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캠퍼스 투어는 숨은 후문 찾기였고

길잃기&길찾기 만랩의 어느 산책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발이 닿는 곳을 확장하던 기쁨을 기억해본다. 모든 곳을 갈 수 있다면 가겠는가? 그건 상당히 추상적인 이야기다. 스마트폰 이전의 시대에는 길을 잃는 즐거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길을 잃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과 다시 길을 찾아내는 성취감 말이다.


네이버 지도는 가끔 비공식적인 통로를 표시해준다. 그걸 공공연하게 떠벌려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시도해봐도 되겠다 싶은 곳을 통해서 큰 공원을 빠져나왔는데 스릴러 덕후의 상상력은 그 곳의 보안이 걱정되는 곳까지 뻗어나간다.


주요건물이 산으로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쉽게 출입할 수 있다고? 게다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본 예쁜 건물은 그냥 통과하기가 어쩐지 미안해서 마침 필요했던 화장실을 사용했다. 그래, 굳이 빈 공간을 찾아 여기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많지않겠지.




이렇게 드넓은 부지에서는 길을 잃기도 전에 지쳐서 빠져나갈 생각만 할테니까.


헷갈리는 부지 안의 표지판의 방해가 무색하게도 빛과 나무를 따라 남북을 가로질러서 원하는 곳에 도착했다. 이런 스케일의 세렌디피티가 미국에선 수없이 이루어졌으나 귀국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다.


계획에 없던 목적지와 못 찾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 치고는 너무 빨리 찾아낸 광장. 마침내 빠져나온 뒷길(뒷문이 아니었다!)에서 아픈 발목을 이끌고 새로 지은 단정하지만 어딘가 모자란 듯한 집들을 지나쳐 큰길로 나가려 하는데 어쩐지 사유지로 들어온 느낌이다. 자동차 정비소였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으로 두리번거리니 걱정스럽게 도와주려고 하는 이(주인일까?)가 있었다. 나가는 길을 묻자 바로 뒤에 있다고 알려준다. 귀찮음도 과잉도 없는 담백한 그의 안내가 고마워서 최대한 경쾌하게 감사하다 인사 하고 돌아섰다.


마스크가 목소리와 표정을 상당히 차단하고 있었겠지만 내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확장된 상태일거라 예상하면 그가 서운하게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가 알려준 길은 좀전에 빠져나온 뒷길과 마찬가지로 가까이 가기 전까지 알아채기 힘든 비공식 통로였다. 물론 지나가기 찜찜한 그런 곳은 아니었다.


같은 경기도의 다른 도시, 고양에 있는 본가와 메인 스트리트 사이의 어느 논밭(!)에서 네이버 지도를 족치다가 길을 잃은 뒤 흙길에 발이 빠진 이후로 지름길에 대한 집착을 지름길을 의심하는 습관으로 대체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그리고 이 시대는 그렇게 야생적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난 세기의 90년대에는 고양에서 논밭과 함께 노출된 경의선 철로를 건너본 적도 있다. 발이 무릎까지 빠진 채로 말이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지도에도 길이라고 표시된 곳이니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평양 시내까지 너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글맵의 어쩐지 섬뜩한 맥락에서, 남한으로 한정된 네이버지도의 상세함은 가끔 당황스럽다. 여전히 100% 신뢰하기에는 고양에서 겪었던 사건들의 쓰라림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비공식적인 통로마저 한번 겪고 나면 정말 쉬운 곳도 있으니.




서울 집 근처 대학교 중 한 곳과 같은 학교의 다른 캠퍼스는 그렇게 어느 평화로운 마을과 경계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 (두 곳 다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어서오십시오.


큰길로 빠져나와 전철역 방향 카페에 가려고 길을 건넜는데 표지판이 보였다. 두 시간 전, 수원에서 점심을 먹고 길을 건너 캠퍼스를 통과했을 뿐인데, 다시 수원이 인사를 한다고?


방금 건넌 큰 사거리가 무슨 의미인지 확인하려고 내내 확인했던 네이버 지도를 새삼 다시 켜본다.


그러니까, 길을 잃었던 곳은 용인이었군. 시 경계인 도로를 건너 북문으로 입장했다가 남서쪽 언덕으로 빠지는 뒷길로 나왔으니 돌아가려면 북쪽 경계선을 다시 지나야 했다. 돌아온 수원은 포근했다. 집에 가려면 한참 더 남았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산책과 글 작성 시점은 마스크 시대였던 2022년 초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