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대한 단 한 권의 필독서

제임스 우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희귀템이라고 좋아했는데(!) 이 책이 주간베스트에 있어서 의아했다. 구매자 분포를 확인해보니 대학교재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하버트 문학비평 교수인 제임스 우드가 2008년에 출판하고 국내에는 2011년에 초역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지금도 초판이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좀 달라진 듯하다.)


​완독까지 몇 개월이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제목부터 이과부심을 자극했다. 전공자들이 비자발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면 조금 유감이다. 번역된지 오래되었다는 문제가 있고(그럼에도 20세기 번역이 끔찍했던 나에게는 이 정도가 오히려 좋았다.) 스무살배기들은 문학을 읽는 법을 문학에서 배우기에는 읽은 문학작품이 아직 충분하지 않(77p)기에 예문으로 등장하는 고전 작품을 머리로 읽었어도 그 작품과 진실을 바라보는 깊이가 다를 수 있다.


​저자의 집필 기간을 따져보면 내가 대학생(=초기 습작생)일때와 훨씬 가까운 책이다. 고전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지만, 인용할만한 목록은 장기적으로 변하고 가끔 실시간으로도 변한다. 저자가 중시하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헨리 제임스, 버지니아 울프, (나는 읽기 전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여전히 경전처럼 읽히고 있다.




작동법(working process)이라니, 얼핏 소설과 어울리지 않게 기계적이다. 어쩐지 공학적이라는 생각만 했지 AI와 연결하지는 못했었다. 안톤 허의 <영원을 향하여>를 읽다가 무심코 이 책을 꺼내든 후 <영원을 향하여>에 등장하는 시언어분석 인공지능과 닮아있는 서술을 발견했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직전의 문학이론으로써 흡수불가능한 동시대의 방대한 지식이나 레퍼런스에 흔들리지 않는 문학덕후로 살아남는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이공계 출신이라면 비자발적으로 읽는 대신 오히려 자발적으로 탐독할만한 책이다.




이른바 전지성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마자 서술은 그 인물 주위에 감기고 그 인물에 녹아들면서 그(녀)가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을 따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가의 전지성은 금세 일종의 비밀 공유하기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자유간접화법이라 불리는데, 소설가들은 이 용어를 ’근접삼인칭‘이나 ’인물 안으로 들어가기‘ 등 다른 많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19p, 서술하기


내면적 독백은 반복, 생략, 히스테리, 모호함, 곧 정신적인 더듬거림에 빠져도 된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독백을 할 때 자기 자신들을 엿듣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면, 라스꼴리니꼬프는 이제 우리가 엿듣고 있다. 그의 영혼은 모든 면이 우리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점은 다윗에게 마음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맥베스의 마음은 벌을 받지만, 라스꼴리니꼬프의 마음은 자기 스스로 고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155p, 의식의 간략한 역사


산문은 언제나 이런 의미에서 단순한데, 이는 언어가 음악이나 그림과는 달리 일상적 소통의 평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난해한 작가들조차도 우리의 평범한 소유물을 빌린다. 문체의 백만장자들—토머스 브라운 경, 멜빌, 러스킨, 로런스, 제임스, 울프 같은 난해하고 화려한 스타일리스트들—은 매우 부유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지폐를 사용한다.

-189p, 언어


그러므로 항상 문제적인 ’리얼리즘‘이라는 말 대신 훨씬 더 문제적인 ’진실‘이라는 말을 쓰도록 하자. 일단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나면, 어째서 카프카의 <변신>과 함순의 <굶주림>, 베께뜨의 <끝내기>가 있을 법하거나 전형적인 인간행동의 재현이 아니면서도 고통스럽게 진실된 텍스트인지를 해명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혼잣말하게 된다. 자기 가족한테서 내쫓기면 벌레가 된 느낌이겠구나(카프카), 젊은 광인이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함순) 또는 쓰레기통에 갇혀 빵죽을 먹고 사는 늙은 어버이는 이런 느낌이겠구나(베께뜨),라고.

-241p, 진실, 관습, 리얼리즘



​​소설을 여흥보다 예술로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산책과 소설의 관계, 기계적으로 암기했던 중고등학교 문학수업의 본질, 인공지능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에 이어지는 질문을 발견하기. 영문학 중심성은 감안하기.