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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05. 2023

서울에서 맛보는 시카고-뉴욕 나이트 클럽

브로드웨이 내한 뮤지컬 <시카고> 후기

벌레스크 쇼와 재즈시대 범죄도시, 무엇보다도 언론플레이 그 자체를 연극(play)화했다는 점에서 브로드웨이 (내한) 뮤지컬 <시카고>는 2주 전에 관람한 연극 <메디아 온 미디어>와도 맞닿아있다. 이 작품은 니콜 키드먼의 <물랑루즈>를 통해 드가와 툴루즈로드레크 시대를 복원한 시기에 (트렌드였을까, 우연의 일치였을까?) 캐서린 제타-존스와 르네 젤위거를 통해 영화화됐고, 막 영화덕후의 길에 들어섰던 스무 살의 나와 만나 단숨에 인생작이 되었다.


그때는 피츠제럴드도 재즈시대도 몰랐고, 심지어 방영중인 <가십걸>의 존재도 몰랐지만 범죄와 유흥이 어디에서 성행하는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다. 먼 훗날 등장하게 되는 모레나 바카린의 <고담>이나 윤계상의 <범죄도시>에도 (1편만 봤다.)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이십 년 전, 나름 괜찮은 한국영화가 막 터져나오던 시기에 갑자기 <시카고>가 대장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 "Cell Block Tango"였다. 뮤지컬 취향에 대해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지만 먼 훗날 혼자 뉴올리언스를 헤매고 다닐 정도로 이미 그때도 난 재즈덕후였다.


재즈 속 탱고를 편애하지 않았고(굳이 편애한다면 차차차를 더 좋아한다.) 스릴러덕후로 발달(?)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영화 버전 <시카고>에 등장하는 '셀블록 탱고'는 음악적 완성도와 더불어 모든 면에서 취향저격을 했다. 이 노래는, 죽여야 사는 여성들이 이미 기소당해 갇힌 behind bar에서 부르는 처절한 항변이다. 어찌 그들의 탓을 할 수 있겠는가.




무대 공연 역시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스테레오타입보다는 재즈클럽의 벌레스크 쇼에 가깝다. 영화보다 의상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으니(그럼에도 신발까지 갈아신는 언니들, 대단해.) 두 주연배우를 제외하면 거의 한두개의 기본 의상을 입고 있는데, 메인 댄서들의 의상은 란제리다. 그러니까 폴리 베르제르와 물랑루즈 쇼걸의 후예는 본격적으로 란제리 룩을 전시하는데....마침 <가십걸>의 블레어가 예비 시어머니 1호에게 과거를 들켜서 혼나는(?) 장면을 보다가 '벌레스크에서 춤춘 애는 너밖에 없다'는 대사를 들으니 확실히 알겠다. 벨마 캘리가 공연하던, 록시 하트의 꿈의 무대는, 블레어 월도프가 숨은 자아를 드러냈던, 척 배스의 스트립 클럽과 같은 곳이었다! 물론 척 배스는 취향이 고급이라 시골 공항 근처의 스트립 클럽보다는 괜찮은 무대를 보유했고 그래서 블레어가 올라갈 수 있었지만.


아직도 이 세계의 비밀은 네버엔딩이다. 패스워드 스픽이지(역시 재즈시대에 생긴 밀주업체, 암호 술집)에도 가 본 나 역시, 벌레스크를 직접 본 것은....뮤지컬 <시카고>가 처음이라고 해야겠지.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클럽은 이 <시카고> 말고 '일리노이' 시카고(지명), 뉴욕과 마이애미(살사 클럽), 뉴올리언스와 심지어 애틀랜타에서도 방문했지만 진짜 '쇼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영화와 책으로만 봤다. 영화와 뮤지컬의 원작인 연극 <시카고>의 배경이기도 한 1920년대 시카고보다, 이제 막 브로드웨이가 본격적으로 다양해지기 시작한 1940년대 뉴욕의 쇼걸들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시티 오브 걸스>에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위기의 주부들>과 나탈리 포트먼의 <클로저> 등 관련 콘텐츠는 많지만, <시카고>는 <시카고>만의 밈이 있다.




뮤지컬 중에서도 특히 음악의 비중이 크면서도 싱어에게 집중되는 장면은 "When You're Good to Mama" 정도. 이 구역의 싱어를 담당한 마마의 가창력과 카리스마에 흠뻑 젖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넘버는 재즈이되, 댄스음악이다. 앉아서 관람하는 것 자체가 수행처럼 느껴지는 공연이다. (시카고 재즈클럽에서 들썩거렸던 기억과 겹쳐진다.) 오히려 덥고 축 늘어진 7월 마지막주에 공연을 예약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공연의 1부는 나를 의자에 붙여놓느라 힘들었고, 2부는 뭐라도 좋으니 계속 앉아있는 것만 빼고 하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 그 자체보다, 필연적으로 춤이 따라오는 음악으로 구성된 공연이라 '우와 멋있다'보다 '같이 추고 싶다'고 느끼는 작품이었다.


동명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면 라이브로 진행되는 쇼 자체를 즐기면 된다. 전형적인 뮤지컬보다 클럽 공연을 보듯이 감상해야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뮤지컬 무대에는 오케스트라와 댄서들이 상주하고, 화려한 연출이 없는 대신 피튀기는 범죄씬도 없다. 댄서, 그러니까 배우들에게 많은 것이 달려있는 작품이었다. 서울 공연은 8월 6일까지, 부산 공연은 8월 11일부터 8월 20일까지, 대구 공연은 8월 25일부터 9월 3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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