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려다 사랑에 빠졌네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는 드라마, <환혼>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추억의 드라마 <마이걸>, <환상의 커플>,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 그리고 나는 보지 않았지만 많이 들어본 <호텔 델루나>의 극본을 집필한 홍자매의 신작 <환혼> 시리즈를 봤다. 그 전에 <킹덤>의 뒷부분이 기억나지 않아서, 시즌 2와 외전까지 다시 보다가(...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브리저튼>도 이 구성이네?) 연관 작품으로 <환혼> 예고편(=시즌 2의 주요장면)을 봤는데 호기심이 동했고 본편을 열어보니(오프닝부터 내내 긴장감 가득!) 더 좋았다.


시즌 1의 음침한 오프닝에는 무려 '강현남'으로 유명해진 염혜란 배우가 나왔고, 이 세계관으로 안내하는 특별출연진의 센터, '장강'을 맡은 주상욱 배우도 시선강탈을 했다. 무엇보다도 완벽하게 예쁘고 멋진 여전사 언니가 나왔다. 그녀를 보는 순간 <킹덤>의 아신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 최애 배우였던 하지원의 액션 연기를 보기 힘들어진 후로 전지현의 액션이 갈증을 달래주긴 했으나 끝내 풀리지 않는 아신에 대한 의문들이 멋짐을 반감시켰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여전사, 고윤정을 만났다.




스포일러 주의


새로운 여전사의 이야기는 괜히 <환혼>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이 붙은 게 아니었다. 멋진 언니는 나오자마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환혼을 해서 몸도 부실하고 앞이 안 보였던 여성, '무덕'이 된다. 무덕의 원래 몸은 생각보다 강하지만, 주인공 '낙수'가 기력을 쓰지 못하게 한다. (아니, 그래서 멋진 언니는 회상씬에만 나온다고?!) 환혼을 하면서 무덕의 눈은 보이게 됐다. 그리고 문제의 문제아를 만난다.


재미삼아, 혹은 제왕성을 타고난 아들을 얻을 목적으로 장강과 환혼한 선왕의, 아들이자 천부관 관주 장강의 아들이기도 한 '장욱'을 만난다. 환혼을 했어도 장강의 육신에는 장강의 원래 유전자가 있었을테니(당연한 것 아닌가?) 장욱은 장강의 아들이지만 천하일색인 도화가 낳은 그 아이는 장강이 뿌린(행위가 그렇게 중요한가?) 씨가 아니었다. (어쨌든 외도없이 태어난 사생아라니, 기발하다!) 장강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본인이 제어하지 못하는 '다른 자아'처럼, 증오의 대상이다.




장욱을 출산한 직후 도화는 사망한다. 장욱에 대한 감정이 '내 아들 아님'에서 '내 아내를 죽임'의 분노까지 더해져 흑화했다. 장강은 장욱의 기문을 막아 어떤 술법도 쓰지 못하게 하고 사라지며,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마법불능 마법사 장욱은 기문을 열어 줄 스승을 찾아 전국투어를 한다. 그런데 바로 코 앞에 있는 아지트에서 낙수의 혼이 들어있는 무덕을 우연히 만나, 자신의 스승임을 '한 눈에 알아봤다'.


판타지 맛집 홍자매의 극본인줄도 모르고 봤는데 청부살인업자인 낙수가 들어있는 무덕이와 장욱이 사랑에 빠질 것은 뻔히 보였다. 그것도 영원한, 운명적 사랑이겠지, 한국드라마니까. 조선의 평행세계인 대호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세계관은 조선, 아니 대한민국 보다도 급진적인 면이 있다. 진요원을 다스리는 진씨 가문의 수장은 진씨 모계 혈통을 물려받은 진씨 장녀가 물려받는다. 이 설정이 너무도 고집스러워서 역효과가 나는데, 그로 인해 시즌 2에서 진호경의 장녀 진부연이 지하감옥에 갇혀서 씨받이 가모장의 운명을 강요당한다.




술사 '나으리'들은 조선의 양반들처럼 대접을 받긴 하나, 정말 못된 아이들이 아닌 이상 계급의식이 철저하진 않다. 장욱은 어머니에게 의지하듯 김도주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안주인이 결혼할때 데려온 매니저, 김도주는 죽은 안주인 도화와 가출한 장씨 가부장 장강대신 실제로 모든 살림을 총괄하고 대외적으로도 장씨 가문을 대표한다. 도련님의 매니저 출신 약혼녀, 무덕에게도 당당하게 '너를 마님이라고는 못 부른다.'고 선언한다. 무덕이도 '김도주님을 시어머니로 모실 수는 없다.'고 한다. 김도주는 송림이라는 대기업의 총수와 맺어지는데 엄청 신분상승한 분위기는 아니다. 이미 장강의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듯한 포지션으로 자연스럽게 사모님이 된다.


