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사설시조의 명가

J.D.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원서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책덕후가 등장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빠짐없이 등장하는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원서를 분량대비 최단기간에 완독했다. 샐리 루니의 샐린저 스타일 21세기 초상, 인 <노멀피플>원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무드였다. 두 책의 냉소적 주제의식은 좋았지만, 젊은 부르주아 특유의 권태로운 문체(는 물론 저자의 의도겠지만) 그 자체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들의 애정결핍도.


안 젊은 안 부르주아에겐 (이들의 절박함이 미안할 정도로) 좀 한가한 푸념, 처럼 느껴졌달까. 아마도 젊은 (부르주아가 될 가능성이 있었던) 엘리트였을 때 읽었으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서를 구입하고 읽지 못한 20대의 나를 소환해봐도 크게 설득력은 없었다.


<노멀피플>에서 '너와 나'의 사회적 인싸력을 대조하는 관계 묘사법은 나름 흥미진진했다. 나름 내 취향일 뻔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홀든 콜필드라는 화자를 내세워, 최근 애정하게 된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 <순수의 시대> 주인공인 뉴랜드 아처의 비꼬기(sarcasm) 방식을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 버전이라 의미는 충분했다.


<순수의 시대>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직결된 원서읽기의 흐름에서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뉴욕 사회(는 결국 <가십걸>에서도 대놓고 오마주가 되었다고 한다)의 면면이 가끔씩 폭소를 자아냈다. 그에 비하면 <개츠비>의 데이지나 불륜남녀까지 착해 보일 정도다. 불륜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내로남불이 나쁜 것이고, 기울어진 결혼제도가 나쁜 것이다. 사람은 일정 비율로 배신하는데 절대적인 배신자를 걸러도 남은 사람이 일정 비율로 배신한다. 안 믿고 싶겠지만 이건 음... 확률이다.




모르는 슬랭일거라고 생각한 단어들이 다만 스펠링을 바꿔서 표현한 '흔한 욕'이었다는 것을 사전에서 검색하기 위해 타이핑하면서 검색버튼을 굳이 누르지 않아도 알게되는 웃픈 경험도 했다. 이런 것이 원서읽기의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받아들일만 했다.


상당히 빡빡했던 <순수의 시대>를 일주일만에 완독한 직후라 순 낭독시간이 약 8시간대였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번쯤 읽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으니 독서에 탄력이 붙었을 때 읽으면 약간의 지루함을 감수하고 그것을 보상할만한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낭독하기에 매끄럽지 않은 문장의 반복을 거듭하면서 '차라리 이 책을 랩이라고 생각하자'고 결심한 순간 새로운 재미를 느꼈고 뜻밖의 결말에 울컥하기까지 했다.




And I'd let D.B. come out and visit me

for a while if he wanted a nice, quiet place

for his writing, but he could't write any

movies in my cabin, only stories and books.

I'd have this rule that nobody could do

anything phony when they visited me.

If anybody tried to do anything phony,

they could't stay. -220p




인생책 발견은 아니더라도, 도장깨기 이상의 의미는 있었으니 책덕후 또는 뉴욕덕후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 어렸을 때 읽어서 기억이 안나시는 분이라면 패스하셔도 무방할 것이다. 후자에게는 차라리 자매품 <순수의 시대>를 추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