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판타지가 필요하다

<샬럿 왕비: 브리저튼 스토리>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영드인 줄 알았는데


미국 로맨스 소설 원작인 미드 <브리저튼> 시리즈는 19세기 영국 왕실(조지 3세, 섭정기)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다. 셜록의 도시, 런던이 햇빛 가득한 화려한 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지 3세는 실존인물이지만 비현실적 색감의 영상미는 판타지를 암시한다. 브리저튼 남매의 4남 4녀 이야기 속, 이 구역의 가십걸인 레이디 휘슬다운이 등장하고 시즌 1에서 레이디 브리저튼과 사돈이 된 레이디 댄버리는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같은 포스로 등장한다. 레이디 댄버리와 레이디 브리저튼의 인연은 프리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레이디 댄버리의 청년기


이 구역의 루이자 메이 올컷이자 셜록, 인 엘로이즈에게 레이디 휘슬다운 사건을 조사하라는 비밀임무를 내린 퀸 샬럿은 사교계를 직접 지휘한다. 한편 레이디 댄버리와 퀸 샬럿도 찐친이다. 이들의 청년기를 다룬 외전이 바로, <샬럿 왕비>다.


원작과의 차이는 모르겠지만 <브리저튼> 시리즈에서 가장 충격적인 캐릭터가 바로, 샬럿 왕비다. <브리저튼> 시즌 1-2에서 결혼에 골인한 브리저튼 장녀 D(넷째)와 장남 A(첫째)는 갈색 피부 외국인과 결혼했다. 그런데 로맨스의 주인공이 (적어도 한 명은) 갈색 피부인 것이 2020년대 드라마의 디폴트*가 된 지금, 이 사실이 뷰포인트여서는 안되지만 배경이 19세기 영국 섭정기라는 설정과 부딪힌다?


여기서 설정 구멍이랍시고 인종혐오들 드러내는 사람들(실제로 넷플릭스 페북 계정에 댓글 달아놓은 것을 보고 뒷목잡음주의)이 작품을 정주행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샬럿 왕비다.




*지난 영상물 역사는 물론, 시각예술 전체의 역사는 철저히 백인 중심이었고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캐스팅을 다양하게 하려는 시도는 백인 중심의 역사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극사실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로맨스나 판타지 장르라면 개연성을 마련해주고 다양성을 시도하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


외국인 퀸 샬럿이 시집와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그녀(조지 3세의 왕비)가 갈색피부는 아니었겠지만 드라마에서는 독일 지역의 그리 힘이 없는 나라 출신인 샬럿 공주가 피부도 피부지만 어마무시한 곱슬머리를 가지고 시집온다.


조지의 모후인 프린세스는 조지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힘 없는 외국인 공주와 서둘러 결혼시키지만 샬럿은 바보가 아니었다! 엘로이즈와 페넬로피의 이모할머니 뻘(엘로이즈의 엄마인 바이올렛과 샬럿은 많아야 6살 정도 차이나지만 엘로이즈 위로 자식이 많고, 현재 샬럿의 자녀들은 30대 이상도 많으니 한 세대 이상 차이난다.)이지만, 뒷세대인 이들만큼이나 조숙한 통찰력과 주체성을 가졌기에 첫날 밤부터 집에 안 들어오겠다는 새신랑이 단지 왕이라고 봐줄 리 없다. 개연성을 위해 왕실의 나머지 사람들은 사극 특유의 '아니되옵니다, 전하!' 스타일로 일관하지만 그 와중에 샬럿과 조지의 비서들이 꽁냥꽁냥하면서 대리만족을 시켜준다.


그러니까,
대체 언제 초야를 치를건데?


킹 조지와 퀸 샬럿은 이미 첫눈에 반했다. 조지는 비밀을 알리기 싫고 샬럿은 자신이 '퀸'인데 어째서 나랏일과 남도 아닌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브리저튼>이 에로스 맛집으로 이미 유명한데 우리의 샬럿은 하루에 세 번씩 어마무시한 의상을 갈아입고 혼밥을 한다.



퀸 샬럿의 청년기


한편 대비마마(공빈)인 프린세스는 샬럿이 너무 튀지 않게 하려고 결혼식 전부터 갈색피부 외국인 귀족급 가문에게 공작 등의 칭호를 내린다. 늙고 뚱뚱한 남편에게 하루에 세 번씩 압사 위기를 느끼며 굴욕적인 육체관계를 하고 있던 댄버리 여사는 그렇게 댄버리 공작부인이 된다. <샬럿 왕비>의 진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이디 댄버리는 퀸 샬럿의 측근으로 임명되는 한편 프린세스의 스파이도 제안받는다. 샬럿 덕분에 지위가 승격됐고, 샬럿이 마음에 들지만 본인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이 와중에 남편이 복상사를 해버려서 과부가 되는데...


프리퀄에서 단역으로 등장하던 소녀시절의 바이올렛은 브리저튼을 만나서 8남매를 출산한다. 최근에 과부가 된 레이디 브리저튼과 베테랑 과부인 레이디 댄버리의 대화를 통해 비밀이 드러나고, 두 여성의 우정도 엘로이즈와 페넬로피처럼 위기를 맞는다.




<브리저튼> 시리즈는 <오만과 편견>이 연상되는 댄스파티와 약간의 썸을 거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혼부부로 직행한다. 특히 <샬럿 왕비>는 결혼을 먼저 하고 썸을 탔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더 애가 탄다. 남들은 빨리 후손을 가지라고 하고 서로 사랑하는데도 진정한 부부가 아닌 것이다.


브리저튼 가의 A와 D의 경우 약혼이라도 해야 진도를 나갈 수 있었는데 청혼을 망설이는 남주인공이 고구마였다. 킹 조지는 자기 의사는 아니었어도 데려온 신부를 받기만 하면 되는데, 받아서 신혼집에 고이 모셔다 드리고 당당하게 가출한다? 샬럿은 조지의 연구실에 찾아가 진실을 추궁하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 하면서도 한없이 이끌린다. 각자의 컴플렉스과 고립감을 간직한 채 미스터리한 번식력을 보여주는 이 커플은 여전히 천생연분이다.




그러니 로맨스 맛집 <브리저튼>의 프리퀄, <샬럿 왕비>도 로맨스다. 로맨스가 부각되는 작품, 속칭 장르물이라고 하는 이 스토리는 극사실주의와 대립하지만 사실적인 개연성을 기반으로 한다. 다만 거의 비현실적인 '절대 사랑'이 존재하는 만큼, 갈색 피부를 가진 영국 여왕도 존재할 수 있다.


오히려 설정 구멍이라면 왕자와 공주들의 피부가 대체로 너무 밝다는 것인데, 나름의 완충장치라고 넘겨보겠다. 피부는 밝은 편이나, 북유럽보다 카리브해에 가까운 분위기, 혼혈 느낌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