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을 재평가하는 것 치고는 스케일이 컸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을 보며 2년 전에 리뷰했던 <이미테이션 게임>을 떠올렸다. 그 작품 역시 '사극 단골' 배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열연한, 시대물이자, 전쟁과 과학의 교차로에서, (성소수자인) 너드와 여성의 복잡다단한 이슈를 다루고 있었기에 <오펜하이머>를 보는 내내 만족도의 기준점을 제시했다. 화면 크기부터 사운드까지, 극장이 주는 확장된 스케일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화려한 연출이 시너지를 보였으나 결과는 완패.
우선 크리스토퍼 놀란 자체는 왓챠피디아에 의하면 나의 최애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화를 특별히 의식하고 본 적이 없었어도 대부분 좋아했다. 그 영화들 중에서 배우가 각인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번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는 <조커>라는 영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영화의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오펜하이머>에는 꽤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작중 셀럽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주연 배우에게 철저하게 몰아주는 인물 중심 사극이 됐다.
컴버배치에 비해 나이틀리의 비중이 결코 협소하지 않았던 <이미테이션 게임>에 비하면 <조커>와 <오펜하이머>는 너무 '그 남자'만 보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그 남자'의 고뇌까지 알아달라는 뉘앙스로 가득했다.
그의 죄책감이나 복잡미묘한 내적 갈등을 화려한 연출을 통해 전달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그 사람을 이해해달라는, 혹은 그 사람을 둘러싼 논란에서 일종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우회적으로, 대신 끈질기게 표현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했을까?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수 있는' 개발 과정이 '우리가 먼저 하지 않으면 더 나쁜 사람에게 선수를 뺏긴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미국 정부의 은밀한 지원과 압박에 대해 전쟁 중이고 군대 조직을 통한 상명하복이고 어쩌고 저쩌고는 핑계로만 보인다. 그래서 그 맥락을 비판하지 않고 (그러면 중립적인 것인가? 또는 방관인가?) 오펜하이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무마한 채 그의 멋짐(?)과 천재성과 이후에 뒤따르는 트라우마와 내적 갈등을 보여주면 그만인가.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지레 방어적으로 다른 평가를 봉합해버리고 '여기 봐,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멋진 천재가 있었어!'라고 강요하면 그만인가. 마치 이것이 강한 주장은 아니라는 듯,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고 여러 시간대를 옮겨다니지만 작품은 오펜하이머가 인정받는 과정과 억울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번갈아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되고, 오펜하이머가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강한 주장을 반복한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경우 적국의 존재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그와 같은 애국심 강요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집중한 작품이되 그들이 '위대한 발명가'가 아니었어도 그런 취급을 당해서는 안 됐었다는 생각을 하도록 실마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은연중에 주요 역할을 맡은 여성들을 단역급으로 전락시키고, 단순한 군인아저씨가 '아니'라는 대사가 있음에도 명배우인 맷 데이먼을 단순한 조연급으로 전락시켰다. 주인공을 위해 모두를 희생시키고, 주인공에게 딜레마를 제공했지만 조국의 선택을 어쩔 수 없었다는 뉘앙스로 세계관을 설정하기 위해 화려한 연출력을 연료로 활활 태워먹었다.
이 발명 덕분에(?) 일본이 패전했다는 무언의 주장 또한 미국에게 고마워하라는 강요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놀란 감독의 애국심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식민지였거나 일본의 제국주의 피해자라면 미국이라는 강한 국가에게 그런 빚을 지고 또다른 고초를 겪었다.
게다가 미국과 소련에게 접전지를 제공한 국가에서 태어나 군부독재와 민주항쟁 등 암묵적 전시 상황을 수없이 겪어야 했던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뚱그리는 서사는 반공비디오만큼이나 단순해서 불쾌하다. 과학자의 일생을 핑계로 미국의 반공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거대한 광고였다.
교양과학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하는 선전이라면 등장인물을 포함해 과학계에 공헌한 사람들의 명예에도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쟁에 대해 억지스러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 모든 살생을 정당화하려는 그 모든 뉘앙스가 실패한 작품이다. 애초에 전쟁이 어쩔 수 없다는 잘못된 설정해서 출발했기에 이 실패 또한 필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