 게다가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했던 날,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도 발견해서 함께 구입했다. <예술하는 습관>은 <글쓰는 여자의 공간>에 중복등장하는 작가들을 포함해 131명의 여성 예술가를 소개한 책이다. (덧: 메이슨 커리는 <리추얼>이라는 루틴 보고서를 집필한 뒤 성비의 불균형을 깨닫고 <예술하는 습관>을 썼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그 이유는 대체로 여성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창작자를 엄선했다. 두 책의 인물당 분량은 비슷하지만 사진이 반 이상이고 인물도 35명으로 요약한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 좀더 읽기 편하다. 인물사전, 게다가 등장인물이 거의 다 셀럽(?)이다보니, 사진이 반 이상이어도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진 않는다. 오히려 산만함이 극대화되고 그 산만함의 장점과 함께 단점까지 오롯이 끌어안아야 하는 상태로 오랫동안 책을 들었다 놨다 해야한다. 호불호 있음주의.
로런 엘킨의 <플라뇌즈: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 등장하는 산책덕후 미국언니, 영국언니, 프랑스언니...등을 정리해 둔 플라뇌즈 노트에 이 책, <글쓰는 여자의 공간>에 나오는 언니들 이름도 원어로 적어두었다. 원어지만 내 글씨라 훨씬 알아보기 쉬운 목차를 통해 등장 작가들을 내 취향껏 분류해보자.
시몬 드 보부아르,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조르주 상드, 해리엇 비처 스토
크리스타 볼프, 엘프리데 옐리네크,
엘사 모란테, 셀마 라게를뢰프,
카렌 블릭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수전 손택, 앨리스 워커, 니콜 크라우스
토니 모리슨, 이사벨 아옌데, 애거사 크리스티
독자들은 볼프의 저서에서 사회체제에 고통받았던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 여자 예언자, 사랑을 해선 안 되는 여자, 전체주의 체제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자살'을 한 카롤리네 폰 귄더로데까지... -55p, 크리스타 볼프
아렌트는 낡은 확실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현혹되지 않은 불온한 사상가였다. -69p, 한나 아렌트
1984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그녀는 이 기계를 집필도구로 처음 사용한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남편이 컴퓨터 전문가라는 이유도 여기에 한몫했다. 그녀는 키보드를 이용하여 열 손가락으로 매우 빠르게 글을 쓴다. -89p, 엘프리데 옐리네크
실비아 플라스는 대학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까지 받은 재원이었지만, 이젠 남편이 글을 쓸 때면 자기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덫에 걸린 것이다.
-115p, 실비아 플라스
그녀는 일평생 다리에 장애를 안고 살았고, 고향집을 떠나서는 늘 이방인이라는 자의식을 품고 지내야 했다. 그녀의 주인공들도 작가를 닮아 다들 외톨이이자 유별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134p, 셀마 라게를뢰프
그녀는 노란색이나 하얀색 종이에 사인펜이나 연필로 글을 썼는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세 번 수정하고 나면 이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172p, 수전 손택
가장 좋아한 시간은 이른 아침에 블랙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영감의 원천이 고갈될 때까지 글을 썼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침을 기다렸다. -194p, 캐서린 앤 포터
그녀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편한 여성'으로서, 흑인 인권운동이나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214p, 앨리스 워커
그녀는 180권의 책과 1만 5000장의 편지를 남겼으며 수없이 많은 신문기사를 썼다. 한 사람이 평생 다 읽기도 힘든 양이다. -267p, 조르주 상드
리스트와 예문에 등장하지 않는 작가들도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안에 읽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