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가수업, 어쩌다 쿠바, 리딩 가이드 외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로, 짧은 분량이지만 작가 고유의 소설 수법과 실존 철학이 잘 집약되어 있다.
-리딩가이드 202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헤밍웨이가 쓴 책보다 헤밍웨이가 나오는 책들을 먼저 읽었다. 살사를 갓 접했을 때부터 모국인 한국에서 '푸에르토리코인이세요?'라는 말을 들어본 + 비포살사시절 힙합클럽에서도 라티노가 붙는 나도 그렇고, 쿠바 이민 후 팬데믹으로 귀국하신 린다님도 그렇듯이 헤밍웨이도 영혼이 카리브해를 지향하는 분이셔서 모를 수가 없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심지어 이 책으로!) 미국인인 것도 알고 책이 얇다는 것도 알고 쿠바덕후인 것도 알겠는데 그럼에도 급할 건 없었다.
작년 말, <헤밍웨이의 작가수업>이라는 책을 발견해서 냉큼 대여해 읽었었다. 쿠바를 상징하는 '헤밍웨이'라는 키워드가 '작가수업'이라는 반짝이는 키워드와 나란히 놓여 눈이 번쩍 뜨였을 것이다. 아널드 새뮤얼슨이라는 작가가 무작정 헤밍웨이를 찾아가 그에게 글쓰기와 삶의 태도를 배운다는 '낚시에세이'다. 헤밍웨이 추천작, 읽고쓰기 마인드를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고 카리브해 낚시 요령도 알게 되었다. <노인과 바다>도 주문했다.
하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와 리베카 솔닛의 매운맛 원서들과 전투를 치르느라 바빠서 일단 책장에 넣어두기만 했다.
그런데 쿠바에 그의 배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해변이 있다. 그것도 아바나 근교가 아니라, 아바나에서 북동쪽으로 8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쿠바의 중부지방에 위치한다. 헤밍웨이가 살아생전 가장 좋아해서 피델 카스트로가 아예 헤밍웨이의 배 이름을 붙여버렸다는 필라르 해변 Playa Pilar 은 나도 발을 딛자마자 홀딱 반해버린, 내가 쿠바에서 가장 좋아하는 해변이다.
-쿠바댁 린다, <어쩌다 쿠바> 마지막 챕터
<어쩌다 쿠바>가 출간되었다. 이 책도 요물이다. 스릴서 소설 덕후이면서 에세이 알러지가 살짝 있었던 나는, 좋아하는 책도 아껴읽는다는 핑계로 여러번 나누어 읽는다. 확실한 서스펜스가 없으면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틀만에 읽었다.
그보다 훨씬 얇은 <노인과 바다>를 삼일에 걸쳐(영문판이긴 하지만) 읽은 것과 비교해보면 <어쩌다 쿠바>의 흡입력이 새삼 또 신기하다. 에세이의 에세이다운(?) 단정함도 소중하지만, 린다님이나 이슬아님처럼 '말하듯이 쓰는' 문체가 완독률을 높이는 건 사실이다. (이슬아님의 책은 너무 두꺼워서 <노인과 바다>분량의 2배 이상 읽었지만 머나먼 완독의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 외 병행독서중인 30권과 함께 주기적으로 공략할 수밖에 없다.)
헤밍웨이를 읽어야 하는데, 헤밍웨이 말고도 읽어야 할 작가들이 많았다. 쿠바덕후지만 쿠바가는 길에 뉴욕에 심장을 뻇긴지 오래.
<호밀밭의 파수꾼>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문학을 섭렵하다가 나의 마이애미 여행기를 리뉴얼하고 다시 헤밍웨이를 꺼냈다. 어쩐지 <호밀밭의 낚시꾼>같은 느낌이 났다. 그렇다. 바로 다음 해에 나온 책이다.
책소개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리딩 가이드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전읽기> 등에 의하면 샐린저, 헤밍웨이, 이 분들이 '잃어버린 세대'의 대변인이라고 한다. 샐린저가 단 한권의 장편소설로 신드롬을 일으킨 신세대 대표를 창조했다면 헤밍웨이는 연륜과 철학이 녹아있는 어른들의 버전으로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전을 제시한다.
오리를 걱정하는 콜필드와 청새치를 걱정하는 산티아고, 산티아고를 걱정하는 마놀린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 (같은 시대인 한국전쟁 당시, 할머니는 18세에 결혼을 하셨는데, 첫째인 엄마를 3년만에 얻어서 애지중지했다고 하셨다.) 연보를 확인해보니 직전에 시몬 드 보부아르와 조지 오웰의 걸작이 등장했다.
쿠바덕후임에도 헤밍웨이 목소리를 직접 듣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보부아르는 처음 고른 책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600페이지라 읽는 중이고, 오웰 영어판은 얇은 책인 <동물농장>만 재작년에 잽싸게 읽고 <1984>는 방치중이다.)
빙산이론에 따르는 작법은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듯. 샐린저나 헤밍웨이는 너무도 많은 후대의 작가들이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흔한 수법으로 읽혔던 것일까? 특히 관록의 헤밍웨이를 벤치마킹한 이들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더 부지런하고 더 치밀한 이들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작가수업>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플롯을 짜지 않고 그냥 쓴다고 했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 십년 전에는 플롯만 짜다가 망했지만 지금은 챕터 나누기가 쓰기의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