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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Dec 17. 2024

한 권의 알찬 구성이라면 여기죠

조경란 외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승옥문학상에서는 처음으로 조명하게 된 작가가 다섯 분(강태식, 반수연, 신용목, 이승은, 조경란)이나 있어 올해는 특히 더 기쁘고 반갑다.

-324p, 심사 경위 및 심사평(대표 집필 권희철)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조경란 작가가 김승옥문학상도 수상했다는 기사를 알고리즘이 추천해줬다. 심사평이 실린 <문학동네> 가을호가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수상작인 ‘그들’은 그 시점에서 최신호였던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려있어서 먼저 읽었다.


<문학동네> 가을호에서 심사평을 읽고, 북클럽 문학동네 블라인드북 이벤트에 당첨되어 익명의 단편을 읽었다. 읽고 나서 심사평과 교차대조를 했기에 이승은의 ‘조각들’이라는 건 알수 있었다.




첫 수상에 대상을 받게 된 조경란 작가의 <가정 사정>을 구입했다. 조해진, 안보윤 작가의 책은 이미 갖고 있었다. 작년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시작으로 책태기(?)가 완전히 끝나서 벼락치기한 보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신용목 시인과 반수연, 강태식 소설가는 완전히 새로운 작가들이었다.


약간의 도전정신과 이미 두 편이나 읽었음에도 약간 길었던 독서기간,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이라는 종합선물세트. 작가노트에 더해 김경욱, 하성란, 권여선, 이승우 소설가와 김화영, 백지은, 권희철 평론가의 리뷰가 수록된 소설집이 만이천원이다. (왜 안사?)




종소는 자신을 속이고 싶어졌다. 살다보면 별수없는 일들이 늘 일어난다고, 지금 나에게 그런 일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잠시, 잠시 하려고 했다. -27p, 그들(조경란)


돌아보면 아버지와는 다툴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식들과 그럴 일을 만들지 않았고 평생 중요한 순간마다 자리를 피했다.

-가정 사정(조경란), <가정 사정>



서로 다른 책에서 만나거나, 텀을 두고 단편집을 읽게 됐을 때 가끔 재독을 한다. ‘그들’과 ‘조각들’은 읽은지 오래되지 않아 주요장면만 훑었다. 한편 ‘그날의 정모’를 읽고 약간 뽐뿌가 와서 <밤은 내가 가질게>에 수록된 (알고보니 연작인) 두 편의 이야기를 연달아 읽었다. ‘애도의 방식’은 재독한 작품으로, 작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이다.


내 ​원픽은 안보윤이다. 여행덕후라면 신용목, 반수연, 강태식의 작품에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심지어 미드, 로드트립에 환장한 나머지 외국인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면…)


신용목의 시집을 샀다. ‘양치기들의 협동조합’에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름 아닌 이해솔 작가의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갔을까?>였다. 내가 읽은 거의 유일한 산티아고 책.




어떤 전쟁은 끝나지 않고 어떤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누나에게서 동생에게로 조금씩 기울어지며 그림자처럼 땅속으로 조금씩 스며들 뿐이다.

-100p, 양치기들의 협동조합(신용목)


그녀는 우는 대신 걷는 것을 선택했다. 미안한 마음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의 결정을 끌어안은 채 걷고 또 걸으며 생각의 삭제에만 몰두했다.

-133p, 내일의 송이에게(조해진)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는 조금 읽고 오래 지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단편을 읽고 친밀감이 상승해서 다행이다. ‘내일의 송이에게’는 산책소설이기도 하지만 재작년 수상자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의사가 엄마를 책망하듯 말한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엄마 탓을 한다. 엄마만 바라보고 엄마에게만 모든 것을 묻는다. 아빠에게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205p, 그날의 정모(안보윤)


가만함은 게으름이 아닌 노력의 결과다. 나는 매일 끈질기고 집요하게 가만해진다. 가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생존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일을 구하지 않고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가만히, 가만히 숨만 쉰다.

-완전한 사과(안보윤), <밤은 내가 가질게>



자식은 부모가 징그러우면서도 죄책감에 심란하다. 조경란, 안보윤은 그 마음을 한올한올 들여다본다. 그런가하면 부모의 마음에는 아낌없이 애틋함이 담긴다. 반수연, 강태식은 시공간을 비틀어 그 애절함을 재구성한다.




그들은 행크가 그곳에 있지만 그곳에 없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그러면 행크가-밤마다 벤치에 신문지를 깔고 잘지도 모르는 늙고 위험한 남자가-정말 그곳에서 사라지리라고 믿는 것 같았다.

-264p, 그래도 이 밤은(강태식)


강태식 작가를 (원래) 알고 계신 분이라면 이번 수상이 특히 반가웠을 것이다. 궁금하면 검색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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