편의상 기숙학교가 딸려있는 송림의 술사들과 각종 국가인증 마법기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남성청년들이지만 천부관 비밀요원 중에는 낙수와 같은 여전사들도 많다. 무덕이 탈을 쓴 낙수의 아지트이기도 한, 취선루의 사장은 이 구역의 정보부장이다. 평행세계에도 주요 정보는 주점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클리셰이나, 이 아지트 덕분에 무덕과 장욱이 만나고 썸타고 약혼했다. 무덕이를 찾으러 왔다가 어둠의 세력과 결탁한 소이는 시즌 2에서 도박장을 맡아서 경영한다. 처음부터 빌런이었지만 율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던 소이를 이용한 진무, 그가 바로 대장 빌런이다. 낙수를 키운 것도 진무였다.


진요원의 관리자 진씨 집안의 사생아 진무는 진씨 가모장 진호경의 이부동생이다. 진무는 본가는 본가대로 이용하고, 자신이 환혼시켜 곳곳에 숨겨놓은 스파이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한다. 부재중인 장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끝을 모르고 날뛰는 그의 욕심은 컴플렉스였다. 진무의 세력과 그 끝없는 욕심을 보는 순간, 아, 이 놈이 죽어야 이 스토리가 끝나겠구나, 싶다. 특히 누나 부부를 이간질하고 왕후를 폐인으로 만드 부분은 진저리가 난다.


물론 진무가 사악한만큼, 낙수나 소이와 같은 악의 없던 빌런들이 정당성을 회복한다. 낙수는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 주로 사망자를 배출한 전설의 살수이나 귀여운 무덕이의 탈을 쓰고 그냥 장강을 따라다니는 하인 행세를 하고 있다. 제왕성을 타고난 장강의 존재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이름없는 살수로 길러진 낙수는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야 제 이름을 되찾는다.




잃어버린 진부연을 대신해 진씨 집안 후계자 과정을 밟고 있는 차녀 진초연은 송림의 후계자인 박당구와 사랑에 빠지면서 갈등한다. 언니가 돌아와야 가모장의 무게를 덜고 송림의 사모님이 될 수 있는 난처한 처지. 결국 이들의 보호자는 아들은 박씨, 딸은 진씨가 되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장욱을 짝사랑하는 허윤옥 의원은 세죽원 원장 허염의 손녀. 보기보다 실력있는 허씨 가문의 의술 덕분에 허윤옥은 왕실 의사로 활약한다. 빌런이지만 순수한 소이가 짝사랑하고, 어린 시절에 만난 낙수를 잊지 못하는 서율은 꽃미남과 모범생의 역할을 맡아 사회생활은 어리버리한데... 알고보니 왕후의 조카였다.


무덕이의 술친구, 세자는 무덕이의 뻔뻔함에 끌리지만 그녀가 결국 장욱과 맺어질 것도 알았기에 굳이 힘으로 뺏으려 하지 않는다. 세자가 무덕이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감사할 줄 모르는 장욱과 대비된다. 무덕이, 즉 낙수가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장욱이다. 그런 그녀가 무덕이, 즉 부연이의 몸을 갖고 얼굴만 되찾은 상태일때도 장욱과 특히 세자는 그녀에게 끌린다.


낙수와 장욱, 초연과 당구는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랑을 했다. 현실적이 아닐지라도 그만큼 판타지한 고생고생을 했으니 그 정도는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았다. 커플천국에서 밀려난 허윤옥은 약간 밉상이라 불쌍하진 않은데 서율과 소이는 괜히 애틋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져도 무덕이는 가질 수 없었던 세자는 사랑 대신 왕좌를 안정적으로 확보한다. 만약 세자가 장욱에 대한 컴플렉스로 폭주했다면 하늘이 그의 축출을 도왔을 상황이다. 그러나 부연이, 즉 무덕이가 부탁한 거북이를 돌보는 자신을 비웃는 진무에 대한 반감으로 정신을 차리고 빌런 제거팀에 합류한다. 메이크업은 곱게 했지만 본판은 장욱보다도 상남자인 세자의 속에, 노출되지 않았던 생명에 대한 애정이 세상이 망하는 것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