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스릴러? 너무 좋지!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와 미드 <에코>

디지털 0.5세대 찐 밀레니얼의 뉴욕 드라마 <가십걸>의 뮤즈,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영화를 세 편째 봤다. 앞서 <가십걸>을 통해서, 그리고 그동안 <가십걸>을 언급했던 모든 글을 통해서 레이튼 미스터가 연기한 '블레어 월도프'의 찐찐팬임을 인정했지만 상대적으로 세레나 반 더 우드슨과 블레이크 라이블리에게는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못했다. 세레나라는 인물은 <가십걸> 원서를 좀 더 읽어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겠다. 대신 블레이크의 영화들은 계속, 심지어 반복해서 볼 만 하다.


아마도 2015년 작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을 먼저 본 듯 하다. 원제는 <The Age of Adeline>인데 미스터리한 사고 후 늙지 않는 여자 주인공 아델라인이 블레이크 라이블리다. 외모는 29세에서 노화를 멈추었고 실제 나이, 즉 영혼은 107세가 된 아델라인.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사회생활을 오래 할 수 없어서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신분세탁을 한다.


훨씬 전부터 조숙했던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고, 이때부터 연기력도 물이 오른 것 같다. 이어서 2016년 작 <언더워터>(원제 <The Shallows>)라는 서핑 영화를 봤다. 뭘 찍어도 화보인 블레이크의 작정하고 찍은 서핑 화보이면서도 상어에게 물려서 조난당한 여성의 고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한동안 넷플릭스를 쉬다가 <가십걸>을 재주행하고, 또 한참 잊고 있었는데 <가십걸>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대신 블레이크의 2018년 작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봤다. 원제는 <A Simple Favor>이고, 내레이터이자 관찰자인 애나 켄드릭과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기묘한 호흡이 재미있는 워킹맘 미스터리다.




블레이크의 대표작인 <가십걸>도 10년이나 늦게 봤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만났을때(!) 그녀는 서른 즈음이라는 지금보면 좀 어린 나이에 이미 워킹맘이었다. 스무살에도 완숙한 여인이었지만 10년 후의 그녀는 정말로 노련한 여성이 되어있었다. 현실에서도 그녀는 '셀럽' 그 자체, 직업이 '셀럽'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니까, 배우보다는 연예인으로 각인되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극중에서 '셀럽'으로 등장해야 하는 역할, 즉 세레나 반 더 우드슨 같은 존재로 이보다 더 찰떡인 배우는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에밀리도 블레이크와 잘 맞는 역할이었다.


아이 친구 엄마라는 미묘한 관계에서도 걸크러시 팡팡 터지는 에밀리. 남편 앞에서는 능수능란하게 사랑스러운 아내의 연기를 하지만,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는 왠지 외로운 늑대의 포스가 드러난다. 아메리칸 오지라퍼 스타일의 관찰자, 스테파니의 관점을 통해, 에밀리라는 시크한 언니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남편와 아들을 짐짝처럼 생각하면서 겨우 참고 있는 느낌도 없지 않다. 최소한의 의리 때문에 몸만 여기에 있는 듯한 이질감이 있고, 그래서 이 멋진 언니의 존재 자체가 스릴러 요소가 된다.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아들을 자신의 아이와 함께 픽업하고, 에밀리에게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에밀리의 존재로 인해 스테파니 역시 강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의 관계가 동등하고 공정하진 않은 듯 하다. 스테파니 본인도 그걸 알기에 남몰래 초초하다. 그러다 진짜로 에밀리가 실종되고, 이어서 시체로 발견되지만 진짜 에밀리는 남몰래 가족들과 접촉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스테파니, 이것도 요물이다. 그녀는 다 가졌지만 양심은 없는 에밀리가 부럽다. 다시 태어나도 에밀리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번 영화도 블레이크 라이블리여서 가능한 심리전이 펼쳐진다. <가십걸>의 내 사랑 블레어 월도프가 그랬듯,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스테파니도 에밀리 옆에서 시들어간다. 태양 앞에서 빛을 잃어버리는 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스테파니는 자신을 망친다. 에밀리가 될 수 없으니 에밀리의 것을 탐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미셸 모나한이 끝내주는 1인 2역을 선보인 2022년작 미니 시리즈 <에코>다. 미셸의 필모를 털어봐도 눈에 띄는 대표작 없다. <본 슈프리머시> 부터 단역으로 출연했다고는 한다. 그 작품에서 스포일러가 된 더 잘 보이는 단역, 가브리엘 만을 좋아해서 그를 보기 위해 두 번이나 봤지만 리뷰하려고 필기하면서 봤던 두 번째 감상에서도 미셸은 레이더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브리엘 만의 경력이나 실력을 생각해보면, 그에 못지 않게 꾸준히 경력을 쌓아온 미셸 모나한도 중견배우의 내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녀를 각인시킨 신작 <에코>를 통해서도 베테랑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2007-2014년 인기 영화 700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4년 최고 인기작 100편 중 여성 주인공은 21편, 45세 이상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한편도 없었다. (리베카 솔닛,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중에서) 미국 드라마는 2010년대 이후 미셸 오바마와 카멀라 해리스의 영향을 무시 못할 수치로 유색인종 여성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특히 팬데믹을 기점으로 드라마는 물론 영화까지 넷플릭스 등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산되면서 중저예산 작품과 여성서사가 다시 성장세를 타고 있다. (한국 영화는 2000년대 초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었고, 뒤이어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독점과 페미니즘 후퇴가 따르면서 극장 영화가 엉망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인 <지니 앤 조지아>나 <브리저튼>을 봐도 여전히 유색인종 여성의 서사는 전세계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무려 한글로 인종차별하는 댓글도 달려있다! 한국인의 눈에는 흑인보다도 남아시아인이 더 거슬리나보다.) 이번 작품 <에코>의 경우 1인 2역을 맡은 주연배우 미셸 모나한이 46세에 발표한 작품으로, 촬영 당시에도 45세는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의: 스포일러 있음



일란성 쌍둥이 레니와 지나는 비밀이 있다. 갑자기 사라진 레니를 찾으러 간 지나는 요즘 레니가 이상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레니가 사라진 곳에 총 맞은 말이 있었지만 어쩐지 조작된 증거의 기운이 모락모락. 지역 경찰인 보안관 언니들은 수사망을 좁혀오고, 레니의 잘생긴 남편은 밖으로 돈다. 심지어 지나와 모든 것을 공유하던 레니가 말도 없이 새로 고용한 보모까지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레니는 왜 딸을 방치하고 남편을 멀리한 걸까?


그건 바로, 레니가 레니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레니 역할을 하고 있던 지나가 실종을 가장한 가출을 한 상태고 지금 레니를 찾으러온 지나가 레니였다. 레니 남편 역할을 맡은 맷 보머가 이 작품으로 안내한 덕분에 취향저격한 쌍둥이 스릴러와 완숙미 뿜는 미셸 모나한도 알게 됐다. 맷 보머는 <화이트 칼라>의 말썽꾸러기 위조전문가, 닐 카프리로 얼굴을 알렸던 배우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작, <화이트 칼라> 시즌 1 기준으로 맷 보머가 32세였는데 그게 벌써 14년 전이다. <에코>가 공개된 시점에 미셸보다 한 살 연하인 맷 보머는 45세였다.




<화이트 칼라>에서 FBI 팀장 피터 버크와 달달한 브로맨스를 보이는 한편 피터와 거의 비슷한 연배의 모즈 역의 고 윌리 가슨과는 찐친 모드로 호흡이 좋았던 닐 카프리는 미인계로도 유명했다. <화이트 칼라>의 블랙위도우 역할을 맡은 매드첸 아믹(최근작 <리버데일>에서 베티 엄마 앨리스 쿠퍼 역을 맡고 있으며 <가십걸>에서 네이트의 비밀 여친인 공작부인 역)의 눈에 들지는 못했지만, 기술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매력으로 뚫고 들어가는 전투력 꽝인 미남 닌자 맷 보머. 그런 그를 역관광한 스파이 출신 여성 범죄자도 있었다. (사진 속 그녀)


한편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비포 <가십걸> 시절 영화도 있는데 아직 못 봤다. 무려 2005년 작인 <청바지 돌려입기>는 무려 속편도 있다고 한다. 어리지만 지금과 똑같은 블레이크와 당시에는 엄청 동안이었을 리즈시절, 아니 로리시절 알렉시스 브레델이 함께 나온다. 파란 머리 저 친구가 내 친구인데 나도 그 무렵에 파란 머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저 친구처럼 탈색을 제대로 안해서 얼룩이 지고 초록빛이 도는 파란 머리였다. 무려 그 사진이 대학교 졸업앨범(내 졸업연도 아님)에도 박제됐다.




우리 모두의 인생작 <가십걸> 출연 당시 한참 풋풋하던 <가십걸> 멤버들이 따로 또 같이 찍은 영화도 있다. 작년에 본 것 같은 <몬테카를로>는 세레나와 블레어의 캠퍼스 투어를 망치는 콜롬비아 대학교의 악녀 줄리엣과 블레어의 외전, 은 아니고 이들이 어색한 협력관계로 나오는 여행 영화다. 이 작품에서는 셀레나 고메즈가 1인 2역을 한다.


그때 줄리엣의 타깃이었던 세레나, 즉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클로이 모레츠와 함께 다른 영화를 찍었는데 이건 포털에서도 찾기 힘든 희귀템. 클로이 모레츠의 <렛 미 인>은 예전에 재미있게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